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Skip to contents]
HOME > Movie > 무비가이드 > 씨네21 리뷰
시큼털털하고 어정쩡한 성찰, <어느 멋진 순간>

숙성되지도 신선하지도 않은 와인처럼 시큼털털하고 어정쩡한 성찰.

성공한 한 남자가 있다. 도시에 사는 그는 하루하루 숨가쁘게 펼쳐지는 일상 속에서 정체성을 상실한다. 돈과 여자만이 그의 유일한 휴식처이며 욕망의 대상이다. 그러던 어느 날 그는 본의 아니게 도시를 떠나게 된다. 그리고 도시가 아닌 그곳에서 그는 다른 방식의 삶이 존재한다는 것을 알게 되고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며 그것이 껍데기뿐이었다는 것을 깨닫는다. 그리고 그곳에서 진실한 사랑도 만난다. 이러한 스토리 라인은 할리우드가 현대인의 삶을 반성하는 가장 전형적인 방식으로 몇개의 모티브들만 첨가, 수정하여 끊임없이 재생산된다. 플롯의 차이는 그가 각박한 도시를 어떤 이유로 떠나는가, 어떤 공간으로 이동하여 그곳의 무엇에 매료될 것인가라는 소재적인 수준에서 빚어질 뿐 통찰의 본질적인 깊이가 달라지는 것은 아니다.

리들리 스콧와 러셀 크로가 <글래디에이터> 이후 다시 손잡은 <어느 멋진 순간>은 포도농장과 와인을 매료의 대상으로 삼고 프로방스의 포도농장을 도시인 런던의 대척점으로 설정하여 이 같은 이야기를 반복한다. 맥스 스키너(러셀 크로)는 비열한 방법도 서슴지 않는 펀드매니저로 한마디의 말로 순간에 100만파운드를 좌지우지한다. 그는 런던 증시를 들었다놨다하는 자신의 권력과 술수를 과시하는 데서 인생의 희열을 느낀다. 그러던 어느 날 그의 삼촌 헨리 스키너(앨버트 피니)가 사망했다는 소식이 들려오고, 맥스에게 작은 성과 넓은 포도밭이 상속된다. 맥스는 삼촌의 죽음에 슬퍼하기 전에 유산의 가치를 계산하며 친구인 변호사와 함께 그것을 어떻게 하면 더 비싼 값에 팔아치울까만 고민한다. 하루 만에 일상으로 돌아오려던 계획은 순간의 실수로 엉망이 되고, 일주일간의 정직 처분을 받은 맥스는 프로방스의 전원에서 원치 않던 휴가를 보내며 사랑에 빠지고, 존재조차 알지 못했던 유일한 혈육과 상봉하기도 한다.

시간이 지날수록 깊은 풍미를 지니게 되고, 자연의 도움과 인간의 노력이 절묘한 하모니를 이뤄야 한다는 점에서 ‘와인’은 인생 전체 혹은 인생에서 중요한 어떤 가치들에 종종 비유되곤 한다. 이 작품은 제목인 ‘A Good Year’(좋은 포도품종이 생산된 해)나 시간의 흐름을 굳이 ‘Vintage’로 표기하는 방식을 통해 와인의 향기를 영화 곳곳에 배어나도록 한다. 무엇보다 맥스 스키너가 회상하는 삼촌과의 어린 시절은 와인 없이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가 와인을 음미할 여유를 잃고 코냑을 들이켜기 시작했다는 사실은 각박한 그의 현재를 대변한다. 하지만 와인과 삶을 통해 <사이드웨이>가 소박하고 진솔하게 도달했던 성찰의 결과물 같은 것들이 이 영화에는 존재하지 않는다. 여기서 포도는 호박이나 감자, 그 어떤 농산물로도 대체 가능하다. 증권가의 주식이나 채권이 아니라 인간이 정성들여 키운 어떤 자연물이기만 하면 되기 때문이다.

영화에서 맥스는 그의 권모술수를 시기하는 적과 동경하는 후배에게 말한다. ‘중요한 건 타이밍이야.’ 이 작품을 보고 있으면 똑같은 이야기를 감독에게 들려주고 싶다. 이 영화에서 시간을 운용하는 방식은 두 가지 측면에서 잘 납득이 가지 않는다. 첫째는 에피소드들에 시간을 분배하는 문제이다. 리들리 스콧은 기묘하게도 관객이 보고 싶은 것은 잘 보여주지 않고, 그다지 의미없어 보이는 장면들에 많은 시간을 할애한다. 예를 들면 우리는 여자 킬러였던 것으로 짐작되는 맥스 스키너가 패니 샤넬(마리옹 코틸라드)에게 완전히 빠져드는 과정이 궁금해진다. 하지만 그것은 맥스가 런던에서 숱한 여성들을 훔쳐보던 바로 그 방식에서 그다지 벗어나는 것 같지 않다. 또한 그는 끊임없이 과거를 회상하는데, 그 회상을 통해 그의 정서가 점층적으로 플로방스에 동화된다고 보기도 힘들고 특히 결정적인 순간을 기억해내는 것도 아니기 때문에, 그가 마음을 바꾸고 런던의 영화로운 삶을 포기해버리는 것도 제대로 납득되지 않는다. 반면 별 의미없는 자동차 질주장면과 테니스 경기는 진득하게 보여준다.

다른 하나의 시간은 대립적으로 설정되어야 할 런던과 플로방스의 시간이 전혀 그렇게 느껴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런던 증권가나 플로방스의 포도원이나 번잡스럽고 정신없기는 마찬가지다. 패니는 런던에 와서 식당을 열면 어떻겠냐는 맥스에게 여기의 삶이 당신의 삶에 맞지 않는 것 아니냐고 말한다. 하지만 관객이 느끼기에는 런던에서나 플로방스에서나 동동거리고 뛰어다니기는 마찬가지인 맥스의 삶이 공간에 큰 영향을 받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 않는다. 그렇게 느끼는 데는 장면마다 과도하게 흘러넘치는 빠른 템포의 음악이 큰 몫을 한다. 고층빌딩, 북적대는 사무원들과 숫자에서 넓은 포도밭과 고풍스러운 빌라로 풍경은 바뀌었을지 모르겠지만 두 공간을 지배하는 시간의 템포는 달라지지 않았기 때문에 맥스가 넘어간 두 세계의 변별성이 감각적으로 지각되거나 이성적으로 이해되기에는 무리가 있어 보인다.

그러므로 이 영화의 결론에 이르러도 맥스가 잃어버렸던 유년의 기억이나 헨리로 대변되는 어떤 삶의 모습을 완전하게 회복했다고 보기 힘들다. 헨리는 말 그대로 ‘어느 멋진 순간’을 즐기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는 런던의 삶에 완전히 회의를 느끼고 떠났다기보다 플로방스에서 조금 긴 휴가를 즐기고 있는 것은 아닐까.

관련영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