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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실을 향한 고독한 여행, <돈 컴 노킹>

EBS 1월6일(토) 밤 11시

황량한 사막을 달리는 카우보이, 그러나 카메라가 가까이 다가가니 그는 영락없이 고집만 남은 이빨 빠진 야수의 모습이다. 하워드 스펜서. 그는 지금 촬영장에서 도망치고 있는 중이다. 옷을 버리고, 말을 버리고, 신용카드를 찢어버리고 완벽히 보잘것없는 남자가 되어 그가 찾아간 곳은 고향이다. 30년 만에 만난 어머니는 그에게 아들이 있다는 사실을 알려준다. 술과 마약, 여자로 화려한 시절을 온통 소비해버리고 하워드에게 남은 건 씁쓸한 과거와 황폐한 마음, 그리고 노쇠한 몸이다. 그런 그가 기억을 더듬어 자신의 아들과 ‘어떤’ 과거를 찾으러 몬태나로 떠난다. 빔 벤더스의 길 위의 이야기는 이렇게 시작된다.

사막 위의 바싹 마른 선인장처럼 가시만 남은 하워드는 극작가이자 배우인 샘 셰퍼드가 연기한다. <파리 텍사스> 이후 20년 만에 만남 샘 셰퍼드와 빔 벤더스는 그 긴 시간의 공백이 무색할 만큼 거의 완벽한 호흡을 맞춘다. 샘 셰퍼드 특유의 이야기와 캐릭터들, 그리고 빔 벤더스만의 영상이 어우러져 최근 아리송했던 빔 벤더스의 행보에 분명한 도약의 지점을 마련해준다. 샘 셰퍼드가 여전히 주목하는 것은 몰락한 서부극과 해체된 가족극이며 그 사이를 오가는 한 남자의 방황이다. 빔 벤더스가 여전히 보고 싶어하는 것은 떠나고 돌아오고 떠나고, 길 위에서 시작해서 길 위에서 끝나는 이야기다. 그래서 <파리 텍사스>에서처럼 둘의 만남은 시간과 영혼을 상실한 남자가 과거로 돌아감으로써 과거를 복원하는 대신 과거를 제대로 다시 거친 뒤 미래로 ‘홀로’ 떠나는 여행을 그려낸다. 도피로 시작된 여정일지라도 결국 ‘어떤’ 진실을 경유할 수밖에 없는 여행. 빔 벤더스의 여행에는 줄곧 현실을 직시해야만 하는 막다른 상황이 일시적이지만 존재해왔다. 그리고 그에게는 그 순간을 가장 ‘영화적’으로 연출해내는 능력이 있다. 이를테면 하워드가 창밖으로 버려진 소파에 앉아 하염없이 생각에 잠길 때, 소파를 중심으로 원을 그리는 카메라 트래킹은 해가 저물 때까지 반복된다. 그가 마침내 딸과 대면하는 장면에서 카메라가 하워드의 얼굴을 클로즈업할 때, 노쇠한 사자의 찌그러진 눈에는 습기 같은 것이 맺힌다. 과거가, 기억이, 진실이 밀려오는 순간, 그 앞에서 먹먹해진 남자의 심장.

<파리 텍사스>의 트래비스는 <돈 컴 노킹>의 하워드가 되어, 황폐한 도시에서 황폐한 기억을 더듬으며 잠깐의 희망을 지나 다시 여행을 지속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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