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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인생의 영화] <길버트 그레이프> -이기호
2007-06-22

집에만 가져가면 꽃들이 다 죽었어

왜 어떤 바람은 그냥 스쳐 지나가지 않고 꼭 우리 집안에만 오랫동안 머물다 떠나가는 것일까? 바지 주머니에 양손을 깊숙이 찌르고 그런 생각을 한 적이 있었다. 십년 전, 대학 졸업 무렵이었다. IMF가 가브리엘 천사처럼 이 땅에 찾아왔을 때였고, 하나뿐인 형이 역시나 하나뿐인 고향집을 담보삼아 시작한 사업에서, 참담하게 실패했던 시절의 일이었다. 형은 그때 무슨 실내골프장 사업을 시작했는데, 첫발을 떼자마자 자신이 어떤 사기에 휘말렸다는 것을 깨달았고, 그것을 만회하기 위해 지난한 ‘부동산교환’의 길로 접어들었다. 실내골프장을 매물로 내놓아도 나가지 않으니, 엇비슷한 것(그러니까 엇비슷하게 장사가 안 되는)들끼리 바꾸는 ‘부동산교환’이란 것을 시작했고, 해서 실내골프장은 카페로, 카페는 다시 소주방으로, 소주방은 다시 레스토랑으로, 3개월에 한번씩 몸집을 바꾸어나갔다. 그 와중에 나 역시 가족공동체의 일원으로서 3개월 넘게 소주방 카운터를 지키고 앉아 있어야만 했다. 송파구 가락동 낡은 상가 이층에 있는 작은 소주방이었다. 형은 늘 무언가를 알아보기 위해 자리를 비웠고, 나는 손님 한명 찾아오지 않는(대신 부동산중개인들은 자주 찾아왔다) 그곳에 앉아 계속 담배만 피워댔다. 친구들은 하나둘 취직이 되어 내 곁을 떠나갔고, 고향에 계신 부모님은 한 시간에 한 번씩 전화를 걸어 형의 행방을 물었다. 부모님은 꼭 통화 말미에, 그래도 네가 형을 도와야지, 어쩌겠니, 라는 말을 했다. 나는 자동응답기 속 테이프처럼, 그 말들을 묵묵히 듣고 있다가 마음 한켠에 고스란히 저장해두곤 했다.

그런 나날 중에 이 영화 <길버트 그레이프>를 보았다. 영화를 그리 즐겨보는 편이 아닌지라, <길버트 그레이프>가 어떤 영화인지, 어느 감독 작품인지(사실, 지금도 잘 모른다), 심지어 어느 나라 영화인지도 모른 채, 그냥 보기만 했다. 그리고 다 보고 난 뒤, 보지 말았으면 더 좋았을걸, 하는 생각을 했다. 소설이든, 영화든, 보는 그 순간 마음의 풍경에 따라 각기 다른 활자와 영상으로 다가오는 것은 당연한 이치일 터. 그 당시 내 마음의 풍경으로 따지자면, 제 아무리 스파이더 맨이라 할지라도, 거미줄 대신 억울하게 죽은 삼촌만 돋을새김하여 가슴에 남았을 것이다. 그러니, 제대로 된 감상은 불가능했다. 나는 영화 중반부터 계속 정신병자처럼 혼잣말을 해대며 화면을 바라보았다. 길버트가 카버 부인과 밀애를 즐길 땐 ‘에구 저 병신’ 하며 혼잣말을 했고, 길버트가 어니 때문에 어머니에게 혼날 땐 ‘저 등신’하며 욕을 해댔다. 저 병신과 저 등신 사이에서 오가던 길버트는, 죽은 어머니를 집과 함께 화장하는 장면에서 나에게 조금 칭찬을 받았으나, 영화 마지막에 어니와 함께 길을 떠나는 장면에선 다시 차마 지금 이 지면에 옮길 수 없는 쌍욕을 온몸으로 고스란히 받아들여야만 했다. 짐을 벗은 순간, 다시 자발적으로 어깨에 짐을 메고 떠나는 길버트가, 나는 참을 수 없었다. 참을 수 없어서 엉엉, 어린아이처럼 울면서 ‘개새끼야, 혼자 가란 말이야!’라고 욕을 했다. 그때를 다시 생각하면, 지금도 얼굴이 홧홧하게 달아올라 어디론가 숨고 싶지만, 그게 사실이었다. 나는 울다가 욕하다가, 다시 울다가 욕하기를 오랫동안 반복했고, 그러다가 혼자 술을 조금 마신 것 같다. 그리고 술에 취해 영화의 길버트가 어니를 꼬시기 위해 불렀던 노래 <Match in the gas tank boom boom!>을 계속 흥얼거렸다. ‘Match in the gas tank boom boom!’ 사실은, 길버트가 아닌, 나 자신에게 욕을 했다는 것을, 그때도 나는 잘 알고 있었다.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나는 그 노래를 계속 흥얼거렸다. 고개를 들어보면 누군가 가스탱크 위에 올라앉아 있을 것만 같았고, 그를 위해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곤, 고작 노래를 흥얼거려주는 것, 그것이 전부라고 생각했다. ‘Match in the gas tank boom boom!’

어느 시인은 <가족>이란 시에서 ‘밖에선 그토록 빛나고 아름다운 것들이, 집에만 가져가면 꽃들이 다 죽는다’라고 썼다. 또 어떤 시인은 ‘집이 아니고 짐이야’라고도 썼다. 나는 맞는 말이라고 생각한다. 우리의 가족이란 어쩌면 최악의 ‘비윤리적인 거주집단’일지도 모른다. 그 안에서 우리는 길버트처럼 훈육당하고, 희생당하며, 주저앉은 채 살아가는지도 모른다. <길버트 그레이프>는 단지 그 단면만 보여주는 영화이다.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한데도, 십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길버트 그레이프>는 계속 내 마음을 아프게 만든다. 집에만 가져가면 꽃들은 다 죽었지만, 그럼에도 그 꽃을 집으로 가져가는 마음을 알기에, 그것이 그저 눈물겨워, 욕하면서도 계속 보고 또 보고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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