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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들의 일기
2001-10-17

심재명/ 명필름 대표 shim@myungfilm.co.kr

이영아 팀장, 올해 나이 29살. 박재현 팀장, 올해 나이 27살.

명필름의 국내마케팅 1, 2팀장들이다.

<브리짓 존스의 일기>의 주인공 브리짓처럼 과년한 노처녀도 아니면서 그녀들은 현재, 애인이 없다. 그렇다고, 브리짓처럼 골초에 술을 탐하는 것 같지는 않고, 몸무게가 많이 나가 보이지도 않는다. 그녀들은, 휴 그랜트 같은 바람둥이에게 홀라당 넘어가는 어리석음을 범하는 일은 안 하고 있지만, 그렇다고 콜린 퍼스 같은 ‘피플지가 뽑은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50인’에 선정된 미남이 지극한 애정을 보내는 말 그대로 ‘영화 같은’ 로맨스도 물론 없다.

그녀들은 지금, 연애에 목숨을 거는 대신 ‘일’에 목을 매고 산다. 현재 목을 맨 바로 그 일은 <와이키키 브라더스>의 마케팅이다. ‘사상 최대의 릴레이 시사회’라는 이벤트 때문에 벌써 몇달을 밤늦은 시간에 총알택시를 탔는지 이루 헤아릴 수 없다.

그녀들은, <봄날은 간다>가 무지 부럽다. 무슨 이야기냐고? 유지태, 이영애라는 스타시스템과 허진호라는 유명감독 때문에 일찍이 공중파 TV의 연예정보 프로그램들과 종합일간지, 영화주간지 등 온갖 매체에 도배되다시피 소개되는 것에 대한 부러움이다.

빅스타 없고, 한방에 쏙 들어오는 이야기도 아닌 <와이키키 브라더스>란 물건을 머리에 이고 한손에 든 채, “어떻게 우리 배우들로 표지 한번 안 될까요”, “이런 아이템이 있는데 한 꼭지…”. 그녀들이 아이템 컨택을 이유로 여러 매체들과 통화하고 있는 모습은 거의 ‘구걸’에 가깝다.

‘스타’를, ‘이슈’를, ‘자극’을 찾아 민감하게 움직이는 매스컴은, ‘한국영화 흥행 이상 기류’ 운운하며 지금 대중문화의 소비행태를, 한국영화의 흐름을 걱정하는 듯하지만, 또한 판매부수와, 시청률이라는 절체절명의 숙제로 표리부동하며 그녀들에게 “글쎄요…. 그게 뭐, 재미있겠어요?”라며 난감한 거절 의사를 날릴 뿐이다.

한번에 50만원 이상 들여가며 마련한 무료 시사회에 초대된 관객들 중에 보다 나가는 서너명을 발견할라치면 쫓아가 뒤통수를 갈기고 싶은 심정이 굴뚝 같지만 차마 그렇게 못하고, 시사회 다음날 영화 홈페이지 게시판에 그 누군가가 올린 다섯개짜리 별과 상찬의 글을 읽고는 눈물이나 찔끔 흘리는 마음 여린 그녀들이다.

그녀들은 <봄날은 간다>의 30여만명의 관객동원 수가 주는 ‘흥행 이상 기류’보다는, 김기덕 감독의 역작 <수취인불명>의 1만명짜리 흥행성적표, 올해의 발견이라는 칭송이 모자람 없는 <소름>의, 그러나 소름 돋는 흥행성적표가 정말 ‘불안한 기류’라는 생각이다.

스타 없는 영화, 화려한 판타지가 없는 영화, 그 대신 남이 가지 않은 길을 ‘용감하게’ 가고자 했던 감독의 의지가 맥없이 스러지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지금 그녀들은, <나비>와 <라이방>의 마케팅을 담당하는 또다른 그녀들의 일기장도 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