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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내용에 충실한 영화 <향수: 어느 살인자의 이야기>
정재혁 2007-03-21

향에 취해, 살인에 취해 일생을 살다.

향을 갖지 못한 자의 집착, 그리고 살인. 파트리트 쥐스킨트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한 영화 <향수: 어느 살인자의 이야기>는 코로만 세상과 소통할 수 있었던 한 남자의 굴곡 많은 일대기다. 생선 비린내가 진동하는 프랑스의 한 시장 골목. 장 바티스트(벤 위쇼)는 생선이 토막째 잘려나가듯 탯줄이 잘려 버려진다. 하지만 지독한 생선 냄새는 바티스트의 예민한 후각을 자극하고, 바티스트는 ‘진드기’ 같은 생명력으로 자신의 출생을 알린다. 아기를 버리다 걸린 여인은 시장 사람들에 의해 사형대로 보내지고, 죽음을 맞는다.

향이 결핍된 남자의 발달된 후각, 어머니의 죽음을 뒤로한 채 이어간 목숨. <향수…>의 주인공 바티스트의 삶은 결핍에서 시작한다. 식성이 좋고 인간의 향이 없다며 구박받던 고아원 생활에서도 그가 세상 모든 물건의 향을 맡으며 소통을 시도할 수 있었던 건 그에게 향이 부재했기 때문이다. 꽃에서 나는 향, 죽은 쥐에서 나는 향, 나뭇조각과 돌맹이에서 나는 향. 그는 향을 통해 사물과 관계하고, 세상을 이해한다. 그에게 향은 좋고 나쁨을 떠나 사물의 속성을 파악하며, 사건의 앞뒤를 연결하는 도구다. 하지만 이는 점점 향에 대한 이해를 떠나 집착으로 번져가고, 그는 끝낸 살인을 저지른다.

그라스로 향하는 길에서 우연히 지나친 여인 로라(레이첼 허드 우드). 바스티트는 로라의 향에 취해 여인들의 향에 집착하게 된다. 향수제조사 주세페 발디니(더스틴 호프먼) 아래서 향수 제조 방법을 배웠던 그는 여인들의 향을 유리병 안에 담으려고 한다. 피부와 머리카락에 밴 향을 긁어모아 액체로 만드는 과정, 그 안에서 바스티트는 13명의 여인을 죽이고, 세상은 그를 당대 최악의 살인마로 낙인찍는다.

‘못생기고, 더러우며, 꼽추’로 그려진 주인공 바티스트가 더럽지만 못생기지 않은 남자로 구현된 점을 제외하면, 영화 <향수…>는 소설의 내용을 충실하게 읽어나간다. 대사가 거의 없는 주인공의 입을 대신한 내레이션은 바스티트의 심정은 물론 향의 정도까지 설명한다. 하지만 이 정독이 그리 효과적이진 않다. 바르셀로나, 뮌헨, 프랑스 남동부 지역 등을 오가며 촬영한 영화의 풍경과 1400점이 넘는 의상이 보여주는 화려함은 볼 만하지만, 그 안에 담긴 바티스트의 속내는 이해 불가능이다. 사랑받지 못했던 불운한 인간 바티스트가 향수를 만들며 무엇을 이루고자 했는지, 영화는 ‘향이 대단하다’는 말로 일관한다. 특히 소설에서도 충격적인 결말로 회자됐던 사형대에서의 집단 성교 장면은 ‘향이 없는 스크린’ 위에서 그야말로 맥락없이 펼쳐진다. 향의 스케일에 취해 산만해진 이야기가 주인공의 내면을 앗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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