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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인을 위한 격정의 애국가 <동경심판>
김민경 2007-02-28

일본을 향한 준엄한 경고를 담은 법정 실화 리포트.

1946년 9월29일, 도쿄에선 패전국 일본의 전범 처리를 위한 극동국제군사법정이 열렸다. 미국, 영국, 중국, 소련, 호주, 인도 등 11개국의 판사가 맡은 이 특별재판은 2년6개월, 818회에 걸쳐 진행됐으며 400여명의 증인과 4천여개의 증거를 동원해 동아시아를 짓밟은 일제의 잔학상을 증명했다. 도조 히데키, 도이하라 겐지, 이카가키 세이시로 등 28인의 A급 전범의 화려한 망언의 기록을 함께 남긴 유명한 전범 재판의 실화가, 중국 TV에서 <정복> 등의 인기 범죄드라마를 연출해온 고군서 감독에 의해 스크린에 옮겨졌다. <동경심판>은 중국 대표인 메이루아오 판사(류송인)와 젊은 중국인 기자 샤오난(주효천)의 눈에 비친 법정과 도쿄 거리의 풍경을 그린다. 서구 열강에서 온 다른 판사들의 보이지 않는 차별 속에서, 메이는 일제가 응분의 대가를 치르게 하려고 분투한다. 도쿄 유학생 출신인 샤오난은 오랜만에 만난 일본인 친구들이 패전의 상처로 망가져가는 과정을 지켜본다. 자국의 만행을 알지 못한 이들은 증오의 화살을 샤오난에게 돌리고, 법정에 선 전쟁 지도자들은 일본의 학살이 “아시아라는 가정에서 형 일본이 말 안 듣는 동생 중국을 따끔하게 타이른 것뿐”이라고 버틴다.

<동경심판>은 법정극이지만 다큐멘터리에 가까운 형식을 취한다. 4만8천쪽에 이르는 실제 법정 기록에서 건져올린 생생한 증언과 방청석의 분노를 담아내며, 황고둔 사건, 9·18 만주사변, 난징대학살 등 실제 법정에 오른 사건들을 차례차례 짚어간다. 난징대학살과 태평양전쟁 등의 기록필름이 수시로 인서트되고, 메이의 보이스 오버 내레이션으로 재판의 주요 국면을 해설하는 장면들은 TV다큐멘터리를 연상시킨다. 감독은 법정이란 한정된 공간을 무대로 참극의 실상과 전범 단죄의 당위성을 뚝심있게 풀어가지만, 후반부로 갈수록 영화는 균형을 잃고 이글거리는 분노의 격문으로 화한다. 법정의 심문장면은 절묘한 논박의 쾌감보다 시원하게 쏟아붓는 카타르시스에 치중하고, 역사에 희생된 젊은이들의 파국도 과도한 정념 속에 투박하게 처리된다. 제대로 된 역사 청산을 호소하는 감독의 진정성은 전해지지만, 다큐멘터리 필름에 비장한 효과음을 덧칠하는 순간부터 <동경심판>은 중국인을 위한 격정의 애국가에 머물러버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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