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멈추지 않으면 볼 수 없는 시간이 소중하다
정재혁 사진 서지형(스틸기사) 2007-06-20

<황색눈물>의 이누도 잇신 감독

2005년 11월 어떤 인터뷰에서 이누도 잇신 감독은 60년대 청춘의 이야기, 모녀의 이야기, 고양이를 기르는 여자에 대한 이야기를 준비하고 있다고 했다. 앞의 두 작품은 올해 4월과 5월 각각 <황색눈물>과 <비잔>으로 모습을 드러냈고, 뒤의 고양이 이야기는 현재 <쿨쿨 자는 건 고양이랍니다>란 이름으로 진행되고 있다. 동시에 세편을 구상하는 감독의 심보란 무엇일까. 시간적으로, 육체적으로 그게 가능할까. 하지만 이누도 감독은 2005년에도 <터치> <우리 개 이야기> <메종 드 히미코> 등 3편을 연출했고, 2004년과 2003년에는 각각 두편의 영화를 발표했다. 촘촘한 필모그래피를 채우는 풍부한 상상력과 넘치는 창작력? 하지만 이누도 감독은 의외로 너무도 싱거운 답변을 남긴다. “그냥 상황에 따라 되는 대로 찍고 있어요.”

실제로 그의 필모그래피는 촘촘함과 동시에 불균질하다.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과 <메종 드 히미코>가 부드럽게 연결되는가 싶더니 <터치>의 풋풋함은 다소 모나 보이고, 똑같이 노인을 주인공으로 한 영화 <사후의 영광>과 <금발의 초원>도 이야기를 버무린 색채가 다르다. 그의 영화를 일관되게 묶어주는 주제나 정서, 태도는 있지만 이를 완전히 무시하고 있는 듯한 작품들도 가끔 눈에 띈다. 특히 나가사와 마사미에 반해 연출한 <터치>. 그는 너무도 솔직하게 “나가사와 마사미가 출연한단 소리를 듣고 바로 연출을 결정했다”고 말했다. 정말 상황이 그의 작품을 만들고 있는 건지도 모르겠다.

<황색눈물>은 이누도 잇신 감독이 어릴 적 보았던 TV드라마가 원작이다. 만화 원작을 갖고 있는 작품이지만, 이누도 감독은 만화보다 드라마를 원작으로 삼았다고 했다. 어릴 때 느꼈던 TV드라마의 감동이 너무 컸다며. 그래서 <황색눈물>은 이누도 감독의 ‘영화적 색채’보다 그가 어릴 적 가진 꿈의 향내가 더 강하다. 60년대 도쿄를 살아가는 청춘들의 삶 속에 그의 열정이 묻어난다. 하지만 꿈의 작품을 영화로 만드는 게 쉬었을까. 게다가 만화 <황색눈물>은 요즘 젊은이들은 거의 알지 못하는 40여년 전 작품이다. 아마 이 영화의 제작을 제이스톰이 하지 않았거나, 출연배우가 인기 아이돌 그룹 아라시가 아니었다면 이누도 감독의 꿈은 실현되지 못했을 것이다. 또다시 찾아온 좋은 상황. 영화의 한국 개봉차 방한한 이누도 감독을 압구정동의 한 카페에서 만났다.

-어릴 때 <NHK> <은하테레비소설>에서 <황색눈물>을 보고 영화화를 다짐했다고 했다. 당시 그 작품은 어떤 느낌이었나. =그때 나는 14살이었다. 20대 전반의 남자들이 자유롭게 살아가는 게 그냥 좋아 보였다. 동경했달까. 특히 1960년대는 일본이 경제성장에 몰두해 다른 것은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했던 때다. 잘못된 것에 눈을 감고, 풍요로워지기 위해서는 다른 건 희생해도 된다고 믿었다. 만화도 팔리는 만화만을 강요했고. 그런데 에이스케라는 주인공은 자신이 그리고 싶은 만화를 계속해서 그린다. 그 자세가 매우 감동적이었다.

-영화의 주인공 에이스케를 샘 페킨파 영화의 주인공처럼 봤다는 멘트가 있더라. =내가 중학생 무렵에 가장 많이 본 영화가 샘 페킨파의 영화다. 당시가 샘 페킨파가 가장 활발하게 영화를 만들었던 시기이기도 하고. <와일드 번치>나 <관계의 종말> 등을 좋아했다. 페킨파 영화에는 시대가 변해도 자신은 변하지 않는 인물이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와일드 번치>도 근대화해가는 미국에서 혼자 변하지 않고 어디까지 갈 수 있는지 시험해보는 인물이 나온다. 그런 주인공이 에이스케와 비슷하게 보였다. 에이스케도 자신이 하고 싶은 걸 어디까지 할 수 있는지 시험해보니까.

-영화에는 60년대의 모습이 기록 화면으로 삽화처럼 들어가 있다. 일본의 60년대를 어떻게 보여주고 싶었나. =일단 60년대라고 하면 매우 신기하다. 그리고 그립다. 당시에는 미래가 정해져 있었고, 확실히 보이는 미래가 있다고 믿었다. 그쪽을 향해 나아가면 좋아진다고 누구나 말했다. 그게 당시 일본인들의 마음가짐이고 행동방식이었다. 건강하고, 즐거운 시기였다. 그때 내가 10살 정도였는데 실제로도 경제가 좋아졌다. 돈도 그렇고, 집도 그렇고, 텔레비전도 생기고. 하지만 이는 60년대 전반까지의 일이다. 후반이 되어 사람들은 일본의 밝음 뒤에 감쳐진 문제를 알아차렸다. 1964년 도쿄올림픽이 끝나고 1970년대가 되기 이전부터 경제성장 뒤편의 문제들이 겉으로 드러났다. 나는 영화에서 그 전후의 변화를 담고 싶었고, 그래서 올림픽 한해 전인 63년에서 이야기를 시작했다.

-1960년대의 당신은 매우 어렸을 텐데, 그런 변화를 실제로 느꼈나. =내가 1960년생이라 도쿄올림픽 때에는 4살이었다. (웃음) 하지만 변화는 실감했다. 도쿄올림픽이 끝나고 일본에는 공해문제가 많이 제기됐다. 이전에는 경제가 발전하면 모든 게 다 좋아진다고 생각했는데 문제가 생긴 거다. 공장으로 먹고사는 사람도 있었지만, 그 주변 사람들과 농민들은 피해를 봤다. 미나마타병 같은 이상한 질병도 생기고. 또 당시에는 베트남전쟁이 한창이었다. 그런데 일본은 전쟁에 참여하지도 않는데 주변에 기지가 많았다. 베트남 반전운동도 한창이었고. 그런 게 다 이상하게 느껴졌다. 또 내가 <황색눈물> 드라마를 본 게 1974년이었는데 그때는 일본의 학생운동이 모두 실패해서 젊은이들이 무력감을 느꼈다. 아무것도 안 한다는 느낌이랄까. 젊은이들이 집에서 텔레비전만 보는 그런 시대가 돼버린 거다. 많은 걸 시도해봤지만, 내가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다는 식의 결론.

-영화 주인공들은 시대를 일부러 거스른다기보다 그냥 둔감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둔감하다기보다는 오히려 멈췄다는 느낌이다. 모두 열심히 달리고, 좋은 목표를 보고 가는데 영화의 네 청년은 그걸 보지 않고 어딘가에서 내려버렸다. 자기들만 마음에 드는 게 있어서 다른 길을 가는 상황이다. 사실 별로 특별한 것도 아니다. 그러니까 영화에서도 아무것도 아니지 않나. (웃음) 하지만 아무것도 아닌, 뭔가 큰 의미가 아니라는 느낌이 좋았다. 아무것도 일어나지 않지만 멈춰 서 있는 시간을 갖는다는 것, 그게 소중하다고 생각했다. 달리고 있으면 앞밖에 볼 수 없는데, 잠시 멈춰 서면 다른 게 보인다. 그건 멈추지 않으면 볼 수 없는 거다. 그런 시간, 공기를 중요시하고 싶었다.

-이번 영화를 준비하면서 다시 원작 드라마를 보았을 때 14살 때와 똑같은 부분에서 감동받았다고 했다. 그게 어떤 부분인가. =영화에 들어 있는 장면은 다 기억에 남은 장면이다. (웃음) 그중에서 가장 좋았던 건 에이스케가 길을 가다가 쇼이치의 노래자랑 방송을 듣는 것. 땡 소리와 함께 떨어지지 않나. 드라마랑 똑같다. 또 마지막에 에이스케가 아이한데 편지를 주는 장면도 좋다. 드라마는 좀더 담백한 느낌인데 영화에선 좀더 감정을 고조시켰다. 그래도 거의 똑같다.

-영화에는 만화의 원작자인 나가시마 신지의 ‘사소설 경향’이 묻어난다. 시대를 매우 개인적인 시점에서 서술하는 방식이 그렇다. 각본은 드라마의 각본을 썼던 이치가와 신이치가 썼는데, 정확히 원작은 만화인가, 드라마인가. =영화는 텔레비전 드라마 그대로다. 고치지 않았다. 다섯 시간짜리 드라마를 단지 짧게 하기 위해 애썼을 뿐이다. (웃음) 사실 내가 드라마를 봤을 때 다시 보고 싶다고 느낀 장면만을 영화에 넣은 거다. (웃음) 기본적으로는 그걸 해보고 싶었다. 만화보다 드라마를 우선했지만 드라마나 만화나 영화의 테마는 비슷하다. 단 만화는 1968년에 시작해서 70년대에 끝난다. 드라마는 1963년에 시작하지만. 만화의 주인공이 마지막에 “공동의 시대는 끝났다. 이제부터는 혼자 싸울 수밖에 없다”고 말한다. 그 메시지는 드라마에서도 같다. 드라마에서는 에이스케가 마지막에 방에서 혼자 만화를 그리고 있다. 그건 개인적인 방식으로 싸우는 거다. 아파트 안에서 혼자. 함께 모두를 위해 싸운다는 정치성에 대한 불신감이 만화나 드라마에 공통적으로 들어가 있다.

-모 인터뷰에서 <황색눈물>은 60년대 일본에 대한 안티지만, 공투(共鬪)하지 않고 공명(共鳴)한다고 말했다. 이는 감독의 전편에 흐르는 주제와 관련있어 보인다. =공명할 순 있지만 같이 싸울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언제부터인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 사람들과 싸우지 않겠다고 결정했다. 나의 전 세대들은 무언가에 대해 함께 싸웠지만 결국 그 전 세대와 똑같아져버렸다. 그들이 운동했던 방식에 대한 반감이다. 싸웠던 상대와 똑같아지는 것, 그건 정말 안 된다고 생각한다. 한번 기대했었는데, 실망했다. 저항했던 조직과 결국 똑같은 조직을 만들고, 거기에 너무 많은 힘을 빼앗기고, 거기에서 또 분열이 일어나고. 결국 분노의 싸움이 되고, 그 조직은 사라지고, 이전 조직에 흡수되고. 그런 과정을 너무 많이 봐왔다. 그런 실패는 이제 더이상 반복하고 싶지 않다. (웃음) 그런데 이런 얘기가 영화에선 전혀 보이지 않는다. (웃음)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의 이케와키 지즈루, <터치>의 나가사와 마사미처럼 <황색눈물>에도 아라시에 대한 감독의 애정이 보인다. 처음 아라시를 주인공으로 한 영화를 제의받았을 때 그들의 콘서트를 보러 갔다고 했는데, 어떤 느낌이었나. =일단 뭐를 하는 애들인지 몰랐다. 그래서 콘서트에 가봤다. (웃음) 느낌은 너무 좋더라. 다섯명 멤버들 사이가 매우 좋아 보였다. 공연이 끝나고 대기실에 가서 이야기를 해봤는데,‘아, 이 녀석들이라면 뭐를 해도 되겠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뭐를 할까, 생각하다 예전부터 영화화하고 싶었던 <황색눈물>을 떠올렸고, 얘들이면 가능하다는 판단에서 영화화하자고 말한 거다.

-니노미야 가즈나리는 쇼와시대와 딱 맞는 느낌이지만, 마쓰모토 준을 쌀집 청년으로 캐스팅한 건 의외라고 생각했다. 원래 화려한 이미지가 강한 배우인데. =니노미야는 예전부터 알고 있었고, 쇼와 느낌과 맞다고 생각했다. <황색눈물>을 만들려고 하는데 클린트 이스트우드가 좋다며 데려갔다. 결국 돌아올 때까지 기다리다 촬영했다. (웃음) 마쓰모토가 연기한 유지는 극에서 객관적인 인물이다. 4명의 청년을 멀리 떨어져서 바라보는 존재가 필요했고, 근로 청년을 넣자고 생각했다. 당시엔 집단취업으로 도쿄에 올라오는 사람이 많았으니까. 화려한 이미지가 강한 배우라도 반대의 역할을 연기하면 오히려 더 재미있을 거라 생각했다.

-현재 진행하고 있는 <쿨쿨 자는 건 고양이랍니다>를 포함해서 올해 벌써 세 작품이다. <비잔>에 대한 일본의 평을 보니 이누도 작품답지 않게 눈물이 뜨거워졌다고 하더라. 쿨하지 않고 제대로 울리는 영화라고. 그간 어떤 변화가 생긴 건가. 또 다음 작품을 결정할 때는 어떤 기준으로 하나. =변화? 그건 잘 모르겠다. 별로 없는 것 같은데. (웃음) 기본적으로는 내가 하려고 생각했던 영화와, 의뢰받았지만 거절했던 영화 중에 다시 하자고 결심한 영화를 순서대로 찍는다. (웃음) 거절했던 영화도 다시 생각해봤을 때 ‘이 정도면 해도 되지 않을까’란 생각이 들기도 하니까. 그래도 영화를 찍는 게 반년 정도 시간이 소요되니까, 영화에 대한 나의 모티베이션(motivation)이 최소 반년은 지속될 수 있는 작품만 한다. <비잔>과 <쿨쿨자는 건 고양이랍니다>도 의뢰받은 작품들이다. 그런 점에서 <황색눈물>은 좀 특이한 영화였다. 그건 단지 내가 예전에 봤던 드라마를 재연해보고 싶었을 뿐이니까. (웃음) 어떤 이들은 원작이 있는 작품을 영화로 만들면 자신의 오리지널리티(originality)를 넣기도 하는데, 나는 그렇지 않았다. 이건 내가 14살 때 보았던 드라마 그대로다. 대사도 똑같고, 사건도 다 똑같다. 새로 만들어서 넣은 대사가 한줄도 없을 정도다. 그냥 내가 다시 한번 이 작품을 보고 싶었을 뿐이다. (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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