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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물없이 볼 수 있는 시한부 인생, <나 없는 내 인생>

눈물없이 볼 수 있는 시한부 인생, 신파 아닌 감동.

자신이 빠져나간 삶을 생각하는 일은 누구에게나 공포에 가까운 슬픔을 불러일으킨다. 특히 현재 나의 삶에 사랑하는 이가 있다면 그 슬픔은 미안함과 걱정을 동반하게 된다. 이자벨 코이셋의 영화 <나 없는 내 인생>은 앤(사라 폴리)이라는 스물세살의 젊은 여성이 자궁암 말기 선고를 받고 죽음을 준비하는 과정을 담고 있다. 그녀에게 남은 시간은 고작해야 두달에서 석달. 앤에게 청춘은 17살에 너바나의 마지막 콘서트에서 만나 사랑에 빠진 남편과 그와 함께 낳은 두 아이로 인해 즐기는 것이기보다는 버텨내는 것에 가까웠다. 그래서 그녀는 자신에게 남겨진 짧은 시간 동안 진정 하고 싶었던 일들을 해보기로 마음먹는다. 그녀는 예고된 죽음을 비밀에 부치고, ‘죽기 전에 하고 싶은 10가지’ 리스트를 작성한 뒤 하나하나 실천해간다. 아이들에게 생일 메시지를 녹음해둠으로써 남편에게는 새로운 아내가 될 여자를 소개해 줌으로써 미래를 준비해둔다. 그리고 헤어진 여인을 잊지 못해 황폐한 집에 살던 연인에게는 자신을 통해 새로운 사랑을 알게 해줌으로써 과거를 지워준다.

이 영화에는 시한부 인생에 관한 온갖 신파적인 요소가 다 구비되어 있다. 너무나 사랑스러운 아이들과 첫사랑 대상이었던 착한 남편, 거기에 상처받은 영혼을 가진 새 애인, 그 모든 것을 버리고 가야 하는 젊고 아름다운 여주인공. 상식적으로 이러한 요소들의 조합은 관객의 눈물선만을 사정없이 자극하는 멜로드라마로 빠지기 쉽지만, 감독은 앤의 삶이 동정의 대상으로 전락하거나 값없는 눈물 속에서 소비되기를 원치 않은 것 같다. 자신의 삶을 객관적으로 관찰하며 스스로를 ‘너’라고 지칭하는 내레이션 기법은 영화가 정서적인 극단으로 치닫는 것을 막아준다. 그리고 ‘다이어트필’, ‘쉐어’ 그리고 ‘밀리바닐리’ 등 현대사회의 병적 징후들을 포착해내는 아이콘들이, 스쳐지나가는 인물들의 대사 속에 등장하면서 잔잔한 웃음을 불러일으킨다. 관객은 앤이 리스트에 쓰인 일들을 하나씩 지워나가는 과정을 함께 지켜보면서 자신의 리스트에 무엇을 올릴지, 왜 자신은 그것들을 지금 실천하지 않는지 반추해볼 기회를 얻을 수 있다. 낸시 킨케이드의 단편 소설 <침대를 뗏목 삼아>에서 모티브를 따온 이 영화는 페드로 알모도바르가 프로듀서로 참여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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