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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행보다 만듦새가 이 영화의 존재 의미”
2001-10-10

<고양이를 부탁해> 개봉 앞둔 마술피리 오기민 대표 (2)

네편 연달아 신인감독과 작업했다. 그것도 아주 섬세한 성격의 소유자들만 골라서.

이제 섬세하지 못한 감독과 일하면 내가 정말 부정적인 의미에서 개입할 것 같다. 내가 판 함정에 빠진 것인지 섬세하지 못한 감독과는 일을 못할 것 같다. <내 생에 꼭 하루뿐일 특별한 날>을 감독할 영주(변영주 감독)에게는 농담을 하기도 한다. “진하게 찍어야 해!”

거슬러올라가서, 회사는 대체 왜 차렸나.

기존 영화사에서 프리랜서 프로듀서로 일하면서 지금 내가 하듯 프로젝트 계발단계부터 함께 작업하는 방식을 취하면 2년에 한편밖에 못 만든다. 동시에 뭔가를 진행할 수도 없다. 그래서 실기(失期)하기도 하고 미뤄지기도 하고 때로는 아이디어를 빼앗기는 영화도 생겼다. 내가 감독도 아닌데 이렇게 일할 필요가 있나 싶었다. 회사를 차려야만 원하는 작품을 돌릴 수 있고 구상하는 시스템도 시도해볼 수 있다고 생각했다. 지금은 무진장 후회하지만. (웃음)

어떤 종류의 시스템을 시도해보고 싶었나.

한마디로 정리하긴 힘들지만 좀더 가족적이고 설득이 필요없이 심중을 알아차리는 사람들과 일하고 싶었다. 내가 감독이 아닌 이상 그런 사람들을 곁에 두는 방법은 회사밖에 없다. 전문 조감독제도 해보고 싶었고 그 밖에 실험하고픈 ‘유치한’ 발상들이 있었다.

후회 많이 되나.

한달에 한번 월급 마련할 때마다. (웃음) 돈을 조금이라도 더 벌면 경영, 관리를 해줄 사람을 따로 두고 작품을 계발하고 제작하는 일에만 전념하고 싶다. 일주일에 한번쯤 좋아하는 낚시나 다니면서. 지금은 부가세가 뭔지도 몰라 회계사 친구에게 도움을 구하고, 씨네2000의 회계담당에게 전화로 묻는다.

<고양이를 부탁해>도 그렇고 회사도 그렇고 스탭 가운데 여자가 유난히 많다.

남자니까 여자 좋아하는 게 당연한 거다. 남자들은 만나면 나이와 지위를 물으면서 말문을 연다. 서로를 경쟁상대로 견제하는 거다. 옛날부터 여자들과 수다떠는 것을 좋아했다. <여고괴담> 때는 보조출연 여고생들과 1주일에 한번씩 떠드는 일이 큰 낙이었다.

마술피리는 어떤 개성을 지닌 영화를 만들겠다고 표방한 첫 영화사다. 반면 이 점을 근심하는 사람도 있다. 즉, 하나의 회사로서 생존이 가능할까의 문제다.

환경은 점점 어려워지고 있다. 15만, 18만 관객을 동원하는 영화들이 살아남을 수 있는 구조가 소멸하고 있다는 점이 가장 끔찍하다. 배급도 <무사> 같은 영화는 와이드 개봉을 하고 어떤 부류의 영화는 3개관만 잡아 6주쯤 상영하고 입소문이 나면 순회상영을 하는 방식으로 할 수도 있다. 지금의 영화계 리듬은 일률적이고 숨가쁘다. 그러나 시장은 창출되는 거다. 색깔있는 영화들이 나와야 풍부한 시장이 생긴다. 거창한 의무감에서 아니라 그게 내가 하고 싶은 영화다. 돈 번 다음에 좋은 영화 찍는다는 말은 어불성설이다. 돈 벌면 다음에도 돈 벌 영화만 하게 된다. 그것이 시스템이다. 한두편 하고 영화를 안 만들 것도 아닌데 이러이러한 영화에 관심이 있다고 인식이 돼야 또 그런 시나리오, 감독을 만날 수 있다. 마술피리라는 회사명부터 그렇게 거창한 것을 하지 않겠다는 의미가 있었다. 나는 낙관적인 사람이다. 학창 시절부터 위태롭게는 살았어도 하려고 마음먹었던 일을 하며 살았다. 여기까지 올 수 있었던 것은 <여고괴담> 약발이었다고 생각한다. 제일 중요한 건 영화를 계속할 수 있는 기반을 만드는 것이다. 부담되는 영화를 하나 하고 나면 두세개는 버는 영화를 해서 전체적으로 약간씩 돈 버는 영화사가 되는 것이다. 그러면 투자자들이 계속 나랑 일하지 않을까. 그것이 전략이라면 전략이다. 뜻 맞는 몇몇 신생 영화사들과 연대를 모색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는데.

홍보사를 차리고 스탭을 공유하는 정도를 생각했다. 나는 섬세한 감독들하고만 하니까 제작 스탭들이 힘들지 않은가. (웃음) 다른 장르에는 사조와 경향이 있는데 영화에는 없는 것 같다. 이런 연대가 어떤 흐름이 될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차승재, 심재명 대표 때와 우리는 출발선이 다르다. 본원적 축적이랄까. 조건이 다르므로 다른 형식이 필요하긴 하다고 본다.

앞으로 만들 영화들은.

변영주 감독, 신혜은 PD의 <내 생애 꼭 하루뿐일 특별한 날>은 20억원 정도, <장화홍련전>은 28, 29억원 정도의 예산을 점치고 있다. 캐스팅중인 <내 생애 꼭 하루뿐일 특별한 날>은 남해군의 협조로 순조롭게 진행중이다. <장화홍련전>은 계모 역을 빼면 10대 배우들이 나올 터라 미술쪽에 예산이 몰린다. 공개된 프로젝트만 보면 당분간은 여자가 중심이 된 영화지만 진짜 하고 싶은 영화는 약간 다르다. 지나치게 사적인 영역보다 사회적 영역에 관한 영화를 만들고 싶다. 예컨대 감정을 다루는 영화는 굳이 내가 안 해도 된다고 본다. 켄 로치 영화 같은 작품은 언제든 하고 싶다. 내가 기대하고 존경했던 감독들이 특히 2000년대 들어 굉장히 사적인 영역으로만 침잠해가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꼭 광주항쟁 같은 소재를 다루지 않아도 내가 왜 지금 이 영화를 하는지 명확히 설명할 수 있는 영화를 하고 싶다. 그것이 예를 들어 전도연 주연의 멜로영화가 되지 말라는 법도 없다. 최근 다큐멘터리에 공장 풍경이 비쳐졌는데, 내가 아는 80년대 공장과 분위기가 많이 달랐다. 섬세한 감독도 충분히 흥행할 수 있는 무기가 된다. 어디서 근거하는 자신감인지 모르지만 서울 100만은 몰라도 40, 50만명 드는 영화는 충분히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한다.

영화 한편 마치고 나면 머리카락이 많이 빠지지 않나.

며칠 전 욕조 하수구가 머리칼로 막혀 대공사를 했다. (웃음)

글 허문영 moon8@hani.co.kr· 김혜리 vermeer@hani.co.kr

사진 정진환 jungjh@hani.co.kr▶ <고양이를 부탁해> 개봉 앞둔 마술피리 오기민 대표 (1)

▶ <고양이를 부탁해> 개봉 앞둔 마술피리 오기민 대표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