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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ank By Me] 소심한 주인공마저 바꾸어놓는 독특한 가면들

오~ 놀라워라, 가면의 힘!

복면이라고 해야 할까, 마스크라고 해야 할까. 아니면 그냥 가면? 편의상 가면이라고 치자. 잠깐, 여기서 슈퍼히어로들의 가면은 제외하기로 한다.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변신을 거치니, 어찌 그들의 힘이 가면에서만 나올까. 도대체 망토 없이 박쥐 가면만 쓴 배트맨 봤나? 쫄쫄이 의상 빼고 거미인간 가면만 쓴 스파이더 맨은 또 얼마나 웃길까? 어쨌거나 가면은 초인적 영웅들의 전유물만은 아니다. 평소엔 묻어가는 게 컨셉인 소심한 인간들마저 가면을 쓰고 나면 무식할 정도로 용기가 생기게 마련. 그러니 은행강도의 우스꽝스런 스타킹 코스프레가 아니라면, 영화 속 가면은 가면 이상의 구실을 하는 게 사실이다. 때마침 히트곡 <이차선 도로>를 발표한 트로트 제왕 ‘복면달호’군이 등장했으니, 가면의 힘을 어디까지 발휘하는지 한번 살펴보기로 한다.

5위 <스크림>의 일그러진 가면 뭉크의 <절규>를 연상시킨다 하면, 위대한 화가의 노여움을 살까? 그래도 킬러의 가면치고는 좀 웃긴다. 축 처진 눈에 한 3일쯤 굶은 것 같은 초췌한 포스. 위협적이기는커녕 불쌍하기까지 하다. 그런데 알고 보니 이게 컨셉인 듯싶다. 할로윈 코스프레인 양 방심하게 해놓고 결정적 순간에 푹푹 찌르기! 게다가 어찌나 전염성이 강한지, 끔찍한 살인사건이 일어났다는데도 10대 애들은 너도나도 이 가면을 쓰고 싸돌아다니니, 그 번식력이 가히 스미스 요원 수준이다. 웨스 크레이븐 감독은 캘리포니아에 헌팅하러 갔다가 우연히 이 가면을 발견했다는데, 처음에는 바보 같다며 제작자들의 원성이 자자했다고. 하지만 결과는 대성공. 범인이 누군지는 잊어버려도, 그놈의 일그러진 가면은 절대 잊을 수 없을 테니 말이다.

4위 <아이즈 와이드 셧>의 럭셔리한 가면 무섭다. 정말 리얼하게 무섭다. 오페라의 유령이 수십명으로 불어난 이 괴기스런 장면이라니! 이곳은 윌리엄(톰 크루즈)이 우연히 들어가게 된 비밀스런 집단혼음 파티장. 언뜻 럭셔리한 가면이 이 파티의 패션코드처럼 보이지만, 사실인즉 워낙 거물급 인사들이 모인 자리라 정체를 숨기기 위한 것이다. 결국 부주의한 불청객 윌리엄은 어르신들께 들켜 혼쭐이 나는데, 가면 사나이들에 둘러싸인 채 혼자 ‘생얼’로 서 있어야 하는 운명이다. 철저한 위선에 금이 간 찰나, 스탠리 큐브릭 감독은 인간의 양면성과 광기, 변태스런 욕정을 심리적 압박감을 통해 보여준다. 역시 스탠리 큐브릭! 그래도 그렇지, 차라리 때려주지 그러셨어요? 그렇게 차가운 가면을 쓰고 차갑게 심문하니 이보다 더 섬뜩할 수 없다고요!

3위 <복면달호>의 무대용 복면 달호(차태현)가 복면을 쓴 까닭은? 간단하다. 쪽팔려서. 그라고 왜 바람머리 휘날리며 록을 열창하고 싶지 않았겠는가. 그러나 그놈의 계약서를 꼼꼼히 파악하지 못한 게 죄다. 아니, 큰소리기획 장 사장(임채무)의 손에 걸려든 것부터가 잘못된 건가? 그 순간부터 그는 ‘봉필’이란 예명을 가진 트로트 가수가 됐다. 로커와 트로트 가수라는 건널 수 없는 강을 건너기 위해, 그는 일단 복면을 썼다. 그런데 인간만사 새옹지마라 했던가. 달호의 구성진 트로트는 국민들의 심장에 가 박혔고, 금세 동방신기 안 부러울 인기를 차지하게 됐으니. 얼굴 없는 가수는 봤지만, 복면 쓴 가수는 처음이라 일단 신선도에 높은 점수를 주고 싶다. 복면 컨셉이 한국 가요계에도 널리널리 퍼져, 천문학적인 성형수술 비용을 줄여보는 건 어떨까.

2위 <반칙왕>의 타이거 마스크 세상이 참 시끄럽다. 교통위반 한 번 안 하고 사는데도, 다들 나를 우습게 본다. 이렇게 사는 게 쪼글쪼글한데, 반칙 좀 하고 살면 어때? 대호(송강호)가 레슬링을 배우기 시작한 건 우연처럼 보여도, 어쩌면 그의 억눌린 본능이 그를 레슬링장으로 이끌었을지도 모른다. 반칙왕이 썼다는 타이거 마스크를 쓴 대호. 스포츠정신 따윈 개나 주라지. 눈알 찌르고, 포크 감추는 법을 익히는 것만도 버거운데 말이다. 그런데 마스크를 쓰고 나니 없던 용기도 생기나 보다. 짝사랑하던 여자한테 고백하기, 악질 상사 공격하기 등. 그러나 세상은 링보다 더 반칙이 통하는 곳인지라 기껏 용기를 내도 “너 나이가 몇인데 그런 거 써?” 하고 면박당할 뿐이다. 슬프게도 대호의 마스크는 변화의 힘은 없다. 하지만 감동의 힘은 있다.

1위 <마스크>의 초록 마스크 가면이란 본디 정체를 가려주기 위한 것인데, <마스크>에서는 정반대의 구실을 한다. 연두색 페인트를 뒤집어쓴 듯한 피부에 샛노란 양복, 기준치를 넘어서는 사이즈의 치아. 색맹이 아니고서야 단번에 알아차릴 수 있겠다. 게다가 안면근육 움직임의 달인, 짐 캐리가 연기했으니 오죽하랴. 슈퍼맨과 스파이더 맨이 표정을 읽을 수 없는 반면, 마스크맨은 가면과 맨 얼굴이 혼연일체가 되는 놀라운 경지를 보여준다. 애초에 제작진은 <마스크>를 어두운 분위기의 호러영화로 의도했었다는데, 결과적으로는 화사한 슬랩스틱영화로 탄생했다. 이야기는 아주 단순하다. 평범한 은행원이 우연히 고대유물인 마스크를 주우면서 불사신이 된다는 이야기. 그런데 이 마스크, 참 기특하다. 초인적 능력은 물론, 로맨스와 댄스실력, 유머감각까지 선사했으니 말이다. 하품나는 일상에서 신나는 일탈을 부추긴 녀석을 당당히 명예의 전당에 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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