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쓸쓸했지만 소중한 기억의 이미지 <말라노체>

쓸쓸하고 황량한, 하지만 아름다운

구스 반 산트라는 이름이 세인의 기억에 각인된 계기는 <드럭스토어 카우보이>(1989)와 <아이다호>(1991)였다. 특히 <드럭스토어 카우보이>는 그의 데뷔작처럼 오해되기도 하지만, 그의 실제 장편 데뷔작은 <말라노체>(1985)이다. LA 비평가협회 독립영화상을 수상하며 퀴어영화의 숨은 걸작으로 꽤 명성이 자자했음에도 지금까지 <말라노체>가 관객과 만날 수 있는 기회는 극도로 제한되어 있었다(실질적인 개봉마저도 <드럭스토어 카우보이>의 성공 이후 소규모로 이루어졌을 뿐이다). 그렇게 제목으로만 전해지던 <말라노체>가 2006년 칸영화제 감독 주간에 특별 상영되고 프랑스와 국내까지 정식 개봉하는 등 부활의 기회를 얻게 된 것은, 그 작품 자체보다는 <게리>(2002)와 <엘리펀트>(2003) 그리고 <라스트 데이즈>(2005)로 이어지며 영화 이미지를 끊임없이 혁신해나가는 구스 반 산트의 최근 행보 덕일 것이다.

구스 반 산트는 완전한 허구를 창조하기보다는 실제 사건이나 전기적 경험을 극적으로 재구성할 때 자신의 능력을 발휘하곤 한다. 초기작인 <드럭스토어 카우보이>와 <아이다호>가 실제 교도소 감금자였던 제임스 포글의 자전적 소설이나 구스 반 산트 자신의 자전적 경험을 극적으로 구성한 작품이었다면, 근작인 <엘리펀트>나 <라스트 데이즈> 역시 실제 사건을 바탕으로 혁신적인 이미지의 수사학을 선보인 작품들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면에서 보자면, 미국 포틀랜드 출신 시인인 월트 커티스의 자전적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하는 <말라노체>야말로 구스 반 산트 영화의 뿌리를 간직한 작품이다. 이는 단지 누군가의 자전적 이야기를 담았다는 의미에서가 아니라, 구스 반 산트의 명성이 시작되었던 <드럭스토어 카우보이>와 <아이다호>의 감수성을 이 작품이 고스란히 지니고 있다는 의미에서도 그러하다.

<말라노체>는 포틀랜드 주변부의 한 편의점에서 일하고 있는 월트(팀 스트리터)의 내레이션을 통해 전개된다. 월트는 자신의 가게를 들락거리는 멕시코 불법 이민자 소년인 자니(덕 쿠에야트)에게 ‘미치도록’ 빠져든다. 열여덟살의 자니는 월트의 주변에 반복적으로 출몰하지만, 영어를 한마디도 하지 못하는 자니에게 월트의 감정이 제대로 전해질 리 만무하다(자니는 동성애자도 아닐뿐더러, 오히려 호모포비아적인 경향까지 지니고 있다). 자니는 월트의 감정에는 아랑곳하지 않고 로베르토(레이 몽즈) 등의 친구들과 함께 월트를 현실적으로 이용하려할 뿐이다. 결국 월트는 자니와의 하룻밤을 위해 15달러를 제안하는데, 그의 의도와는 다르게 말라 노체(mala noche), 즉 ‘나쁜 밤’의 상대는 자니가 아닌 로베르토로 뒤바뀌고 만다. 자니는 아무런 예고도 없이 떠났다가 또한 그렇게 다시 월트의 곁으로 돌아온다. 하지만 그가 떠나기 전과 다시 돌아온 삶은 결코 같지 않다. 청춘의 불안과 고통은 이것이 끝이라고 생각할 무렵 더욱 비대해진 모습으로 다시 인물들을 찾아오는 법이다. 자니는 자신이 떠났을 무렵 월트와 로베르토가 느꼈을 상실감 이상의 고통을 로베르토의 부음 속에 되돌려 받아야만 한다. 그렇게 청춘의 나쁜 밤은 끝없이 깊어만 간다.

<말라노체>에서 구스 반 산트의 관심은 이들 세 젊은이의 관계 속에 젊음을 낭만화하기에 쓰라린 시절의 파편들을 엮어가는 것이다. 영화는 황량한 배경의 도로를 드라이브하는 청년들의 모습을 보여준다. 하지만 구스 반 산트는 그들의 짧은 여행이 그들이 떠났던 장소로 돌아오도록 미리 운명지어 있기라도 하듯, 그들이 떠나는 것도 도착하는 것도 보여주지 않는다. 인물들은 불현듯 떠났다가 여전히 그 장소를 맴돌아야 한다. 영화는 시종일관 흑백의 거친 질감의 화면과 기타 선율의 영화 음에 실려오는 스산한 바람소리, 인물 얼굴의 반복된 클로즈업을 통해 순수한 만큼 불안했던 젊은 시절의 기억을 호명하려 한다. 이러한 면에서 <말라노체>가 그의 초기 대표작인 <아이다호>를 연상시키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다. 특히 주변부 도시의 거리나 슬픔이 배어 있는 황량한 도로의 풍경을 인물의 얼굴 위로 아로새기는 연출 스타일은 ‘쓸쓸했지만 소중한 기억의 이미지’로 자신의 옛 기억을 호명하는 구스 반 산트의 감정이 한껏 묻어난다. 특히 <말라노체>에 등장하는 단 한번의 정사장면은 영화에서 가장 그의 빼어난 연출을 확인해주는 장면이다. 구스 반 산트는 롱숏을 배제한 채 신체를 파편화하는 클로즈업만으로 몸과 몸이 교차하고, 살과 살이 뒤섞이고, 소리와 소리가 충돌하는 과정을 마술 같은 몽타주로 보여줌으로써 슬프면서도 아름답고, 거칠면서도 부드러운 하나로 확언할 수 없는 정서들이 교차하는 순간을 창출한다. 구스 반 산트가 월트의 자전적 삶에서 발견한 것은 쓰라린 만큼 소중했던, 하지만 그렇게 떠나보내야만 했던 젊은 시절의 기억이었을 것이다. 마치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몇 마디의 대화 이후 서로 멀어져 가는 영화 엔딩의 월트와 자니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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