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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인생의 영화] <돌스> 소설가 한유주
2007-06-29

영원한 수수께끼, 사랑

사랑에 관해서라면 나는 그다지 할 말이 많지 않았다. 그것이 나의 사랑이든, 다른 사람의 사랑이든 간에 거의 입을 다물고 지냈다. 아는 사람들이나 친구들이, 전화로, 술자리에서, 쉬어가는 벤치에서 문득, 아니면 누군가가 화장실에 다녀오거나 이른 취기로 고꾸라지는 동안, 사랑의 감정을 나에게, 혹은 나 아닌 누군가에게 설명하려고 더듬거리는 모습을 볼 때마다 나는 그들의 사랑을 질투했고, 그들의 사랑이 못내 궁금했다. 그러나 그들의 사랑은 대개는 쉽게 끝났고, 그 끝은 금성의 표면처럼 황폐했다. 나는 그런 이야기들을 처음부터 끝까지, 아니 끝이 보이지 않는 지점까지 참을성있게 들어주었고, 몇 마디 조언을 덧붙이기도 했다. 그다지 유용한 충고는 아니었던 듯싶다. 사람들은 늘 자기 방식대로만 사랑하는 것처럼 보였고, 이미 다들 자신의 답을 알고 있었다.

아니, 어쩌면 그렇게 보였던 것뿐인지도 모른다. 사랑은 늘 불가해한 것이었고 결코 쉽지 않았다. 적어도 내게는 그랬다. 내가 사랑이라고 믿었던 감정들이 하나하나 구겨지고 부서지고 망가지는 과정이 되풀이될 때마다, 사람이 사람을 사랑하는 것인지, 사랑을 사랑하는 것인지 도통 알 수가 없었다. 어렸기 때문일까? 그럴지도 모른다.

그러나 감정만큼은 거짓이 아니었다. 사랑에 빠진 사람들은 잠시나마 더없이 행복해했다. 두눈만은 꿈길 위를 걸었다. 어떤 과학자들은 호르몬의 분비에 따라 사랑이 지속될 수 있으며, 그 기간은 길어야 3개월에서 1년을 넘지 않는다고 했지만, 사람들은 그러한 연구결과를 가볍게 비웃었다. 그래, 과학자들의 말대로 사랑은 오래 지속되지 않는 경우가 더 많았지만 뒤에 추억할 만큼은 되었다. 사랑이 지나가고 난 뒤, 친구들은 조용히 속삭이고는 했다. 그거면 되었다, 그거면 충분하다고.

기타노 다케시의 영화 <돌스>를 봤던 때가 언제였는지는 정확히 기억나지 않는다. 아마도 2003년이거나, 2004년, 혹은 2005년일 것이다. 장소는 확실히 대학로였다. 기타노 다케시의 영화들을 좋아했던 까닭에, 개봉했다는 소식을 듣고 별 생각 없이 보러 갔던 영화였다. 극장 안이 어두워지고, 스크린이 깜박일 때까지 나는 앞으로 일어날 일을 예상하지 못했다. <돌스>는 낯설고도 익숙한 풍경을 비추는 것으로 시작한다. 어둠 속에서 연한 분홍빛의 화면이 펼쳐진다. 활짝 핀 벚꽃나무 아래로 붉은 끈으로 묶인 연인이 걸어간다. 장면이 바뀌고, 계절이 지나가는 동안에도 두 연인은 묵묵히 시간을 견디며 하염없이 걷기만 한다. 붉은 끈으로 단단히 묶인 사랑은 연인을 이어주기도 하고, 구속하기도 한다. 삶을 끝장내기도 하고, 어떻게든 살아가게끔 하기도 한다. 보이지 않는 손에 이끌려가는 연인은 봄을 걷고, 여름을 건너, 가을을 지나, 겨울에 와서 한없이 나락으로 미끄러진다. 상영시간이 채 두 시간이 못 되는 영화를 보는 동안, 나는 꺽꺽대는 소리를 죽이면서 울고만 있었다. 옆에 앉아 있던 이가 말없이 손을 잡아주었다. 고등학생 시절, 몰래 극장에 숨어 들어가 보았던 <폴라 X> 이후로, 영화를 보고 그렇게 이유없이 운 것은 처음이었다. 어렸기 때문일까? 나는 모르겠다. 지금도 알 수가 없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서, 연인을 묶은 붉은 끈은 어느 절벽 중턱에 위태하게 자라난 나무줄기에 걸리고 만다. 해가 뜨고 빛이 스민다. 희디흰 눈 위에서 끈이 붉도록 빛난다. 남자는 눈을 뜨고 있다. 여자는 눈을 감고 있다. 사랑은 언제나 상투적이고 폭력적일지도 모르지만, 때로 아름답기도 하다. 그 아름다운 붉은빛이 사람들의 눈을 멀게 한다. 나는 지금도 가끔, 여자가 장난감을 가지고 놀던 장면을 떠올리고는 한다. 입에 대롱을 물고 바람을 불면, 대롱 끝에서 조그만 플라스틱 공이 떠오른다. 내게도 그 장난감이 있다. 대롱을 물고 온 힘을 다해 바람을 불어넣는 순간, 나는 그들의 사랑을, 혹은 나의 사랑을 알 것도 모를 것도 같다. <돌스>는 내가 알고 있는 한, 사랑에 관한 가장 잔인하고도 이기적인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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