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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잡지 편집장들이 말하는 만화잡지
2007-03-02

만화잡지 창간은 미친 짓이다?

잡지의 꿈 버리지 못하는 어느 잡지쟁이의 고백

만화전문 출판사인 ‘거북이북스’ 간판을 세운 지 이제 20개월째다. 21년 전 <보물섬> 기자로 만화동네에 들어와 아직도 버티고 있다. 새로운 만화책을 만든다는 재미와 고통에 여전히 빠져 있다. 최근엔 키워드 무크지 2호인 <에로틱>도 출간했다. 한 지붕 열다섯 작가의 은밀한 상상을 보자는 거다. 아직도 내게 잡지의 꿈이 남아 있는 걸까? 매거진과 북의 타협점인 무크(mook)지를 발간하고 있으니까.

이 바쁜 와중에 만화잡지의 창간 소식을 들린다. 창간이라니! 내게 있어 ‘창간’은 늘 가슴이 벌렁벌렁거릴 만큼 특별한 의미이자 환상이다. 궁금증이 도발한다. <씨네21>에서 왜? 컨셉은? 작가진은? 독자 타깃은? 판형은? 제호는? 심지어, 용지는 뭘 쓸까?

만화잡지를 만드는 일에는 구조적인 아픔이 있다. 일단 큰 수익을 내기가 하늘의 별 따기만큼 어렵다. 누부시게 변화하고 있는 디지털 시대에 전통적인 종이 매체, 그것도 만화잡지는 창간 자체가 대단한 용기다. 일단 잡지 한쪽 한쪽의 원고료 부담이 크다. 제작비도 만만치 않다. 광고주들의 편견에 힘입어(?) 광고 수주도 어렵다. 연재된 작품을 모아 단행본을 발간하기 전까지는 판매 수금에만 의지해야 한다. 문제는 그 기간을 버티기가 참 힘들다는 거다. 일정 기간 적자를 감수하고 단행본 판매 사이클을 탔어도 대중을 사로잡는 히트작들을 못 만들면 결국 게임은 끝난다. 이러니 만화잡지 창간은 결국 미친 짓이 되는 건가?

만화잡지에 어떤 매력이 있었던 걸까? 거기에는 손익분석이나 경영이론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아름다운 연대’가 있다. 창작열을 가진 개성있는 작가진, 만화 열정이 넘치는 편집진, 그리고 만화의 가치를 즐길 줄 아는 독자들 사이에 강력하게 형성되는 정서적 연대감 말이다. 여러 장르의 만화를 만들어 한상 가득 차려낸 신선한 창작 만화를 한장 한장 넘기며 읽는 즐거움은 잡지의 힘이다. 물론 다음호가 몹시 기다려져야 한다. ‘정기적인 마감’이라는 매력있는 장치도 있다. 만화잡지의 발행 인터벌은 만화 콘텐츠를 창작하는 원동력이 된다. 긴박한 마감 전선 속에서 공포의 마감 압박 속에서 기가 막힌 상상력들이 꿈틀대며 탄생한다. 치열한 작품 경쟁은 장편 베스트셀러를 터뜨린다. 도중하차 작가도 있지만 걸출한 스타급 작가가 화려하게 탄생하기도 한다. 이러니 만화가나 편집자나 만화잡지의 매력에서 자유로울 수가 없었던 것이다.

문화 동네의 주변인이었던 만화. 그중에서도 제일 어렵고 힘들어진 만화잡지 시장이지만 새로운 창간 소식은 첫 데이트처럼 설레게 한다. 일단, ‘우리만의 리그’가 되지 않도록 하자. 웹의 거센 물결은 만화잡지한테 존재의 이유를 묻는다. 아이디어가 필요하다. 뉴미디어의 광풍 속에서 잘 살아남을 수 있는 아이디어! 그래야 미친 짓이 아니라는 걸 보여줄 수 있잖아.

강인선/ 거북이북스 대표·<코믹무크> 발간

거둔 열매는 나눠야 더 즐겁다

만화잡지 <새만화책>은 ‘새’ 만화에 대한 고민을 한데 그러모으는 작업

만화 그 자체가 무엇인가에 대해 데카르트적 회의를 해본다면, 무엇이 남게 될까. 그것이 어떤 것이든지 간에(다시 돌아온다고 할지라도) 거기서부터 다시 만화를 시작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렇다면 이미 만화가 스스로를 인식하며 새로운 길에 들어섰다는 말일 것이다.

오늘날 만화 세계는 새로운 시기를 준비하는 과도기와 같은 느낌이다. 차별된 양식 속에서 성장해온 문화권마다의 만화 역사는 서로 만나 하나의 물줄기로 섞이고 있고, 만화 외부로부터 관심 또한 높아지고 있다. 그리고 그중 가장 중요한 것은 앞서 말한 만화에 대한 새로운 고민 속에서 만들어지는 만화들이다. <새만화책>은 그런 ‘새’ 만화들을 보여주고자 만들어졌다. 출판사 새만화책이 그러하고, 만화지 <새만화책> 또한 그러하다.

2002년 시작한 출판사 새만화책은 그렇게 새로운 작가들을 만나고 5년을 걸어왔다. 우리는 그간의 성과들을 한데 모을 필요와 함께 지난한 만화 창작에 징검다리가 필요하다는 것을 느꼈고, 그렇게 자연스럽게 <새만화책>은 스스로를 확인하고, 또 남에게 확인받고 싶은 욕구에서 시작되었다.

고영일, 권용득, 김은성, 김수박, 앙꼬, 김성희, 백종민, 이정현, 박윤선, 김홍석 등의 국내 작가를 비롯해, 뤼도빅 드뵈름, 다쓰미 요시히로, 하나와 가즈이치, 아사카와 미쓰히로와 같은 해외 작가와 필진들이 <새만화책> 속에서 어울려 무언가를 말하고 있다. 그 무언가는 당신에게 눈이 있다면 쉽게 확인할 수 있는 것이다. 고작 4호를 발간하면서 의미와 성과를 스스로 논하는 것은 우스운 일이겠지만, 고영일, 김은성과 같이 새로운 우리 작가들을 드러내고, 해외의 대안 만화, 특히 일본의 극화를 재발견해 그 의미를 알리고 있는 것에 의미를 부여하고 싶다.

우아한 백조의 발놀림과 같이 매호를 만드는 과정은 산만하고 숨가쁘다. 이상은 있지만 현실이 있기에 과정을 즐기기로 했다면 좀 옹색해 보일까? 독자분들께 송구스러운 것은 애초의 격월간을 계획하였으나, 늦어지고 있다는 점이다. 더 열심히 걷겠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다.

몇몇 작품은 연재를 마무리하고, 단행본으로 태어날 준비를 하고 있고, 뒤이어 앙꼬, 정송희의 장편 연재만화와 이마뉘엘 기베르(프랑스)의 <앨런의 전쟁>, 프레데릭 페터스(스위스)의 <뤼퓌스> 등의 해외 작품이 차례를 기다리고 있다.

씨를 뿌리면 열매를 얻고, 거둔 열매는 함께 나눌 때 더 즐겁다.

김대중/ 새만화책 대표·<새만화책> 발간

즐거운 만화잡지 보기로 이어지길

이 험난한 세상의 다리가 될 <팝툰>을 준비하며

1990년대 초, <NEXT>라는 준성인 만화잡지를 만드는 일로 나와 만화와의 인연이 시작되었다. 짧은 기간 동안 만들어지다 폐간한 잡지였기에 그런 책이 있었다는 사실을 만화판 사람들조차 잘 기억하지 못하는, 한마디로 그저 그런 잡지였다. 아직 일본 만화가 정식으로 수입되지 않던 시절이라 편집장은 작가들에게 ‘일본 만화 그대로 베끼기’를 강요했고, 연재되던 열대여섯편의 만화 중 3편이 일본 만화를 똑같이 복사한 작품이었다. 나머지 작품들 역시 한두편을 제외하고는 좋다고는 도저히 말 못할 ‘열라 짬뽕나’는 내용의 만화들이었다. 편집장은 히트칠 거라 득의양양했지만, 그 밑에서 책을 같이 만들던 나와 내 동료는 몹시도 그 잡지가 부끄러웠다. 나의 첫 만화잡지는 다른 직업으로의 이직마저 심각하게 고려하게 만든 못~난 잡지였고, 즐겁기는커녕 판권의 내 이름을 남들이 볼까 전전긍긍했었다.

그러나 이후 서너개의 순정만화잡지를 만들면서 꽤나 즐거웠었다. 좋은 작가들이 많았고 좋은 만화들이 많았다. 잡지를 만드는 노동의 힘겨움보다 다음호의 내용을 기다리는 재미가 더 컸던 시절이었다. 인터넷이 없었고 케이블TV 채널도 별로 없었고 인터넷 게임도 거의 없었다. 오락으로써의 만화는 공고한 제자리를 지키고 있었고, 독자들의 잡지에 대한 충성도도 높았다. 광고없이 판매로만 먹고사는 잡지라기엔 턱없이 낮은 가격이었지만, 그래도 아주 많이 팔려주었기에 흑자를 낼 수 있었다.

그러나 호시절은 아주 잠깐이었다. 대한민국 만화잡지의 대부분이 잡지 그 자체의 판매로 수익을 내지 못한 지 벌써 7~8년이 넘었다. 많은 잡지가 폐간되고 현재는 10개도 채 안 되는 만화잡지만이 살아남아 겨우, 정말 겨우겨우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팝툰>이라는 격주간 만화잡지를 3월1일 창간하는 것으로, <씨네21>이 만화판에 뛰어들게 되었다. <씨네21>은 한겨레문화센터의 만화사업과 영화잡지 <씨네21>의 지면을 통해서 만화에 대한 애정을 지속적으로 보여준 회사다. 상업적으로 어려운 시기임을 모르지 않지만, 동시에 이 시기가 가장 절실히 새로운 만화잡지를 필요로 하는 때임을 믿는다. ‘즐거운 만화잡지 만들기’가 되길 바라고, ‘즐거운 만화잡지 보기’로 이어지길 바란다. 그리고 좋은 작품과 작가들을 많이 배출하여, 아직도 여전히 만화잡지가 만화산업을 견인하는 가장 유용한 매체임을 증명할 수 있길 바란다. 또한 ‘승산 있음’도 함께 증명할 수 있길 간절히 바란다.

전재상/ <팝툰> 편집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