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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김기영 감독 오마쥬 다큐멘터리 만든 김홍준 감독

“김기영을 알면 누구나 그 분의 전도사가 된다”

김기영(1919∼98). 한국 영화사의 가장 기이한 천재 중 한 사람. 시네마테크 프랑세즈와 영화진흥위원회가 한·불 수교 120주년을 기념해 김기영 회고전을 파리에서 연다. 11월29일부터 12월24일까지 생전에 만든 32편(22편만 존재) 중 18편을 상영하는 최대 규모다. 김홍준 감독은 김기영과 지금의 세대를 잇는 오마주 다큐멘터리를 만들어 파리로 들고 갔다. 김기영 감독의 조감독을 할뻔한 김지운, 송일곤 등 생전에 근접조우를 했거나, 황학동 시장에서 김기영의 비디오테이프를 수집하던 봉준호 등 그에게 열광하는 22명의 감독들을 만나 인터뷰를 했다. 이것을 김기영의 매혹적인 영화적 순간을 중심으로 짠 작품이다. 박찬욱 감독은 ‘이기적’이라고 회고하고 신재인은 ‘또라이’라고 증언하지만 이들 모두는 김기영을 향한 사랑을 나름의 방식으로 간증한다. 김홍준 감독은 이 작품에서 박찬욱, 봉준호, 김지운, 류승완 등 주요 감독들의 무의식에 김기영의 세계가 영향을 끼쳤다는 ‘무의식의 상상된 계보’론을 펼친다. 이 다큐멘터리는 우리가 지금 김기영의 자장 안에 살고 있음을 입증한다. 파리로 떠나기 전 김 감독을 만났다.

-김기영 오마주 다큐멘터리 만들랴, 시네마테크 프랑세즈 프로그래머 하랴, 김기영 책자 만들랴 바쁘다. =올해는 완전히 김기영 감독님과 함께다. (친필 사인을 받은 김기영 시나리오집을 보여주며) 이거 가보다. 눈독 들이는 사람이 많다. 다큐 보니 어떤가. 누구나 김기영을 알면 김기영의 전도사가 된다. 이 다큐는 입문 다큐고 전혀 김기영을 모르는 사람에게 기본적 지식을 주면서 그의 작품을 보고 싶은 마음이 들게 하려는 게 목표다. 또한 욕심이지만 여기 인터뷰에 응한 중견·독립영화 핵심 감독들의 모습을 담은 기록이기도 해서 김기영은 맥거핀이라고도 할 수 있다. 22명의 바쁜 감독을 붙잡고 인터뷰를 했는데 왜 나는 하나도 안 나오느냐고 할까봐 걱정했다. 안배를 할 수도 없고. 얼마나 애정과 관심이 있느냐에 따라 주인공이 정해지더라. 김기영에 열광하고 전도사를 자처하는 사람들은 봉 감독이 대표하고, 그리고 개성적인 단역들이 포진해서 모두 한컷 이상씩 나왔다. 그것만으로도 성공이다.

-다큐를 만들려 했던 출발점은. =시네마테크 프랑세즈에서 공동 프래그래머를 제안했고 영진위는 자문을 구했다. 회고전도 페스티벌식으로 재미있게 하고 싶었고 이건 존 포드나 하워드 혹스 회고전이 아니잖나. 극소수에게만 회자되던, 컬트 작가처럼 알려졌던, 제대로 평가받기보다는 다른 각도로 해석되는 작가이고 제대로 처음 소개되는 기회이기 때문에 먼저 오마주 비디오를 만들자고 제안했다. 제안하고 후회했는데, 덜컥 맡으면서 생고생했다.

-류승완 감독이 ‘저렇게 개인적인 희한한 취향으로 당대 흥행을 기록하며 흥행을 만들 수 있다는 게 미스터리’라고 놀라는 대목이 있다. 바로 뒤에 검은 바탕에 자막으로 <화녀>와 <충녀>가 1971, 72년 각각 흥행 1위를 기록했다는 사실이 화면 위에 뜨지 않나. <화녀>의 으스스한 피아노 소리와 함께. 그런 게 이 다큐의 재미다. =여기 쓴 음악이 모두 김기영 영화의 음악이다. 영화도 모두 그의 인용이고. 영화 보면 거기서 직접 아트디렉터도 다 하셨고.

-형식에 대해 고민했겠다. 자칫 지루해질 수도 있는데. =인터뷰 다큐라는 게 힘들고 재미없을 수 있다. 이런 목표가 있었는데, 인용이나 자료는 남용하지 않되 맥락에 맞게 하고 감독들이 스스로 흥분하고 ‘업’된 상태에서 하는 이야기들, 그것을 통해 자기 이야기를 하는 흐름을 만들자, 그래서 팬들에게 보는 즐거움을 주자는 거였다. 22명의 한국 감독을 한꺼번에 만나는 건데 배경지식이 없어도 친근감이 들고, 이 사람들을 길거리에서 마주치면 말이라도 붙이고 싶게 진솔한 모습을 담고 싶었다. 그들을 통해 김기영에 대한 친근감을 주는 게 목표였다. 이 작품이 튈 수 있는 건, 오마주 다큐를 지금의 감독들을 만나 한다는 거고 그게 유일하게 튀는 컨셉이다. 김기영이니까 가능하다.

-마지막에 김기영을 만나면 뭘 물어보고 싶은지에 대해 감독들에게 물었다. 흥미롭다. =기준영 작가 아이디어인데 거기에 또 DVD 서플용으로 오마주 영화를 만들 아이디어를 ‘피칭’하게 했다. 감독들마다 다 개성이 있다. 놀랍게도 1/4 이상이 김기영의 전기영화를 찍고 싶다고 했다.

-사실 김기영 감독의 삶과 죽음이 그의 영화 못지않게 극적이다. =돌아가신 뒤 이런 다큐가 나오는 것도 극적이다. 이게 어쩌면 한 감독에 대한 의도적으로 독립된 오마주 다큐멘터리로서는 처음 아닐까. 한 선배 감독에 대해, 뒤 세대의 감독들이 20명 넘게 나와서 이야기를 한다는 게 쉽지 않은 거다.

-<화녀>로 데뷔한 윤여정이 임상수 감독을 통해 재발견된다는 점은 이해가 간다. 그런데 상상의 계보로 지금 세대 감독과 연결된다는 건 무리 아닌가. =견강부회인데, <육체의 약속> 마지막 장면과 <너는 내 운명>에서 면회실 장면의 비슷함에 대해 이야기하니 김진표 감독은 그 영화를 본 적이 없다고 하더라. 그러나 이 다큐를 보면 알 수 있듯이 우기면 오마주처럼 볼 수밖에 없다. 김대승 감독은 영광이라고 하더라. 내가 보라고 해서 (<혈의 누>가 비슷하다고) <고려장> 본 거지만. 김기영 감독은 현실적인 계보로는 지금의 감독과 동떨어져 있다. 많은 감독들이 신상옥, 김수용, 유현목 감독 등의 조감독 출신을 통해 나왔고, 가령 나는 임권택 감독 조감독을 했지 않나. 그런 계보가 이어지는데 김기영 감독은 그런 게 없다. 반면에 2000년대 주목받는 감독들은 장르의 매혹, 성과 가족에 대한 냉소적 시선 등 김기영의 세계 안에 이미 다 있는 것을 하고 있다. 이게 그래서 상상의 계보고 집단 무의식이라는 거다.

-김기영의 무엇에 매혹을 느꼈나. =시네필이라면 김기영을 접한 뒤에 ‘고수다’라고 말한다. 알면 알수록 놀라고 이해한다고 여기는 순간 뒤통수를 맞는다. 이 일련의 작업은 마음의 빚을 갚는 것이다. 1997년 부산영화제 회고전을 통해 재발견될 때 컬트로 오해됐다. 제대로 자리매김을 해야 하는데. 부천영화제 프로그래머를 하면서 60년대 대중영화를 섭외하다가 <하녀>의 판권자를 찾는데 바로 본인이 판권자였다. 돈이 없어 무료로 빌려달라고 찾아갔더니 무섭게 ‘뭣 땜에 왔어’ 이러시더라. 설득했다. 돈이 없다고 하니 당신은 꿈이 있는데, 그 흑백을 세피아톤으로 해줄 수 없느냐는 거였다. 자기 작품에 대한 평생의 집착이 있던 거다. 이 다큐의 처음에 나오는 <하녀>가 세피아톤이다. 저만의 오마주다. 돌아가신 직후 이용관, 정성일 등 몇명이 모여 기념사업이라도 해야 하는 거 아니냐고 했는데 얘기가 흐지부지됐다. 못해서 안타깝고, 해드렸어야 하는데. 그래서 회고전, 다큐, 책 만드는 거로 봉사한다. 위에서 도와주시는 거 같다. 자료도 마침 필요한 게 나오고, 이화시 같은 김기영의 배우도 갑자기 연락이 되고, 두달 사이에 바쁜 감독들을 다 만나고, 고맙다. 독립다큐 형식으로 만든 행사용 비디오이지만 이건 2006년 영화계의 기록이라는 생각도 든다.

-예산은. =회고전 예산에서 빼서 줄여서 만든 거다. 영상원 교수와 제자들이 도와줬고 1500만원 들었다. 몸으로 때웠다. 스탭들을 고생시켰다. 파리 반응이 어떨지 궁금하다.

-영화를 올해 만들겠다고 했는데. =구체적 계획이 아니었고 나 자신에게 하는 다짐이었다. 어떤 관객이 그러더라. 어떻게 됐느냐고. 그래서 이걸 찍었구나 싶다. 이게 그 영화다. 규모는 작지만 장편만큼의 프로세스를 했고 촬영횟수도 20회면 만만치 않다.

-리얼판타는 올해 거른 건가. =실체로서의 리얼판타는 거기까지다. 일단 후원이 뒷받침되어야 하는데. 브랜드는 생긴 거니까. 1회성 행사는 아니고 가능성과 의미를 갖고 있고 홈페이지도 유지하니까 언젠가 다른 모습으로 부활하지 말라는 법은 없는 거다.

-<나의 한국영화> 연작은 계속 하는 건가. =그거야 틈나는 대로 하는 거다. 김기영 오마주도 연작은 아니지만 연관없는 건 아니다. 그런 기분으로 했으니까. 김기영과 한국 감독들과 관객의 눈길을 따갑게 느끼면서 했다는 게 차이다. 지금 이 다큐가 프랑스 자막판인데 손을 봐서 내년 1월에 서울아트시네마 등에서 상영했으면 한다. 비디오붐이 사그라져 젊은 관객은 김기영을 모른다. 김기영 영화를 필름으로 한번 보면 더 보고 싶어질 거다. 김기영은 충분히 그럴 만하다. 1년 정도 더 있으면 10주기인데 지금부터 뜻을 모으고 언론도 돕고 그랬으면 한다. 물론 그분만 위대한 건 아니지만, 이제 그런 일을 할 만한 역량이 있으니 선배에 대한 예를 갖춘 행사를 하자는 거다. 회고전, 책자, 임권택 감독 작품 DVD처럼 퀄리티를 갖춘 박스물 등 여러 일을 했으면 좋겠다.

-감독들에게 다 물어본 걸 나도 물어보겠다. 김기영 감독을 만나면 무슨 얘기를 하고 싶나. =이게 제가 만든 겁니다, 하고 ‘잘했습니까’ 묻고 싶다. 허허 웃으면서 한대 때리실 거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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