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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에슬로프스키 보다 호사스러운 지옥 <랑페르>
김도훈 2006-12-13

키에슬로프스키의 ‘아우라’를 걷어낸다면 즐길만한 지옥도

1996년 3월13일의 비극. 이날 크지슈토프 키에슬로프스키는 심장수술을 받다가 세상을 떠났다. 그것으로 키에슬로프스키가 친우 크지슈토프 피시비츠와 계획하고 있던 ‘천국-지옥-연옥’ 3부작은 완전히 끝이 난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대가의 유산은 거기서 멈추지 않는다. 지난 2002년에 <천국>(Heaven)을 연출한 <롤라 런>의 톰 티크베어에 이어 두 번째로 거장의 봉인된 원고를 풀어젖힌 것은 <노맨스 랜드>의 의기양양한 보스니아 감독 다니스 타노비치다.

‘랑페르’(L’Enfer: 지옥)로 떨어진 주인공들은 세명의 자매다. 그들은 유년기에 겪은 무시무시한 사건 이후 교류도 없이 각자의 상처를 속으로 곰기며 살아간다. 잘나가는 사진작가의 아내이자 두 아이의 엄마인 맏딸 소피(에마뉘엘 베아르)는 남편의 외도로 고통받고 있으며, 남편의 뒤를 몰래 밟아 남편이 사랑하는 여자의 모습을 보며 배신감으로 스스로를 무너뜨린다. 대학생인 막내 안느(마리 질랭)는 친구의 아빠이자 교수인 프레데릭과 사랑에 빠졌다. 하지만 프레데릭은 가족을 지키기 위해 안느를 버리기로 결심하고, 이에 이성을 잃어버린 안느는 금지된 사랑을 되찾기 위해 몸부림친다. 둘째 셀린느의 삶은 가장 적막하다. 세 자매 중 유일하게 요양원에 있는 엄마(캐롤 부케)를 정기적으로 방문하는 그는 누구와도 관계를 맺지 않고 고독한 삶을 살아간다. 그들의 상처를 되짚어내는 이는 세바스티앙(기욤 카네)이라는 미스터리한 젊은이로, 그는 셀린느에게 접근해 자신이야말로 지옥의 근원이었다고 폭로한다.

유년기의 기억은 여전히 자매들을 맴돈다. <랑페르>의 지옥은 영원히 반복되는 인류의 형벌이다. 주인공들은 그 속에서 과거의 실수를 또다시 반복하고, 무시무시한 다람쥐 쳇바퀴에서 떨어져 살아가는 타인에게까지 똑같은 지옥을 안겨준다. 간통과 간음과 불신과 속임수는 그들뿐만이 아니라 다른 이들에게도 전염된다. <랑페르>는 세 자매의 지옥을 좀더 직접적으로 묘사하기 위해 종종 그리스 신화의 여인 메데아를 인용한다. 동생까지 희생하며 남편인 이아손을 따랐던 메데아는 남편의 배신으로 분노한 나머지 복수를 위해 자식들을 죽였다.

<랑페르>의 어머니 역시 아비의 목숨을 끊었으나 그 고통을 이어가는 것은 자식인 세명의 자매들이다. 타노비치(그리고 두명의 크지슈토프)는 현세의 메데아들을 통해 인간의 오해와 복수심과 불신이 빚어낸 인간 마음속의 지옥을 들여다보며 관객에게 말한다. 우리 모두는 메데아의 자식들이며, 그 비극의 핏줄은 인간이 실존하는 한 영원히 대를 이어 전해질 것이라고. 무시무시한 제언은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서 보는 이의 심장에 서리를 내린다. 형식적으로 <랑페르>는 조각조각 다른 색깔로 만들어진 퀼트와도 같다. 각각의 캐릭터를 넓은 보폭으로 뛰어넘으며 진행되던 이야기는 서서히 자매들의 관계를 가까이 가까이 이어붙이고, 발화점이 높은 인간들의 드라마와 관객의 숨을 죽이는 미스터리 구조는 농밀하게 짜여져 결말을 향해 달음박질친다. 물론 영화의 형식은 두명의 크지슈토프가 창조해낸 시나리오 속에 이미 완결되어 있다. 키에슬로프스키의 유산을 영화화하는 감독이라면 거장의 세계에서 완벽하게 유턴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사실 또한 알고 있었을 것이다. 다니스 타노비치는 <랑페르>가 자신의 창조물이기보다는 키에슬로프스키를 향한 오마주임을 굳이 숨기려 들지 않는다. 그는 주인공들에게 각각 레드, 블루, 그린의 색채를 입히고, (세 가지 색 3부작에 공히 등장하는) 병을 분리수거하는 할머니를 등장시킴으로써 대가를 향한 존경의 마음을 내보이는 것으로 의무를 다한다.

타노비치가 자신만의 지장을 찍으려는 야심을 드러내는 부분은 젊고 감각적인 붓터치다. <랑페르>의 스타일은 키에슬로프스키가 만들었음직한 지옥보다 훨씬 호사스럽다. 촬영감독 로랑 다리양(<타인의 취향> <아스테릭스2 :미션 클레오파트라>)은 현실보다 화려한 빛과 색채를 이용해 바로크 음악처럼 휘몰아치는 스토리를 시각화하는 재주를 보인다. 가끔은 시각적 과시가 지나친 나머지 노골적인 미장센으로 주제를 과시하는 프랑스 멜로영화처럼 보이는 순간도 있는데, 이를 내밀한 은유의 언어로 바꾸어주는 것은 네 주연배우의 공이다. 언제나처럼 지옥에 빠져 바스락거리는 영혼을 기묘한 아름다움으로 비추어내는 에마뉘엘 베아르는 상처입은 메데아의 모습 그대로이며, 마리 질랭, 카랭 비야, 특수분장에 힘입어 단호하고 냉정한 공기를 발산하는 캐롤 부케의 연기는 각각의 호연을 따라가기 힘에 부칠 지경이다. 세대를 뛰어넘는 프랑스 여배우들의 화음을 듣고자 하는 관객에게는 프랑수아 오종의 <8명의 여인들> 이후 가장 기가 막힌 관현악이다.

<랑페르>는 언젠가 만들어질 <연옥>(Purgatory)을 위한 징검다리로도, 69년생 젊은 작가의 야심만만한 행보로도, 프랑스 여배우들의 내공을 발산하는 무대로서도, 충분한 값을 치를 만한 예술품이다. 물론 키에슬로프스키 팬들은 젊은 유럽 작가들의 ‘신곡 3부작’을 향한 오마주 난도질에 마뜩잖아 할 테지만, <랑페르>는 (티크베어의 <천국>이 그랬듯이) 키에슬로프스키의 무게에서 완벽하게 벗어날 수 없는 운명을 태초에 지고 태어난 영화다. “분명히 큐브릭 팬들은 싫어할 거야. 어쩌겠어.” 큐브릭의 오랜 지기였던 프로듀서 잔 할란이 스필버그에게 던진 충고는 타노비치에게도 유효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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