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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시대 경성의 매혹] ‘모-던 뽀이’와 ‘모-던 껄’을 만나다
김현정 2007-05-04

1930년대 경성이 배경인 소설 <망하거나 죽지 않고 살 수 있겠니>는 기묘한 중국 여관을 보며 “이 모든 것이 뒤섞인 지나치게 음울하고 복잡한, 그러다보니 급기야 약간 코믹하기까지 한 분위기는 다시 보니 영락없는 경성풍이었다”는 감상을 토로한다. 식민지 시대 경성은 정말 그런 도시였을 것이다. 한복 치마 아래에 하이힐을 신고 히사시가미(앞머리를 부풀리고 뒷머리를 올린 머리)를 한 여인처럼, 양풍도 아니고 왜풍도 아니며 조선풍도 아니었던 도시, 그리고 사람들. 그 때문인지 요즈음 한국 영화계는 항일을 논하지 않고는 등장하지 못했던 일제강점기를 뒤져 소재를 건져올리고 있다. <모던보이>(감독 정지우, 출연 박해일)는 향락의 밤거리를 쏘다니며 잃어버린 연인을 찾는, 한때 아무 생각 없었던 조선총독부 소속 공무원 청년의 이야기고, <라듸오 데이즈>(감독 하기호, 출연 류승범)는 조선 최초의 라디오 방송국 PD가 주인공이다. <기담>(감독 정식·정범식, 출연 김태우·김보경·진구)은 1940년대 경성 병원을 배경으로 끔찍한 살인사건을 파헤친다. <다리퐁 걸>(가제, 감독 송일곤)은 비도덕적이거나 욕설이 섞인 대화가 오가면 전화를 끊어버리기도 했다는 경성의 전화교환수 다리퐁 걸(텔레폰의 일본식 발음)을 선택한 로맨스다. 이러한 이야기들이 얽혀 있던 일제강점기 경성. 장르를 불문한 여덟권의 책을 징검다리 삼아 그곳으로 건너가보려 한다.

그 무렵 경성에는 혼부라당이라는 무리가 있었다. 밤이 늦도록 번화가인 혼마치(충무로 일대) 일대를 헤매고 다니는 모던보이와 모던걸을 일컫는 이 속어는 1920, 30년대 경성의 풍경과 더불어 그 구조까지도 알려주는 단서가 된다. 1927년 미스코시백화점 개장을 시작으로 고급 상점가를 형성했던 혼마치는 전통적인 조선 상권을 무너뜨린, 일본인 지역 남촌을 대표하는 상권이었기 때문이다. 클로시와 중절모를 눌러쓴 젊은이들은 혼마치에 들러 아이스커피를 마시고 치장을 했으며, 웨이트리스들은 상대하는 남자마다 양반집 규수나 프롤레타리아로 신분을 바꿔가며 농락하거나 농락을 당하곤 했다. 비단옷으로 차려 입던 기생들마저 여학생처럼 보이고 싶어 하얀 저고리 검은 통치마 차림으로 나들이하던 그 시절, 만화는 전차 안에서 똑같은 자세로 금시계와 보석반지를 쳐들고 섰는 모던걸들을 그리며 그걸 사줄 돈이 없으면 가정조차 꾸리지 말라는 풍자를 내뱉곤 했다.

모던걸과 모던보이는 남들보다 먼저 외국문물을 받아들였지만 이처럼 자주 희화화되었다. 드러낸 여인의 종아리며 계집처럼 단장한 사내의 얼굴 때문이기도 했지만, 어떤 가치보다도 화폐가 중요하게 여겨지기 시작한 자본주의를, 그들이 직접적으로 반영하고 있기 때문이기도 했다. 당시 만화들은 쓰러져가는 판잣집에서 값비싼 옷을 걸치고 나오거나 부유한 시골 사내의 손을 잡아끌어 백화점으로 향하는 모던걸들을 비난했다. 그런데 여기에는 단순한 허영 이상의 사회현실이 깃들어 있다. 모던걸을 대표하는 여학생과 신여성들은 대부분 학력에 걸맞은 직업을 찾기가 어려웠고, 부유한 남자의 첩으로 지내거나 심지어 거리로 나서 ‘스트리트걸’이 되기까지 했다. 스웨덴에서 학위를 따고 돌아온 ??(나중에 채워넣을게요)이 취직을 하지 못해 콩나물을 팔며 가난에 시달렸던 것이 그 예다. 게다가 모던걸과 연애를 할 만한 모던보이들은 거의 모두 어릴 적에 정해둔 아내와 정혼자가 있는 상태였던 것이다. 모던보이보다도 모던걸이 더욱 통렬한 풍자의 대상이 되었던 것은 그 때문이었다.

근대의 혼돈과 식민의 아픔이 서로 뒤섞인 시절

그런데 경제력과 겉치레가 어긋남을 조롱하는 만화들을 자세히 보면 당시 조선인들이 감수해야만 했던 사회적이고 경제적인 불평등 또한 알아볼 수 있다. 조선총독부는 구시가 중심이었던 대한제국의 도시계획을 뒤엎고 용산과 명동을 아우르는 남촌을 중심으로 도로와 사회기반시설을 설계했다. 북촌은 집들이 다닥다닥 붙었고 하수도 제대로 빠지지 않는데 비해 남촌은 시원한 도로와 더불어 화사한 불야성을 이루었던 것이다. 종로가 더럽고 비좁다 한탄하는 모던보이와 모던걸은 진고개(지금의 명동)로 발길을 돌려 재즈를 들으며 홍차와 칼피스와 커피를 마시고 찰스턴을 추었다. 그 시간이 끝나면 돌아갈 곳은 결국 북촌이었음에도.

이처럼 일제강점기 경성은 모든 것이 어긋나고 서로 어울리지 못하는 기묘한 도시였다. 해수욕과 피서가 무엇인지는 알았지만 모두들 가난했기에 삼십전이면 갈 수 있는 한강철교가 휘어지도록 피서 인파가 몰렸고, 여성의 권리를 주장하는 자유연애가 만연하여 구여성들은 버림을 받았으며, 도쿄역사를 그대로 본뜬 서울역사가 찬탄 속에 기둥을 세웠다. 그 시절, 모던은 무엇을 뜻하는 단어였을까. 몸이 채 자라기도 전에 어른 양복을 맞추어 입은 소년처럼 우스꽝스러운 몰골이었을까 혹은 모진 운명을 겪은 경성 트로이카와 나혜석 같은 신여성들에게 그랬듯 그나마 숨통이 트이는 자유였을까. 반세기가 넘은 2007년과 2008년에 우리는 몇편의 영화를 통해 현대를 낳은 ‘모던한’ 경성으로 돌아가 그 시대의 명암을 멀리서나마 관조해볼 수 있을 것이다.

일러스트레이션 박정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