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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벤허>

생각해보니 올 추석 TV에서 방영되었던 각종 영화들 중에 내가 생각하던 이른바 ‘명절용 추억의 명화’가 거의 없었던 것 같다. 몇년 전만 해도 명절이면 지겹게 재탕, 삼탕되어 시청자들에게 분노를 사게 한 구닥다리 명화들이 일정부분 차지하고 있었던 것과는 확연한 차이다. 다시 생각해보면 그 ‘명절용 추억의 명화’ 중에 가끔 진짜 고전이 간간이 끼어 있어, 그것들을 다시 보는 재미가 쏠쏠했었는데 말이다. 그중에서도 질리지 않고 오래도록 봐왔던 영화 중 하나가 <벤허>이다. 하지만 어린 시절에 멋모르고 스펙터클한 마차경주장면에 매료되었던 것과 달리 언젠가부터 허술한 필름상태와 더빙 대사에 묻혀 웅웅대는 불분명한 사운드에 대한 불쾌감이 생겨버렸다. 1959년에 제작된 영화이다보니 더이상 무엇을 바라겠느냐는 식의 반문도 가능하지만 그런 불만족스런 상태에서 똑같은 영화를 또 본다는 것은 사실 그다지 즐거운 일은 아니었다.

하지만 영상과 사운드를 모두 디지털 기술로 복원한 <벤허> DVD는 지금껏 TV를 통해 보았던 <벤허>와는 전혀 다른 <벤허>의 세계를 보여준다. 가장 돋보이는 부분은 확실하게 복원된 영상. <벤허> DVD에 수록된 본편 영화의 화면은 마치 중세시대에 손으로 일일이 그린 성서의 삽화가 미려한 동작으로 움직이는 듯한 착각에 빠지게 할 정도로 독특한 매력을 발산한다. 또한 등장인물들의 의상으로 대표되는 색감도 매우 풍부하게 느껴진다. 한편 서플먼트에 수록되어 있는 1시간 분량의 다큐멘터리 <The Making of an Epic>도 절대 놓칠 수 없는 귀중한 자료. <벤허>가 근대에 실존했던 인물이 직접 쓴 소설을 원작으로 하고 있다는 사실이나, 영화화되기 전에 연극무대에서 성황리에 공연되었다는 점 등은 그 다큐멘터리를 보기 전까지는 알지 못했던 역사적 사실이다. 또 하나 재미있는 서플먼트는 스크린 테스트. <총알탄 사나이> 시리즈로 우리에게도 친숙한 네슬리 닐슨이 너무나 젊은 모습으로, 그것도 악역 멧살라로 등장하는 스크린 테스트장면은 그의 현재 이미지와 중첩되면서 묘한 웃음을 만들어낸다.

문제는 <벤허> DVD에서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할 부분으로, 돌비 5.1 채널을 지원한다는 복원된 사운드가 기대 이하라는 사실이다. 물론 제작연도를 충분히 감안하고 <벤허>와 <글래디에이터>는 다를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십분 이해한다고 해도, <벤허> DVD가 들려주는 사운드는 입체감이 거의 없어 실망스럽다. 특히 가장 고대하던 전차경주장면에서 사운드 역시 말발굽 소리와 관중의 환호 소리가 모두 뒤엉켜 웅-웅- 울릴 뿐, 채널 분리 효과나 화면에 걸맞은 현장감은 거의 들을 수가 없다. 게다가 중간에 한번 뒤집어야하는 양면 디스크 방식을 사용하고 있는 점도 매우 불편하다.

그러나 이러한 단점들에도 불구하고 무엇보다 3시간30분이라는 긴 러닝타임을 별로 지루하지 않게 볼 수 있는 ‘걸작’이라는 데서 <벤허> DVD는 포기하기에는 너무나도 매력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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