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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널리즘 영화비평이란 이런 것
김혜리 2007-01-11

<위대한 영화> 전 2권 로저 에버트 지음/ 윤철희 옮김/ 을유문화사 펴냄

4년 전 번역 출간된 로저 에버트의 영화평론집 <위대한 영화>의 2권이 나왔다. “위대한 영화 베스트 100”이 아니라 “위대한 영화 중 100편”에 관한 글이라는, 머리말의 세심한 일러두기를 독자가 유념한다면 저자는 더욱 기뻐할 것이다. 엄지손가락과 별점의 ‘대마왕’처럼 간주되는 평론가지만 에버트는 랭킹과 리스트 작성을 “멍청한 짓”이라고 일축한다. 그럼 왜 하냐고? 글쎄. 어물전 주인이 비늘 다듬기 싫다고 안 할 수야 있나, 정도가 에버트의 입장이다. 이 책에 실린 100편의 영화 중 99편은 이른바 ‘데렉 말콤 테스트’를 거쳤다. 데렉 말콤은 <가디언>에 오랫동안 기고한 평론가인데 “이 영화를 다시는 볼 수 없을 거라는 상상을 견딜 수 있을까, 없을까?”를 자문하며 영화를 분류했다고 한다. 테스트를 통과 못하고도 수록된 영화는 20세기 초 미국의 인종주의가 반점처럼 박혀 있는 그리피스의 <국가의 탄생>이다. 2권의 번역은 1권보다 매끈하고 정확하다. 이번 기회에 1권의 거친 번역을 꼼꼼히 바로잡았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로저 에버트가 <시카고 선 타임스>에 영화평을 기고한 지 올해로 무려 40년이다. 이 성실한 평론가는 “강한 자가 오래 남는 것이 아니라, 오래 남는 자가 강하다”는 말- 간혹 궤변에 인용되는 구절이긴 하지만- 을 증명한다. 그의 관록 덕에 <위대한 영화>의 독자는 <스카페이스>가 <소프라노스> 같은 후예들에 섬광이 가려졌으나 본디 얼마나 충격적인 영화였는지 등등의 통시적 고찰을 즐길 수 있다. 일간지 평론가, 그것도 매체에 따라 독자층이 구별되는 유럽과 달리 10대에서 할아버지까지 보편적 대중을 설득해야 하는 미국 일간지의 평자로 단련된 그의 글은 쉽고 유머러스하며 적당히 허풍스럽다. 예를 들어 이런 문장. “이 영화는 감상을 금지시켜야만 한다. 그렇지 않으면 이 영화를 사랑하는 사람들은 되풀이해 감상하며 매혹될 것이다.” 또한 그의 글은 아이디어가 선명하다(그래서 마케터가 인용하기도 그만이다). 덤으로, 에버트의 평에는 풍부하고 오랜 취재 경험만이 얹어줄 수 있는 흥미로운 팁이 있다. 초라한 단역으로 커리어를 마감해가던 버스터 키튼이 1965년 베니스영화제 회고전에서 갈채를 받으며 특유의 포커페이스로 “박수소리는 근사하지만, 너무 늦었습니다”라고 화답한 사실을 에버트가 회고할 때 우리는 솔깃해진다. 무엇보다 로저 에버트는, 빠른 대신 얄팍해도 좋은 것이 저널리즘 비평이라고 내심 믿는 게으른 글쟁이들에게 만만히 인용될 평론가가 결코 아니다. 이 책의 독자는 그의 통찰력을 이를테면 <당나귀 발타자르>의 시점 묘사에서, 에릭 로메르 영화의 풍미 분석에서, <라스베가스를 떠나며>의 니콜라스 케이지 연기 품평에서 확인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