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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룩한 계보> 장진 감독의 신작 <아들>
김현정 사진 이혜정 2007-01-09

일생의 단 하루, 아버지와 아들이 만나다

장진 감독이 <거룩한 계보>를 촬영하기 전부터 트리트먼트를 써놓았던 <아들>은 매우 단순한 이야기다. 무기수 강식은 15년 전 세살난 아들을 바깥에 두고 살인강도죄를 지어 감옥에 들어왔다. 교도관 박 경사와 동행하여 하루 동안 귀휴를 나가게 된 강식은 할머니와 살고 있는 고등학생 아들 준석을 만나러 간다. 상영시간이 85분 남짓 될 <아들>은 이처럼 15년 동안 한번도 만나지 못했던, 정이 쌓이는 것은 고사하고 얼굴조차 모르는 아버지와 아들의 하루를 담을 뿐이지만, 밋밋한 드라마 위에는 애틋하고 당혹스럽고 코믹한 감정이 스쳐가곤 한다. 장진 감독은 <아들>이 단 하루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중요하게 여기고 있다. “무기수가 귀휴를 나왔는데 그 시간이 이틀이든 일주일이든, 그것은 차이가 나지 않는다. 하지만 하루는 다르다. 강식은 아들이 홀로 집에 돌아오면서 보내는 시간이 아까워 아들을 교문 앞까지 마중나가지 않는가. 관객도 하루라는 시간 때문에 드라마에 더욱 깊숙이 들어올 수 있을 것이다.” 그의 말처럼 <아들>은 관객 스스로 긴장을 만들어나가는 영화다. 해가 기울고 노을이 지고 어둠이 내려앉아 여명이 밝기까지, 관객은 다시는 바깥세상으로 나오지 못할 아버지를 안타까워하며 가슴을 쓸어내릴 수밖에 없을 것이다. 혹은 치매 걸린 할머니를 모시고 또다시 혼자 남을 아들이 애처로워 한숨을 내쉬게 될 것이다.

한정된 시간 외에 드라마 외부에서 <아들>을 조여주는 또 하나의 요소는 강식이 무기수라는 사실이다. 그는 독백한다. 사형수는 사형을 기다리는 고통이 있겠지만, 무기수는 아무것도 기다릴 것이 없어 고통스럽다고. 그 때문에 강식은 시간에 의해 조금씩 존재가 지워져가는 듯했던 15년보다 귀휴를 기다리는 6일을 보내기를 더욱 힘들어한다. 그가 버려진 거나 마찬가지인 아들을 만나고 돌아온다면 수십년이 될지도 모르는 남은 세월, 기다릴 무언가를 가질 수 있을까. <아들>은 이런 소망을 강요하지 않고, 은근하게 권유하며, 온기와 눈물이 어리는 결말로 다가간다. 장진 감독은 무기수를 만나지는 않았지만 그 자신의 경험으로 인해 기다리는 시간이라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고 있다. “군대에서 너무 즐거웠다. 나는 제대만을 기다렸는데, 한번도 무언가를 그토록 절실하게 기다려본 적이 없는데, 자고 일어나기만 하면 기다리는 제대가 가깝게 다가오는 것이 아닌가. 사람들은 나더러 군대 체질이라며 말뚝 박으라고 했지만 그렇게 된다면 내 즐거움은 사라질 것이었다.” 그 때문에 강식이 만나고자 하는 대상은 굳이 아들이 아니어도 좋을지 모른다. “얼굴도 모르는 아들에게 무슨 정이 있겠나. 하지만 무기수는 죽은 사람이나 마찬가지다. 그들은 아마도 바깥에 자신을 기억하고 있는 사람이 남아 있는지 확인하고 싶을 거고, 그걸 소중하게 여길 것이다.” 그러므로 <아들>은 아버지와 아들의 정을 강조하는 가족영화라기보다 누군가의 아들일 수 있고 누군가를 아들로 가질 수 있는, 그 상황 자체의 소중함을 눈여겨보는 영화가 될 듯하다.

<킬러들의 수다> <아는 여자>에서 독백에 가까운 대사와 내레이션을 유용하게 쓰곤 했던 장진 감독은 이번에는 한 걸음 더 나가보았다. 그의 말에 따르면 <아들>은 내레이션의 영화다. 강식이 무서운 눈을 가졌다고 말하는 아들에게 상처받아 거울을 들여다볼 때, 준석이 조그만 침대 옆 바닥에 자리깔고 누운 아버지를 바보 같다며 타박할 때, 서먹함에서 친밀감으로 다가가는 부자(父子)의 감정은 자신의 마음속에서만 들리는 내레이션을 타고 흐른다. “내레이션은 <아들>의 인물들이 속마음을 가장 솔직하게 털어놓는 수단이다. 날아가는 철새 가족도 내레이션을 하는 까닭은 하늘이나 땅이나 이런 감정은 모두 통한다고 말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2D애니메이션으로 등장하게 되는 철새 가족은 진중한 상황을 비집고 간간이 코미디가 등장하는 <아들>에서 가장 웃기는 캐릭터라고 할 만하다. 기러기인가, 청둥오리인가 갈등하던 애니메이션팀은 좀더 진지하게 생겼다는 이유로 청둥오리를 택해 이미 4개월이 소요되는 작업에 들어갔다.

스물넷인데도 세살짜리 아들이 있었던 강식은 비슷한 나이에 아들 노아를 낳았던 배우 차승원에게 돌아갔다. “처지가 똑같잖아. (웃음) 맞아, 그때는 네가 짐스러웠어, 라면서 얼마나 공감을 하는지 모른다. 노아가 외국에서 공부를 하고 있어 아버지와 살갑게 정이 붙지 않는데, 그러니 모든 것을 다해주고 싶어하더라”는 장진 감독의 설명은 언뜻 ‘아버지’라는 단어와 매끈하게 붙지 않는 차승원의 캐스팅에 고개를 끄덕이도록 만들어준다. <묻지마 패밀리> <웰컴 투 동막골>로 제작자로서 장진 감독과 두번 인연을 맺었던 류덕환은 독한 말을 내뱉고 무뚝뚝하게 외면하다가 나란히 욕탕에 몸을 담그기에 이르는 아들 준석으로 캐스팅됐다. 앳된 인민군 소년병이 너무 자라버리지 않았을까 걱정했던 장진 감독은 <천하장사 마돈나>를 보고선 류덕환이 아직은 성장영화에 어울리는 이미지를 간직하고 있다고 결론을 내렸다.

대사가 두 마디 이상 되는 인물이 거의 없고 75신으로 규모도 아담한 <아들>은 “탄력을 잃으면 안 되는 영화의 성격 때문에 마음 가는 대로 툭툭 찍고 개봉도 늦지 않게” 할 것이다. 그러나 탄력이 있어야 한다는 것과 성미가 급하다는 것을 혼동해서는 안 된다. 서먹하게 만난 아버지와 아들이 함께 소줏잔을 기울이고 밤길을 달리고 텔레비전 안테나를 고쳐 다는 모든 순간들은, 끝내는 따뜻한 정으로 뭉쳐져야 하므로 어느 하나 허술하게 흘려보낼 수 없을 것이다. 그렇다고 착하거나 다정하거나 무게있는 영화라는 의미만도 아니다. 강식이 귀휴를 나가기 전에 공부하는 자료는 요즘 아이들이 쓰는 채팅어들이다. 강식은 아들을 만나면 이렇게 인사를 건네고 싶어한다. “하이, 방가방가.”

장진 감독, 저예산영화를 만나다

슈퍼16mm 같은 매체를 활용해 <아들>을 15억원 남짓한 예산으로 찍으려고 했던 장진 감독은 상업영화 투자사가 합류하면서 “굳이 힘들게 할 거 뭐 있나” 싶어 제작비를 20억원까지 높여 잡았다. 스탭과 배우들이 평소보다 개런티를 낮게 받았고, 등장인물과 촬영분량이 적고, 거창한 세트나 특수효과가 필요없는 영화이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러나 장진 감독은 이러한 저예산 전략이 앞으로도 많은 경우에 적용될 것이라고 말했다. “나는 기획영화의 힘을 보여주고 싶다. 내가 생각하는 저예산 개념은 단지 예산이 적은 것이 아니고, 기획의 힘으로 제작비 누수를 막는 것이다. 그것이 한국형 저예산이라고 믿는다.” 장진 감독이 <아들> 이후 신작으로 계획하고 있는 SF사극 <애일리 안첨지>가 그러한 개념을 적용한 영화가 될 것이다. 장진 감독은 조선시대 임금에게 진상할 벼를 키우고 있는 논에 우주선이 내려앉아 미스터리 서클을 만들면서 시작되는 <애일리 안첨지>의 제작비를 30억원 안팎으로 예상하고 있다. “이건 누가 봐도 50억원짜리 영화였다. 하지만 조선시대 우주선이 얼마나 거창하겠는가. 사극이어서 제작비가 일정 수준 아래로는 내려가기 힘들겠지만 30억원이면 할 수 있겠다고 했다. 내가 어릴 적부터 상상하며 좋아하던 종류의 이야기여서 기대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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