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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무기력한 태도 <우리학교>

<우리학교>, ‘기호로서만 존재하는 조선인’의 서글프고 꿋꿋한 존재증명.

다큐멘터리 <우리학교>에 들어서기도 전에 이미 우리는 그 길목에서 영화보다 극적인 이야기들과 마주한다. <우리학교>의 시간은 2000년대지만, 거기에는 해방 직후부터 이어져온 ‘조선학교’의 굴곡진 역사가 여전히 부유하고 있다. 그리고 김명준 감독으로 하여금 그 역사와 인연을 맺게 해준 고 조은령 감독의 흔적이 살아 있다. 말하자면 <우리학교>는 지상을 떠나지 못한 그 두 영혼의 상처를 어루만지고 애도하기 위해 시작된 영화다. 고 조은령 감독은 재일조선인을 다룬 극영화 <하나>를 준비하던 도중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났다. 촬영감독이자 그녀의 남편인 김명준은 살아남은 자가 되어 아내의 미완성된 시선을 <하나를 위하여>로 채워넣었다. <하나를 위하여>를 완성한 뒤 2004년 말, 그는 다시 일본 홋카이도의 ‘우리학교’로 돌아간다. 이번에는 아마도 자신의 텅 빈 마음을 채우기 위해서 다시 카메라를 잡았을 것이다. 더이상 아내는 없지만, 아이들은 그 사이 훌쩍 자라 있었고, 그는 비로소 온전한 마음으로 조선학교의 사람들에게 마음을 여는 법을 배운다. 영화의 초반, ‘우리학교’의 주변부를 맴돌며 질문만 하던 카메라는 어느새 아이들과 함께 뛰놀고 아이들의 행동에 반응하며 흔들리기 시작한다. 처음에는 그의 카메라가 아이들을 관찰하고 있었다면, 이제 아이들의 눈이 카메라 속으로 성큼 들어와 그의 마음을 움직인다. 김명준 감독이 우리와 나누고 싶었던 것은 그런 순간이었을 것이다.

해방 이후에도 조선 국적을 버리지 않은 재일조선인들의 학교(학생들 중에는 한국 국적, 일본 국적을 가진 이들도 있다)는 오랜 시간 환영받지 못한 존재였다. 북한이 현실적으로 무국적자나 다름없는 이들에게 교육 원조비를 지원해왔기 때문에, 한국과 일본 정부는 이들을 방치하고 외면해왔다. 김명준 감독이 내레이션을 통해 밝히듯, 일본의 재일조선인들은 “사라진 조선, 혹은 기호로서의 조선의 국민”에 불과하다. 존재하나 존재하지 않는 자들의 서글픈 운명과 역사. 그러나 그들은 끈질기게 학교를 세우고 지켜왔고 그 안에서 조선말을 배우며 자신들의 존재를 입증하기 위해 애를 쓴다. 홋카이도 ‘우리학교’의 아이들은 그걸 보여준다. 일본말을 쓰지 않으려고 일주일간 침묵을 지키기도 하고, 추위를 무릅쓰고 치마저고리를 입으며 자신들만의 규칙과 의식을 만들어간다. 이들의 관계는 오랜 시간 눈물과 포옹을 나누며 어린아이들처럼 육체적으로 긴밀해지는 반면, 이들이 터득한 민족의식은 놀라울 만큼 논리적이고 관념적이다. 이 영화에서 가장 슬픈 것은 그 간극이다. 물론 한 학생이 일본과 ‘남조선’에서 민족성을 지키는 것이 어떻게 다른지, 일본 운동선수들과 자신들의 사명이 어떻게 다른지에 대해 스스로 답할 때, 그 강한 논지에 심정적으로 동의하지 않기란 어렵다. 그러한 논지는 단지 누군가의 강요에 의해 습득된 의식이 아니라 이 아이들의 오랜 상처와 슬픔이 마침내 발화된 결과로 보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행여 ‘조선인은 반드시 조선말을 쓰고 조선학교를 다녀야 한다’는 논리에 동의하지 않더라도, 이들에게 남겨진 거의 유일한, 사투와 다름없는 선택을 두고 민족과 국가란 허상에 불과하다고 떠벌리고 싶지는 않다. 그렇게 비판하기는 쉽지만, 이들이 서 있는 역사적 맥락이란 그렇게 단순하게 정리될 수 없을 것이다. 다만 <우리학교>의 아이들이 ‘가져본 적 없는’ 고향을 꿈꾸며 북한에서 유토피아를 보듯, 카메라 혹은 우리의 시선 역시 이들을 순수함 속에만 가두고 있는 것은 아닌지 의문이 든다. 가장 비극적인 상황에서도 살아남은 아이들의 순수한 눈망울에는 분명 감동적인 구석이 있다. 그러나 그 연민과 감동이 지금 여기의 우리가 잃어버린, 더이상 가질 수 없는 것들에 대한 실체없는 향수에 불과하다면? ‘우리학교’, 그건 그저 학교가 아니라 학교 밖의 현실을 반대로 비추는 거울이다. ‘우리학교’가 애틋한 이유는 그것이 가족적 연대감으로 이어진 공동체여서가 아니라, 학교 밖의 현실과 대비되며 그 현실을 끊임없이 상기시키기 때문이다. 이 학교는 일본사회로부터 울타리를 치고 있지만(아니, 울타리를 치도록 강요당하고 있지만) 엄밀히 말해, 중요한 것은 울타리 안이 아니라 울타리라는 경계의 역사와 정치다. 그래서 영화의 후반부, 학교를 떠나는 졸업생들이 고별식을 하며 서로 부둥켜안고 눈물을 흘릴 때, 보는 이의 마음은 무거워진다. 학교를 졸업한 이 아이들은 울타리를 떠나서도 꿋꿋하게 자신의 의지대로 계속 살아갈 수 있을 것인가. 김명준 감독이 말하듯, 북한과 일본의 관계는 점점 더 악화되고 있다. ‘우리학교’의 울타리 내부도 더이상 평화롭지만은 않다. 북한으로 수학여행을 떠났던 아이들이 돌아오던 날, 우익 시위대가 항구에 모여 아이들을 위협하는 장면은 고통스럽다. 우익단체들의 무시무시한 외침보다도 끔찍한 것은 그 광경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아이들의 텅 빈 표정이다. 그러니 아이들의 순수함보다도 지금 우리가 기억해야만 하는 것은 점점 더 나빠지고 있는 일본 내 재일조선인의 삶과 그걸 그저 보고만 있는 우리의 무기력한 태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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