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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춤바람 난 사람들] 분홍신의 꿈에 날개를 달고, 발레
글·사진 이영진 2007-04-20

백조의 호수 꿈꾸는 발레교습소 ‘발레조아’

기인열전이 따로 없다. 누군가는 가슴 높이의 바에 다리 한쪽을 걸고서 몸을 비틀고, 또 누군가는 다리를 쭉 벌리고서 몸을 앞으로 구부린다. 표정 변화도 없고, 신음 소리도 없다. 음, 다들 무용 전공자들이군, 했는데 알고보니 “80% 이상이” 민간인이란다. 꿈은 일찍 접어야 정신건강에 좋고 허리는 나이 먹으면 자연스레 굽는 것이라 생각했다면, 발레조아(cafe.daum.net/balletsarang)에 모여든 이들이 별종처럼 느껴질지도 모른다. “수강생들 나이를 전혀 짐작할 수가 없어요.” 유니버설발레단에서 활동하다 부상으로 인해 지금은 무대에서 내려와 발레를 가르치고 있는 김민경씨는 “아이를 낳은 지 얼마 안 됐는데도 나오시는 분이 있다”면서 “전공을 안 했다 뿐이지 다들 프로와 비교해도 손색없는 열정과 자세의 소유자들”이라고 전한다. 꿈을 품고 있으면 노화도 지연되나보다. ‘토슈즈 비기너’반까지 2강좌나 수강 중인 박문옥씨와 권혁씨에게 나이를 묻자 “그냥 20대 후반이라고 해두자”며 깔깔댄다. “애들이 가끔 엄마 쇼하네, 하는데 속으론 다 자랑스러워해요”(박문옥), “영어학원 교사인데 가끔 수강생들 앞에서 개인기 발휘할 때 좋죠”(권혁). 이들은 어렸을 때부터 발레에 대한 로망이 있었던 것은 사실이지만, “막상 배우고 나니 잃어버렸던 몸의 밸런스를 되찾게 되고 내 몸을 전보다 잘 쓸 수 있는 자신감이 생겼다”고 말한다. 김민경씨는, 왕초급반과 다른 반을 가르칠 때 분위기가 사뭇 다르다. 왕초급반에서는 장난도 곧잘 받아주지만 기초반 이상에선 강행군의 연속이다. “일반인들이 조금씩 자신의 체형과 자세가 교정되는 걸 느끼게 되면 점점 흥미를 갖게 되고 나중에는 전공자들을 상대로 선의의 경쟁을 벌이기도 해요.” 시작은 어렵지만 ‘은근한 중독성’이 있다는 설명이다. 학원 문 닫는 시간까지 남아 스트레칭 연습을 하는 나인원(27)씨는 “발레는 근력이 뒷받침 안 되면 계속하기 어렵다”면서 “기초가 안 되면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점에서 굉장히 정직한 춤”이라고 말한다. “그런 거 왜 하냐고 할까봐 친구들에게는 헬스 다닌다고 한다”며 아직 커밍아웃을 못했다는 왕초급반의 유일한 청일점 최영동씨. “스트레칭 1cm 늘리면 수명이 1년 늘어난다”며 발레를 권하면서 “무엇보다 정서적인 안정감을 느낄 수 있어 행복하다”고 덧붙인다. 이번 겨울 발레조아 5주년 기념무대에서, 그는 과연 다리를 1자로 펴고 비상하는 ‘주테’를 맘껏 선보일 수 있을까. 환희의 미소를 머금으며 백조의 호수에 풍덩 빠질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