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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에이지 태양교 <선샤인>
김도훈 2007-04-18

대니 보일. 장르의 클리셰를 모조리 끌어안고 뉴에이지 태양교에 빠져들다.

서기 2057년. 태양이 죽어간다. 인류의 마지막 희망은 핵탄두로 태양을 재점화하는 것. 8명의 다국적 승무원이 우주선 이카루스 2호에 탄두를 싣고 태양으로 나아간다. 가히 ‘하드 SF’적 상상력으로 시작하지만 <선샤인>은 그리 섬세한 장르영화가 아니다. 대니 보일과 알렉스 갤런드 콤비는 <미션 투 마스>의 브라이언 드 팔마처럼 NASA의 기술자문을 얻는 대신 자신들의 환상을 위한 우주항모를 건설했다. 인공 중력실은 존재하지도 않는다. 대신 이카루스 2호를 채운 것은 식물로 가득한 산소방과 가상현실 체험실, 거대한 유리창이 달린 태양 관측실의 스타일리시한 외양이다. 하긴 누가 인류의 존망을 건 항모의 이름에 태양빛으로 날개가 녹아 추락해버린 남자의 이름을 붙이겠는가.

망자의 이름을 달고 항해를 계속하던 우주선은 7년 전 같은 임무를 지니고 떠났다가 실종된 이카루스 1호와 마주친다. 대원들은 랑데부를 위해 궤도를 수정하던 중 치명적인 실수를 일으킨다. 좋은 장르영화를 위한 최소한의 리얼리티를 바라는 관객이라면 여전히 의문을 곱씹을 것이다. 왜 그들은 궤도 변경처럼 정밀한 작업을 슈퍼컴퓨터의 지능에 맡기지 않은 것일까. 왜 그들은 1호기와의 랑데부에 그처럼 광적으로 집착하는 것일까. 답을 들을 새도 없이 무언가 위험한 존재가 1호기로부터 옮겨 타고, 영화는 곧 <이벤트 호라이즌>을 빼닮은 우주 슬래셔 장르로 변태한다. 혹은 우주공간을 무대로 한 <28일후…>가 된다.

재미있는 점은 범우주적 좀비영화에서 기대할 만한 서스펜스조차 이상할 정도로 거세되어 있다는 사실이다. 대신 대니 보일은 살인마의 입을 통해 뉴에이지적인 종교론을 설법하기 시작한다. 인간이 생명의 근원인 태양으로 다가간다는 것은 어떤 종교적 경험인가 혹은 태양을 재점화시킬 권리가 과연 인간에게 있는 것일까. 테크노밴드 ‘언더월드’가 창조한 앰비언트 음악과 90년대 MTV식으로 편집된 이미지들이 스타일리시하게 버무려져 태양으로 돌진할수록 영화는 요가 전도사들이 만들 법한 명상영화에 가까워져간다. <선샤인>은 우주를 무대로 한 근미래 SF영화의 클리셰를 모조리 간직했으나 정작 해당 장르와는 거리가 먼 대니 보일의 우주다. 굳이 장르 속에서 가까운 친척을 찾는다면 타르코프스키의 <솔라리스>보다는 농담이 아니라 존 부어맨의 <자도즈>가 적당할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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