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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공포문학과 공포영화의 미래 [2]

이종호 작가 인터뷰

“괴담은 깜짝 공포일 뿐, 공포 소설이 아니다”

-공포 문학의 매력은 어디에 있는가. =공포 소설의 매력은 현실과 환상의 두 영역을 절묘하게 넘나들 수 있다는 데서 찾는다. 이를테면 환상이라는 갑옷에 몸을 숨기고 현실의 금기에 대항하거나 논리적으로 불가능한 일을 논리를 뛰어넘는 상상력으로 가능하게 하는 것! 그것이 공포 소설의 강점이다. 대중에게 널리 알려진 고전 <지킬 박사와 하이드> <프랑켄슈타인> <드라큘라> 등은 환상과 현실의 금기의 절묘한 어울림으로 공포 소설의 장점을 극대화한 걸작들이다. 공포 소설에서는 상상하는 모든 것들이 가능하다.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사람에게 그보다 더 매력적인 것은 없다.

-책을 쓰면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부분이 있다면. =역시 공포다. 흔히 공포 문학을 테러 문학이라 한다. 즉 공포 문학은 글을 읽는 독자를 긴장에 빠트리고 가슴을 졸이게 만들 수 있는 충격과 의외성이 있어야 한다. 다행히 세상에는 그런 이야기들이 널려있다. 세상 어떤 이야기도 약간만 비틀어보면 공포로 돌변할 수 있다. 연인들의 사랑, 이웃간의 관계, 사회에 대한 불만, 좋아하는 취미생활, 일에 대한 열정, 심지어 부모와 자식간의 사랑까지도 조금만 균형을 잃거나 정도가 지나치면 언제든 공포로 돌변할 잠재성을 지니고 있는 것이다. 주차문제로 사소한 시비를 벌이다 살인까지 저지른 남자는 지극히 평범한 소시민이었다. 공포는 그런 것이다. 누구든 살인을 할 수 있고 누구든 뜻하지 않은 장소와 공간에서 그 살인의 희생자가 될 수 있다. 소설을 쓸 때 집요하게 파고드는 부분도 그런 지점들이다.

-한국 공포 문학의 특징과 문제, 그것의 해결책이 있다면. =한국 공포 문학의 태생은 PC통신이고 전문작가가 아닌 일반 이용자들이 쓰기 시작한 무서운 이야기나 괴담이 시발점이다. 여기서 파생된 폐해는 많은 독자들이 공포 소설이라면 곧 무서운 이야기나 괴담 정도로 인식한다는 점이다. 이러한 선입견은 국내 공포 문학에 치명적인 독으로 작용하고 있다. 괴담이나 무서운 이야기를 책으로 구입해서 읽는 사람은 없다. 그런 이야기들은 지금도 온라인에서 얼마든지 공짜로 읽어볼 수 있으며, 독자에게 어떤 여운도 남기지 못하기 때문이다. 괴담은 살얼음처럼 표면만 살짝 건드리고 마는 무서운 이야기나 깜짝 공포에 불과하다. 공포 문학이 장르 문학으로서 단단한 뿌리를 내리기 위해서는 독자 이전에 먼저 공포 소설을 쓰는 작가들의 인식 전환이 필요하다. 공포 소설을 쓰는 작가라면 온라인에서 공짜로 글을 읽는 이용자와 조회 수의 환상에 빠져서는 안 된다. 단 한명이라도 돈을 주고 책을 구입하는 독자의 마음을 읽을 수 있어야 한다. 그들은 서툰 괴담이 아닌 진짜 공포 소설을 읽고 싶어하는 사람들이다. 또한 장르문학을 비평할 수 있는 전문평론가나 좋은 작가를 장르의 틀 안으로 끌어들일 수 있는 권위있는 문학상의 제정도 필요하다. 일본의 경우 공포 문학 발전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이 ‘일본공포문학대상’이라는 권위있는 문학상이라는 점을 상기해보면 더욱 절실하게 와닿는 문제이다.

-한국 공포영화의 문제 중 하나는 부실한 이야기 구조에 있다. 문학과 영화가 만났을 때, 어떤 것을 기대할 수 있는가. =최근 몇년 사이 나온 한국 공포영화들은 급조된 기획으로 만들어지는 경우가 많다. 왜냐하면 공포영화를 전문으로 쓰는 시나리오작가가 없기 때문에, 좋은 시나리오가 들어와 영화를 기획하는 것이 아니라 늘 공포영화를 만들자는 기획을 위한 기획이 우선하기 때문이다. 보통 그러한 기획에는 공포를 다뤄본 적이 없는 작가나 감독이 많이 참여하는 편이다. 하지만 영화든 소설이든 공포라는 장르는 그 장르적 코드에 익숙하지 않으면 결코 좋은 이야기를 만들어낼 수가 없다. 특히 한국은 소재를 비롯한 여러 측면에서 공포라는 장르를 다루기에 어려움이 많은 공간이다. 할리우드 공포영화에서 가장 많이 다루어지는 잔혹한 연쇄살인범이나 초자연적인 공포를 한국이라는 공간에 접목시키기란 어려운 일이다. 게다가 최근에는 ‘사다코의 저주’로 일컬어지는 원혼 기피현상까지 겹치면서 소재의 폭은 더욱 제한되고 좁아들 수밖에 없다. 영상으로 비쳐지는 영화에 비해 텍스트에만 의지해 공포를 만들어내야 하는 소설은, 시나리오보다 훨씬 탄탄한 구성과 이야기구조를 지니고 있어야 하며 공포 코드를 누구보다 잘 이해하는 작가에 의해 씌어진다. 덕분에 공포 소설이 제공하는 이야기는 비교적 논리적이고 설득력이 있다. 공포영화 시나리오를 전문으로 쓰는 작가가 없다면 그 대안으로 공포 소설을 전문으로 쓰는 작가가 훨씬 탄탄한 이야기를 제공할 수 있다는 것이다.

-공포 문학 작가 지망생들에게 꼭 해주고 싶은 얘기가 있다면. =괴담이 아닌 진짜 소설을 쓰라는 것이다. 공포는 인간에게 남아 있는 가장 원시적인 감정이라고 한다. 때문에 공포 소설은 어설프게 쓰면 유치한 괴담이나 무서운 이야기를 벗어나지 못하는 반면 탄탄한 짜임새를 갖추면 다른 나라의 문화장벽도 손쉽게 뛰어넘을 수 있는 최고의 문화상품이 될 수 있다. 완성도있는 공포 소설을 쓰기 위해서는 비현실적 환상을 현실의 틀 안으로 끌어들이는 치밀한 구성과 심리묘사, 그리고 뛰어난 필력이 반드시 필요하다. 즉 공포 코드에 대한 장르적인 이해와 문학적 소양을 함께 갖추어야만 좋은 공포 소설을 쓸 수 있는 것이다. 스스로가 공포 소설에 대한 재능과 필력이 있다고 생각한다면 주저없이 메드클럽의 문을 두드리기 바란다. 메드클럽은 항상 열려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