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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유할 줄 아는 조폭영화, <비열한 거리>

EBS 12월30일(토) 밤 11시

뉴욕의 리틀 이탈리아. <비열한 거리>는 줄곧 어두운 거리와 그보다 어둠침침한 바(bar)로 영화의 공간을 한정한다. 그 공간에 조직의 상부와는 거리가 먼 불쌍한 건달들이 매일 모여든다. 하는 일이라고는 술 마시고 여자 만나고 시시껄렁한 농담을 나누는 것뿐. 처음 영화가 시작할 때는 이 삼류 인생들이 단 하나의 인물처럼 보일 정도다. 그러나 마틴 스코시즈는 영화의 진행과 함께 이들 각각에 미세하지만 분명한 캐릭터를 부여하며 어찌 보면 단조롭게 느껴질 수도 있을 이야기에 다층성을 형성한다. 그 흔한 상대방과의 제대로 된 총격신(마지막에 등장하기는 하지만, 그것도 일방적으로 끝난다)이나, 건달 특유의 잔인한 폭력성조차 전시되지 않는다. 대신 영화는 찰리(하비 카이틀)와 자니 보이(로버트 드 니로)의 이상한 관계에 초점을 둔다. 그들은 형제도 아니고 그렇다고 보스와 하부조직원의 관계도 아닌데, 찰리는 유독 망나니 같은 자니 보이에게 책임감을 느낀다. 그런데 그 책임감은 건달영화에 으레 등장하는 남자들의 의리와도 다르다. 그 둘 사이에는 자니 보이의 사촌이자 찰리의 애인인 테레사(에이미 로빈슨)가 있지만, 그녀가 이 둘을 연결해주는 끈이라고 보기도 어렵다.

그렇다면 찰리의 이러한 책임감은 그의 종교적 도덕성 때문일까? 영화의 도입부에서 감독은 교회 안에서 무릎을 꿇고 기도하는 찰리를 비춘다. 이후 영화가 진행되는 과정에서도 찰리는 독백을 통해 자신이 사유하는 건달임을 보여준다. 마피아 두목인 삼촌에게서 레스토랑을 이어받기 위해서 그는 자니와의 관계를 끊어야만 하지만, 그는 끝까지 자니를 버리지 못한다. 조직에서 살아남기 위한 야수적인 본능보다 그를 사로잡은 건 자니로 대표되는 비루한 삶에 대한 동정심과 연민이다. 그래서 건달들간의 패싸움 같은 폭력신은 화려한 스펙터클의 아우라를 분출하는 대신, 어설프고 우스꽝스럽게 다루어질 뿐이다. 이 영화의 압권은 피로 뒤범벅된 찰리와 자니가 비틀거리면서, 아무런 대사도 없이 골목으로 흩어지는 마지막 모습이다. 비열한 거리 위, 마피아가 되지 못하는 고독한 건달의 말로가 파토스를 배제한, 그러나 뚜렷한 스타일에 의해 각인된다.

이 영화에서 분열증적 건달을 훌륭하게 연기해낸 로버트 드 니로는 이후, 마틴 스코시즈의 페르소나로 자리잡게 된다. 실제로 뉴욕의 리틀 이탈리아에서 자란 마틴 스코시즈는 <비열한 거리>를 통해 자신의 영화인생이 ‘진정으로’ 시작되었음을 알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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