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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시대 경성의 매혹] 스캔들부터 대중가요까지
김현정 2007-05-04

일제시대 경성을 배경으로 하는 책 8권

<경성기담-근대 조선을 뒤흔든 살인 사건과 스캔들> 전봉관 지음 │ 살림 펴냄

1933년 5월16일 죽첨정(서대문구 충정로) 부근 식산은행 쓰레기 매립지에서 젖먹이 아기의 머리가 발견됐다. 경찰은 부검 결과를 바탕으로 탐문 수사를 시작했지만 20일이 넘도록 아기 몸통과 범인을 찾아내지 못했다. 저자 전봉관은 이 ‘죽첨정 단두유아(斷頭乳兒) 사건’ 수사과정을 따라가면서 조선총독부가 자부하는 ‘안전한 도시’ 경성이 어떤 곳이었는지 파헤친다. 일본인 거주지역 위주로 재편된 경성에서 조선인들은 굶주림에 못이겨 자식을 팔거나 기본적인 위생설비도 없이 가난을 견뎌야만 했다. 마침내 드러난 범인 또한 가난과 질병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아기 시체를 훔친 자였다. <경성기담>은 이 사건 외에도 일본 여인이 조선인 하녀를 살해했지만 단죄받지 않았던 ‘부산 마리아 참살 사건’과 당대 호사가들의 입방아에 오르내렸던 ‘중앙보육학교 박희도 교장의 여제자 정조 유린 사건’ 등을 실어 식민지 조선 사회상을 다채롭게 보여주고 있다.

<경성 트로이카> 안재성 지음 │ 사회평론 펴냄

‘경성 트로이카’는 이재유와 이현상 등을 중심으로 조선공산당 재건운동과 항일운동을 벌였던 사회주의자 그룹이다. 그들은 삼두마차를 뜻하는 트로이카처럼 모든 활동가들이 동등한 권리를 가지는 조직을 만들었지만, 일본의 탄압과 해외파와의 분쟁 끝에 잊혀진 이름이 되고 말았다. <경성 트로이카>는 찬란한 세상을 꿈꾸었던 그들, 1930년대 사회주의자들에 관한 기록이다. 고향을 떠나 경성으로 올라온 이재유는 조선과 일본 두 나라에서 노동운동을 한다. 투옥과 활동을 반복하며 그는 이현상과 김삼룡을 만나고, 연인이자 동지인 박진홍과도 연을 맺는다. 저자 안재성은 우연한 기회에 경성 트로이카 멤버로 이미 아흔을 넘긴 이효정을 만나 인터뷰를 하게 되었다. 그 인터뷰와 기록을 바탕으로 하였기에 <경성 트로이카>는 소설과 역사책의 성격을 모두 지니고 있다. 그러나 혁명가로서 이재유의 사상과 1930년대 혁명운동을 좀더 자세히 알고 싶다면 <이재유 나의 시대 나의 혁명-1930년대 서울의 혁명운동>(김경일 지음 │ 푸른역사 펴냄)을 권한다. 안재성씨 또한 1993년 <이재유 연구>라는 제목으로 출판됐던 이 책을 보고 이재유를 처음 알게 되었다고 한다.

<망하거나 죽지 않고 살 수 있겠니> 이지형 지음 │ 문학동네 펴냄

정지우 감독이 준비하고 있는 영화 <모던보이>의 원작. 해명은 부유한 친일파 아버지 덕에 조선총독부에서 일하고 있는 청년이다. 첫눈에 반한 난실과 연애를 시작한 해명은 그녀가 꿈에 그리던 연인이라고 굳게 믿는다. 그러나 행복은 잠깐, 난실은 어디론가 사라져버리고, 남겨진 해명은 난실이 수많은 이름과 남자를 거치며 정체를 숨겨온 테러리스트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망하거나 죽지 않고 살 수 있겠니>는 모던보이와 모던걸들이 혼바치를 거닐던 1930년대 경성을 세밀하게 묘사하면서도 독창적인 상상력을 덧붙인 소설이다. 2층 양옥으로 올린 문화주택과 미스코시백화점, 스스로 “낭만의 화신”이라고 칭하는 생각없는 청년, 댄스모임을 위장해 총독부 테러 계획을 세우는 이십세기모던이미지댄스구락부. <망하거나 죽지 않고 살 수 있겠니>는 이처럼 역사적인 사실을 희롱하며 1930년대 경성도 아니고 21세기 서울도 아닌, 가상에 가까운 도시를 펼쳐놓는다. 일제강점기라는 역사적 압박을 벗어던진 문학적 유희가 흥미로운 소설.

<모던뽀이, 경성을 거닐다-만문만화로 보는 근대의 얼굴> 신명직 지음 │ 현실문화연구 펴냄

만문만화는 산문이나 단편소설에 가까운 긴 글과 만화가 어울린 형식이다. 1920년대부터 신문에 실리기 시작했던 만문만화는 신춘문예에도 장르가 있을 정도로 인기를 얻었고, 풍자와 한탄, 때로는 감상으로 그 시대를 기록했다. <모던뽀이, 경성을 거닐다-만문만화로 보는 근대의 얼굴>은 그 만문만화를 통해 일제강점기 경성을 돌아보는 책이다. 만문만화는 기형적인 근대를 그려냈을 뿐 아니라 그러한 근대가 조선인들에게 어떻게 다가갔는지 보여주기 때문에 가치있는 자료이기도 하다. 미스코시백화점에 줄을 선 여학생들과 모던걸이 분을 바르니 자기도 분을 바르는 모던보이, 허울좋은 ‘문화주택’을 지어올리는 유학파들은 비꼬는 어조와 캐리커처를 구사하는 만문만화 작가들에게 여지없는 조롱의 대상이 된다. 더불어 일본인과 차별을 받아야만 하는 식민지 국민의 처지와 눈부신 근대문물이 남의 떡이기만 한 가난도 애수와 더불어 만문만화의 한자리를 차지한다.

<모던의 유혹 모던의 눈물-근대 한국을 거닐다> 노형석 지음 │ 이종학 사진 │ 생각의 나무 펴냄

아현동 고개에서 마포쪽을 바라보면 초가집과 기와집이 빽빽하게 들어차 있던 시절도 있었다. 그러나 군수물자 운반을 위해 경성-마포 가로가 생긴 다음에는 반이 넘는 집들이 사라졌는데, 그나마 남은 집들 대부분은 기와집이었다. <모던의 유혹 모던의 눈물-근대 한국을 거닐다>는 이처럼 왜곡된 근대의 형성을 눈으로 감각할 수 있도록 만들어주는 책이다. 정자와 나룻배가 어울려 절경을 이루었던 마포나루, 일본인이 거주하는 남촌 위주로 도시를 재편하다보니 생겨난 기형적인 도로망, 일본보다 일본 같다는 ‘찬사’를 들었던 경성의 야경, 지금은 쇠락했으나 당대에는 찬탄을 자아냈던 서울역사 등을 흐릿하지만 귀중한 사진으로 만나볼 수 있다. 경성뿐만 아니라 조선 팔도의 변화를 모두 담고 있다는 것도 장점. <한겨레>에 연재되었던 <한국 근대사 숨은 풍경들>에 새 글을 덧붙여서 출판됐다.

<연애의 시대-1920년대 초반의 문화와 유행> 권보드래 지음 │ 현실문화연구 펴냄

연애(戀愛)는 사랑한다는 뜻을 가진 한자를 두개나 연이어 붙인 단어다. 지금은 사랑과 연애가 반드시 일치하지는 않지만, 연애라는 단어가 생겨났을 즈음엔 ‘love’는 사랑이 아닌 연애로 번역되었다고 한다. <연애의 시대-1920년대 초반의 문화와 유행>은 이처럼 아주 사소하게 보일지도 모르는 단어에서 출발하여 이식된 근대가 어떻게 개인을 개조하였는지 차분하고도 재미있게 살펴보는 책이다. 기생과 여학생과 모던보이와 모던걸들의 사랑. 이들은 한데 뒤엉키기도 하고 서로 부정하기도 했으며 구시대를 향한 반발로 그 내용이 왜곡되기도 했다. 러시아 혁명가 콜론타이의 <붉은 사랑>이 동지적 관계 대신 자유로운 연애로 받아들여진 것도 그 예다. 학문적인 고찰과 더불어 흥미로운 것은 당대의 연애상을 반영하는 자료들이다. 쪽지고 저고리로 갈아입은 여학생 출신 아내가 엉뚱한 일들을 만나는 만화 등이 혼란스러웠던 시대를 생생하게 전해준다.

<오빠는 풍각쟁이야-대중 가요로 본 근대의 풍경> 장유정 지음 │ 민음in 펴냄

일제강점기 일부 지식인들과 어른들이 보기에 재즈와 찰스턴 같은 서양댄스는 퇴폐적이고 난잡하며 남의 것을 흉내내는 시간 낭비에 불과했다. 그러나 모던보이와 모던걸들이 거기에 빠져든 데는 이유가 있었을 것이다. 단지 댄스가 좋아서, 그 이상의 무언가가. <오빠는 풍각쟁이야-대중 가요로 본 근대의 풍경>은 그처럼 시대와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는 대중문화로 시대를 투사하는 책이다. 흔히 생각하는 것과 달리 일제강점기 조선에선 트로트뿐만 아니라 재즈와 신민요도 유행했고, 세태를 유머러스하게 풍자하는 만요라는 독특한 음악이 생겨났으며, 군국가요라는 어두운 부분도 있었다. 저자 장유정은 유성기 문화와 더불어 그런 장르를 살펴보며 시대를 되살린다. 재즈에 담겨 있던 진정성과 트로트에 맺힌 애달픈 정서 같은 것들을. 얼굴없는 가수들과 수십년 전 팬문화와 조선 최초의 싱어송라이터의 이야기도 재미있다.

<잃어버린 풍경 1 1920_1940-서울에서 한라까지> 안창남 외 지음 │ 이지누 엮음 │ 호미 펴냄

1923년 경성을 비행하던 안창남은 독립문 부근으로 날아갔다. “서대문 감옥에서도 자기네 머리 위에 뜬 것으로 보였을 것이지마는 갇혀 있는 형제의 몇 사람이나 거기까지 찾아간 내 뜻과 내 몸을 보아 주었을는지….” 퇴락한 궁궐을 서글퍼하고 태어난 평동에 이르러서는 천진난만하게 곡예도 해보았던 그의 기록은 <잃어버린 풍경 1 1920_1940-서울에서 한라까지> 가장 처음에 실려 있는 글이다. ‘다큐멘터리안 documentarian’ 이지누가 엮은 이 책은 1920년대에서 40년대까지 잡지에 실렸던 지식인들의 기행문을 모은 것이다. 이들은 산길을 걷다가 어여쁜 여인이 있는 주막에 들러 농짓거리를 하기도 하고, 벗과 더불어 찾아갔던 절에 이르러 이미 세상을 떠난 그 벗을 떠올리며 애틋해하기도 한다. 가람 이병기가 도봉산을 오르며 적은 “물도 좋고 돌도 좋다”는 담백한 문장에선 그저 맑기만 했을 옛 도봉산을 떠올릴 수도 있다. 지역을 달리하여 3권까지 출판돼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