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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길을 사로잡는 비주얼 테크닉 <데자뷰>
박혜명 2007-01-10

과학으로 진보한 이미지, 진보한 과학에 대답하지 않는 영화

한가한 축제일, 미 남부 뉴올리언스 부두에서 대형 선박 폭파 사건이 일어난다. 민간인 사상자 수가 엄청난 가운데 원인 조사를 나온 수사관 더그 칼린(덴젤 워싱턴)은 해안으로 떠밀려온 시신 하나가 폭파 테러 이전에 죽은 것임을 알아낸다. 피살자를 테러 희생자로 위장시키려는 범인의 계획이 아닐까 짐작하고 칼린은 증거물 확보에 나선다. 테러 사건 공동 조사에 나선 FBI 요원 프리즈와라(발 킬머)는 칼린의 명민함을 믿고 극비 감시실로 데려간다. 그곳은 시간의 직선 축을 접어 사람이 나흘 전으로 돌아갈 수 있는 타임머신이 있는 곳이다.

미국의 스티븐 호킹이라 불리는 컬럼비아대 브라이언 그린 박사에 따르면 <데자뷰>의 설정은 언젠가 실현 가능해질지도 모르는 이야기다. 토니 스콧 감독의 말을 빌려 <데자뷰>는 거창한 “사이언스픽션(SF)은 아니고 사이언스팩트(Science Fact)” 정도에 불과한 가벼운 미래 예측에 관한 것이지만, 영화의 비주얼만큼은 그 SF적인 설정의 덕을 많이 보고 있다. <데자뷰>에서 벌어지는 제일 중요한 대목은 4일이라는 시간차가 접히면서 두개의 시간대가 한 공간에 공존하게 되는 것인데, 예를 들면 이렇다. 나흘 전 이미지를 전시하는 대형 컴퓨터 스크린 안에 아름다운 피살자 클레어(폴라 패튼)가 있는데 그녀가 난데없이 스크린 밖 현재에서 쏜 빛에 반응한다든지, 마침내 시간의 벽을 뚫은 칼린이 현재의 공간과 나흘 전 공간을 동시에 경험하면서 도로를 주행한다든지 하는 것들이다. 언어로는 더이상 설명이 불가능한 이런 장면들이 토니 스콧의 민첩하고 감상적인 비주얼 안에서 스릴을 자아내기도 하고 로맨스의 꽃을 피워내기도 한다.

칼린이 시간 여행을 감행한 목적은 클레어의 죽음과 선박 폭파를 모두 막는 것. 한 인간은 과연 과거를 고치고 미래를 바꿀 수 있을까? 영화 속의 타임머신 전문가는 이렇게 말한다. “바꿀 수는 있겠지만 그건 아주 작은 변화에 불과해서 큰 흐름은 결코 바꾸지 못해.” 그러나 그것이 어느 개인의 인생, 나아가서 생명의 결과까지 바꿀 수 있는 변화라면 어떻게 될까? 영화는 묵묵부답으로 일관하나, <데자뷰>의 이야기로부터 자연스레 제기되는 당위와 윤리의 질문들은 쉽게 사라질 것들이 아니다. 단, <에너미 오브 스테이트> 이후 8년 만에 브룩하이머와 호흡을 맞춘 토니 스콧의 비주얼 테크닉은 여전히 눈길을 사로잡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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