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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덜군 투덜양] 투덜군, 줄초상난 한국영화 엔딩에 시비를 걸다

님은 갔습니다, 0.001cc 눈물을 위해

*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보통 엔딩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문제라 하면, 우중충한 관객 표정으로 인한 매출의 저하현상을 미연에 방지하고자 어떻게든 엔딩을 해피하게 잡아보려고 하는 제작자쪽과 비극 또는 모호한 결말을 불사하며 그런 억지에 항거하는 작가와의 충돌이 일반적일 것이다. 그런데 참으로 희한하게도, 요즘 우리나라에서는 이와 정반대의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그렇다. 어떻게든 최대한 주연급들을 죽음에 이르게 함으로써 해피 안 한 엔딩으로 마무리하려는 노력이 ‘감동’의 구호를 마빡에 붙이고 나선 작금의 한국영화들에서 거의 예외없이 목격되고 있는 실정이다.

최근 넉달 사이에 개봉됐던 영화들만 대충 살펴보더라도 이렇다. ① <각설탕>-지병으로 인한 주연마(馬) 사망 ② <마음이…>-익사 사고로 인한 주인공 여아 사망, 지병으로 인한 주연견(犬) 사망 ③ <거룩한 계보>-자상으로 인한 주인공과 주연급 조연 사망(각 1명) ④ <사랑따윈 필요없어>-자상으로 인한 주인공(남) 사망 ⑤ <열혈남아>-자상 뒤 과다출혈로 인한 주인공 사망 등등 스리슬쩍 훑어보기만 해도 도무지 줄초상이 따로 없음인 것이다.

이게 뭐가 문제냐. 뭐 물론, 주인공이 죽는 것 자체야 문제될 것이 없음이다. 영화 캐릭터 사망률이 높아진다고 해서 우리나라 공중보건 체계에 구멍이 뚫리거나 하는 건 아니니까. 하지만 문제는 언제나처럼 사망에 도달하는 과정이다. 흐름상 주인공이 죽어야 할 팔자라면 죽어야 할 것이다. 그리고 그게 아니라면 마땅히 살아야 할 것이다. 하지만 요즘의 자칭 ‘감동’ 영화들을 볼라치면 도대체 죽을 팔자도 아닌 주인공이 영화 끝나기 10분 전에 난데없이 발병한 불치병으로 사망하거나 불의의 자상이나 총상으로 엄하게 객사해나가는 경우가 부지기수이니 이 아니 코믹할쏜가.

세계적으로도 그 사례를 찾아보기 매우 어렵다 할, 한국영화에서의 높은 주인공 사망률의 원인은 무엇인가. 이는 물론 <엽기적인 그녀>의 흥행 성공 이래 흥행판의 절대법칙으로 받들어져오고 있는 ‘열번 웃음 뒤 떨어뜨리는 눈물 한 방울’이라는 경구를, 5년여가 지난 지금까지도 맹목적으로 따르고 있는 주최쪽의 강박관념이다. 개연성이야 있건 말건, 극이야 신파가 되건 말건, 어떻게든 막판에 관객에게 눈물 0.001cc라도 짜내고야 말겠다는 ‘눈물 강제압착형 엔딩’에 대한 집착은 지금도 수많은 캐릭터들을 무의미하기 짝이 없는 죽음으로 내몰아가고 있는 것이다.

좋은 과정은 그것이 좋은 결과를 가져오기 때문에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것 자체가 좋은 결과이기 때문에 중요하다. 그러므로 결국 엔딩만으로 ‘좋은’ 엔딩이란 있을 수 없다. 있다면, 좋은 과정의 엔딩 또는 그렇지 않은 과정의 엔딩만이 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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