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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시즘에 맞서는 열혈 경찰 <뜨거운 녀석들>

약자의 얼굴을 한 파시즘에 맞서는 열혈 경찰

누구라도 쿠엔틴 타란티노를 떠올릴 것이다. 두 번째 장편 <새벽의 황당한 저주>에 이어 <뜨거운 녀석들>을 내놓은 에드거 라이트는 <저수지의 개들>을 만든 뒤 <펄프 픽션>으로 곧바로 승천하던 무렵의 쿠엔틴 타란티노를 보는 듯하다. 두 감독은 모두 유희정신을 기본 동력으로 삼고, 대중문화 전반에 대한 잡다한 지식과 취향을 양 날개 삼아, 재기 넘치는 영화를 만들어왔다.

하지만 라이트가 타란티노의 아류인 것은 아니다. 그는 좀더 친근하고 유머러스하며 정치적이다. 길고 긴 재담을 늘어놓거나 이리저리 비틀어낸 구조의 묘미를 즐기는 것보다는 신과 신 사이의 연결 방식에 훨씬 더 관심을 갖는다. 그리고 무엇보다 타란티노의 영화가 점점 더 심플해지는 데 비해서 라이트의 영화는 점점 더 복잡해진다.

어느 날 갑자기 좌천되어 한가로운 시골 마을 샌포드로 가게 된 엘리트 경찰 니콜라스 엔젤(사이먼 페그). 대니 버터맨(닉 프로스트)과 콤비를 이룬 엔젤은 강력 사건 하나없이 잡다한 일만 처리하며 무료한 나날을 보내다가 연이어 터지는 끔찍한 사건들에 접한다. 언뜻 우연한 사고로만 보이는 사건들이 실은 치밀한 연쇄살인이라고 판단한 엔젤은 대니와 함께 수사에 착수한다.

영화든 문학이든 건축이든, 모든 훌륭한 창작품은 음악적이다. <뜨거운 녀석들>이 뛰어난 점은 무엇보다 그 탁월한 리듬에 있다. 손 안에 메트로놈을 쥐고 연출하는 듯한 에드거 라이트는 다양한 카메라워크와 창의적인 편집방식을 통해서 자신의 영화들에 리드미컬한 내재율을 불어넣었다. 그가 구사하는 유머 역시 대부분 숏과 숏 사이, 장면과 장면 사이에서 발생한다. 갖가지 설정은 버디액션 장르의 의표를 찌르고, 시퀀스 안의 진행방식은 관객의 기대를 서너 걸음 앞서간다. 엔젤이 사건의 진상을 추리할 때 플래시백 장면은 필름을 뒤로 돌리는 방식으로 보여지고, 인물의 등장과 퇴장은 예기치 못한 방식으로 이뤄진다.

<폭풍 속으로>와 <나쁜 녀석들>을 비롯한 수많은 액션영화들의 기시감을 적절히 끌어들이는 이 영화의 참고문헌 목록엔 <새벽의 황당한 저주>까지 들어 있다. 전작에서 고릴라 흉내를 잘 내던 닉 프로스트가 이 영화에서 고릴라 인형을 선물받고, 장애물을 제대로 뛰어넘지 못해 안쓰러움을 안기던 사이먼 페그는 이 영화에서 신기에 가까운 점프 능력으로 거뜬히 만회한다.

전작에서의 나사 풀린 캐릭터와 달리 융통성없는 원칙주의자 니콜라스 엔젤 역을 맡은 사이먼 페그는 항상 웃음기 가득한 인물들 속에서 절대 웃지 않는 단 한명의 인물을 연기하며 대단히 인상적인 모습을 선보인다. 앞으로 나선 사이먼 페그를 넉넉히 뒷받침해주는 닉 프로스트의 연기도 좋다. 짐 브로드벤트에서 티모시 달튼과 빌 나이까지 조연들 면면이 화려한데다가 심지어 피터 잭슨까지 의외의 순간에 카메오로 출연한다.

놀라운 것은 이 탁월한 코미디가 극이 뻔한 해결을 향해 질주하며 막을 내리는 것으로 보일 때쯤 시침을 뚝 떼면서 전혀 다른 차원의 이야기를 펼쳐낸다는 점이다. 몇번이나 급커브를 도는 스토리가 다다르는 곳은 바로 ‘우리 안의 파시즘’이다. 언뜻 우스꽝스러워 보이는 연쇄살인의 진상 속에는 영국사회의 보수화와 집단 이기주의가 있고, 약자의 얼굴을 한 파시즘이 있다. 격렬하게 총을 난사하는 노인들에 맞서는 엔젤의 과격한 클라이맥스 액션장면들은 통념을 넘어선 설정으로 처음엔 당혹감을 안겨주지만, 곧 예리한 정치의식으로 껍데기를 부수는 통쾌함을 안긴다. 악은 언제나 악하지만, 피해자의 탈을 쓰고 있을 때 가장 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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