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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얀거탑>의 안판석 감독 인터뷰
정재혁 사진 오계옥 2007-01-26

안판석 감독이 TV로 돌아왔다. SBS 일일드라마 <흥부네 박터졌네> 이후 영화 <국경의 남쪽>으로 충무로에 발을 들였던 안판석 감독이 본인의 안방 MBC로 돌아가 미니시리즈 <하얀거탑>을 연출하고 있다. 1, 2화가 나간 뒤 드라마에 대한 반응이 조금씩 나오고 있던 12일 금요일 밤 12시, 13일 방영분을 편집하느라 여념이 없는 안판석 감독을 MBC 로비에서 만났다.

-3년 만의 드라마다. 소감이 어떤가. =힘들다. 드라마는 육체적으로 정말 고단하다. 잠을 거의 못 자니까. 1, 2화만 해도 70분씩 총 140분이다. 벌써 영화 한편 분량을 넘어선다. 시간은 별로 없고 찍어야 할 건 많으니 부담이 된다. 시청자의 눈도 높아졌으니 대충 할 수도 없지 않나. 사실 1, 2화도 테이프를 빼앗기다시피해서 방송된 거다. 음악을 다 못 넣었는데, 주조정실에선 테이프를 달라고 성화더라. 시간이 9시30분이었으니. 어∼ 하는 순간에 방송됐다. 이 복도를 왔다 갔다 하면서 얼마나 화를 냈는지 모른다. (웃음)

-병원을 소재로 한 드라마다. 전작들을 고려했을 때 의외라는 생각이 든다. =우연인지 필연인지 모르겠지만 나의 전작들은 연출방식이나 톤이 좀 여성 취향적이다. 내가 1남4녀 중 막내고 온통 여자들 틈에서 자라서 그런지 모르겠다. 반면 이번 작품은 좀 하드보일드하고, 남성 취향에 가깝다. 그래서 의외라면 의외인 것 같다. 하지만 나는 어릴 적부터 <사운드 오브 뮤직>이나 <로미오와 줄리엣> 못지않게 <대부>도 좋아했다. 여성적인 취향 못지않게 남성적인 기호도 갖고 있었던 것 같다. 또 다른 이유라면 예전에 해보지 못한 작품에 대한 희구랄까.

-연출 제의는 언제 받았나. =김종학 프로덕션과는 계약기간이 남아 있어 미니시리즈 한편 정도를 더 해야 했다. 백지상태에서 작품을 골랐다면 하지 않았을 드라마다. 하지만 전문 드라마를 해보고 싶은 마음이 있었고, 원작이 워낙 좋아서 하기로 했다. <국경의 남쪽>과 비슷한 시기에 준비에 들어갔던 것 같다.

-현재 몇화까지 촬영했나. =1화, 2화 차례대로 찍는 게 아니라, 1화 찍다가 8화 찍고, 3화 찍다가 6화 찍어서 정확하게는 모르겠지만, 7화분 정도 찍어놓은 것 같다. 사실 이번 드라마는 사전제작을 목표로 계획했다. 중간에 미술작업이 길어지면서 두달 정도 까먹어서 이렇게 됐지만. (웃음)

-수술장면은 연기 연출 이외에 신경써야 할 부분이 많을 것 같다. =정말 힘들고 머리가 아프다. 이매지너리(imaginary) 라인이나 관심선이 많아지고 인물들의 관계가 입체적으로 되어 있어서 수술장면을 보면 골치가 아프다. 집도의와 어시스턴트의 움직임, 참관실 사람들의 위치와 시선 등 모든 게 맞아떨어져야 하니 쉽지가 않다. 하지만 이게 딱 들어맞을 땐 저절로 스펙터클이 생기니 해볼 만한 것 같다.

-의학용어에 대한 자막처리를 전혀 하지 않더라. =자막은 읽어도 모른다. 의학용어는 한국말로도 어렵다. 간공작봉합술? 또 자막이 간단하게 두세 단어로 해결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자막을 하자고 하면 화면 전체를 덮어야 한다. 나도 대본을 볼 때는 용어를 다 외우고 설명을 듣지만 다시 보면 또 모른다. 그리고 이 드라마는 결과적으로 의학용어를 몰라도 아무런 지장이 없는 얘기다.

-인물들의 대사가 굉장히 세다. =그건 결국 캐릭터의 문제인 것 같다. 사실 이는 원작 소설에서 기인하는 부분이기도 하다. 이를테면 편안한 일상에서 사람들은 누구나 젠틀맨이다. 하지만 무언가 선택에 기로에 설 때는 성격이 드러난다. 이 소설은 인물들을 선택 속으로 계속 몰고 간다. 그래서 센 대사들이 절로 튀어나오는 거다. 상황이 인간의 바닥을 그대로 드러내게 하는 거랄까.

-장준혁이란 인물에서 <국경의 남쪽>의 김선호가 묘하게 겹쳐 보였다. 가령 선택의 기로에 선 김선호랄까, 장준혁은 이미 권력의 결말을 알면서도 계속 쫓고 있고, 드라마는 이를 냉소하지만 조롱하진 않는 듯한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나는 항상 그런 인물을 마음속에 주인공으로 그리고 있는 것 같다. 장준혁도 완전한 악인은 아니다. 왜 인물이라는 게 항상 공감이 가야 하지 않나. 드라마의 5분, 10분을 보고 시청자는 주인공이 자신과 같다는 생각을 해야 한다. 아마존이란 정글인 줄 알고 들어갔는데 자신을 발견하는 경험, 그게 중요한 것 같다.

-드라마가 진행되면서 의료계의 치부들이 밝혀진다. 픽션이긴 하지만 부담은 없나. =그런 부담은 전혀 없다. 나는 우리 사회가 문화적으로 그렇게 뒤처져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특히 의사 집단이라면 어느 정도 배운 사람들이지 않은가. 나는 그들이 문화적 성숙성을 보여주리라 믿는다.

-결국 <하얀거탑>은 무슨 이야기라고 생각하나. =너무나 많은 이야기를 담고 있는 원작이라 딱 하나를 집어서 말할 순 없지만, 최소한 드라마는 실용을 쫓을 것인가, 가치를 좇을 것인가의 이야기다. 이는 곧 정치적으로 좌냐, 우냐의 문제기도 하다. 사실 모든 인간들은 매순간 고민을 하고 선택을 하면서 산다. 하지만 우리는 그걸 선택이라고 인식하지 못한다. 이 드라마는 극적인 상황에 몰린 주인공들을 매개로 자신을 돌아보게 한다.

-다시 영화를 찍을 생각은 없나. =영화를 하고 싶다. 아직 구체적인 계획은 없지만 하고 싶다는 마음은 있다. 사실 <국경의 남쪽>을 하면서 여러 가지를 배웠다. 특히 집중력. 한 장면을 집중력있게 뽑아내는 것. 이번 작품을 하는 데도 많은 도움이 된다. 내가 드라마 PD 출신이라 자꾸 전직에 초점이 맞춰지는데 영화든 드라마든 그냥 자유롭게 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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