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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춤바람 난 사람들] 음악을 만들어내는 춤, 플라멩코
글·사진 이영진 2007-04-20

스페인 집시의 춤 배우는 한국플라멩코문화연구소

서울 대학로에 위치한 한국플라멩코문화연구소(http://www.lolaflamenco.com). 여럿이 또각거리는 소리가 흘러나오는데, 막상 문을 열고 보니 박재한씨 혼자다. 줄기찬 말발굽 소리를 혼자서 냈단 말인가. 잠시 어리둥절했더니 그가 놀란 기척을 오해하고서 “저, 시각장애인이에요”라고 소개한다. 2년 전 시각장애인여성회에서 연구소 대표인 롤라 선생님의 도움으로 플라멩코에 극적으로 입문했다는 박씨. 방문객은 아랑곳하지 않고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땅고’(Tango)를 보이지 않는 거울 앞에서 가다듬느라 정신없다. “처음엔 선생님이 제 손과 발을 직접 붙잡고 일일이 가르쳐주셨죠.” 플라멩코는 ‘리듬감’이 가장 중요하다는 그는 “다른 사람들보다 귀가 발달되어 있어 버텼는지 모르겠다”고 웃는다. 화요일 수업이 시작되는 6시30분. 학생들이 하나둘 모여든다. 플라멩코는 스페인 안달루시아 지방에 모여든 집시들로부터 유래된 춤이다. 변칙적인 박자에 몸을 맡겨야 하고, 게다가 손과 발을 따로 놀려야 해서 익히기가 쉽지 않다. 한국 남성과 결혼해 서울에 머물게 된 일본인 게이코 또한 “집중력없으면 못하는 춤”이라고 말한다. “2년쯤은 해야 음악이 들린다”는데, 그럼에도 지치지 않고 다들 예찬론자가 되는 건 무슨 이유람. “플라멩코를 하는 사람들은 뭐 하나 하면 푹 빠지는 스타일들이야. 여기 있는 사람들은 가슴이 뜨겁거나 정열적인 친구들을 뒀거나 둘 중 하나지, 뭐.” “기막힌 손재주로 플라멩코 옷을 만들어주며 친구들을 꼬이는” 열성당원 임미경씨의 말이다. 중급반 김현정씨는 “플라멩코는 음악을 표현하는 것이 아니라 음악을 만들어내는 춤”이라며 “플라멩코를 출 때는 자신과 대화를 하는 시간”이라고 임씨를 거든다. “직장을 때려치우고 플라멩코의 세계에 입문한” 황현선씨, “유학 준비 하다” 플라멩코 소개 프로그램을 TV에서 보고 수강신청한 박환철씨, 플라멩코 음악에 빠져들어 뒤늦게 전공을 바꾼 김성현씨. 롤라 선생님이라 불리는 장현주씨 또한 이들의 시작과 다르지 않았다. 이탈리아에 피아노 공부를 하러 갔던 그녀는 “아버지 친구 덕분에 갖고 놀았던 집시 음악, 인형, 부채” 들에 대한 기억이 떠올라 결국 스페인 세비야의 플라멩코무용학교에 들어갔고, 한국에 돌아와 지난해 초 수석무용수 장경화(에바)씨와 함께 연구소를 마련했다. “관객을 넓히려면 아지트가 필요하잖아요. 공연도 보고, 춤도 추고 그럴 공간이 있어야 했으니까.” 스페인 현지 무용학교에 장학생을 선발해 보낼 계획까지 짜고 있는 장씨는 올해도 플라멩코 전도사들과 함께 ‘평원의 도망자’(Ruma-Calk)를 양성하기 위해 분투할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