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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교양 PD 3인] 72시간동안 떠낸 한국사회의 단면
최하나 사진 오계옥 2007-08-03

연출과 재구성 배제하고 현장성 추구하는 <다큐멘터리3일> 김재연 KBS PD

<다큐멘터리 3일> KBS1/목요일 밤 10시/45분

72시간. 뽀얀 흙먼지 속에 말들이 달려나가고, 출산을 앞둔 산모가 생명의 탄생을 숨죽여 기다리며, 시원한 한방을 갈망하는 야구장의 열기가 부글거린다. <다큐멘터리 3일>은 3일이라는 제한된 시간 동안 하나의 공간을 관찰하고 탐색한다는, 특이한 전제 위에 세워진 다큐멘터리다. 매주 한 장소에 대한 이야기를 전달하기 12차례. 바다 위의 병원선부터 노숙인 재활 쉼터까지, 공간이라는 창을 통해 들여다본 <다큐멘터리 3일>에는 시간이라는 칼로 예리하게 잘라낸 한국사회의 단면이 존재한다. 소속된 PD만 7명. 5~6명의 VJ가 한몸이 되어 움직이는 제작현장의 끝에 서 있는 것은 바로 지휘자 역할을 하는 CP(Chief Producer)인 김재연 PD다. “요새 다큐들이 사변적이 됐고, 현장을 떠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인스턴트 식품이 아닌 마치 활어처럼 싱싱한, 가공되지 않은 현장의 모습을 그대로 전하고 싶었다. 살아 있는 리얼리티를 추구하자는 뜻에서 <다큐멘터리 3일>을 시작하게 됐다.”

<다큐멘터리 3일>의 공간을 풍성하게 채우는 것은 무엇보다 사전 섭외가 아닌 현장에서의 만남과 부딪침으로 담아낸 사람들의 얼굴이다. 그것은 합숙 면접에서 마음을 졸이는 이 시대 청춘들의 자화상이기도 하며, 다슬기를 잡고 밭을 가꾸며 재활을 꿈꾸는 노숙인들의 진한 소망이기도 하다. 3천~4천분 분량의 촬영을 통해 포착해낸 모습에는 현미경을 들이대는 치열함과 마음 깊은 곳을 두드리는 따스함이 공존한다. “인간 군상을 통해서 변화하는 사회를 들여다보자는 게 프로그램의 목적이다. 그래서 편집할 때도 절대 드라마를 위해 재구성을 하지 않는다. 예를 들어 촬영을 하다가 극적인 사건이 뒤에서 일어나면, 구성상 이것을 앞으로 가져와서 짜깁기를 할 수도 있지만 그런 걸 일체 안 한다는 거다. 마치 실시간으로 상황을 보듯이 전달하고 있다. 시청자들에게 호응을 얻는 것도 바로 살아 있는 현장을 그대로 전하기 때문이 아닐까.”

78년 방송에 입문한 김재연 PD는 경력이 30년에 가까운, 말 그대로 베테랑 중에 베테랑이다. 어쩌면 그래서 더욱, 그를 가장 잘 말해주는 것은 자신의 이름 석자보다도 프로그램의 제목들이다. <체험, 삶의 현장> <TV는 사랑을 싣고> <퀴즈 탐험, 신비의 세계> <도전! 지구 탐험대> 등 누구나 고개를 끄덕일 만한 프로그램들이 바로 김재연 PD의 머릿속에서 탄생했다. “프로그램을 하나 만드는 것은 산모가 아이를 낳는 심정과 같다”며 모든 프로그램을 자신의 자식처럼 이야기하는 그이지만, PD 인생에 하나의 중대한 기착지가 되어준 것은 <체험, 삶의 현장>이었다. “당시 휴먼다큐라는 것의 작위성에 식상해진 상태였다. 그때 머리에 언뜻 떠오른 것이 구르토프스키의 <가난한 연극>이었다. 그가 일체의 장식을 버리고 배우의 육체 하나로 돌아간 것처럼, 나도 가난한 방송을 해보자는 생각이 들었다.” 하루의 노동 근로시간, 시작할 때부터 끝날 때까지를 카메라 한대로 일체의 연출과 구성을 배제한 채 포착한 프로그램은 순식간에 화제의 중심으로 떠올랐고, 그야말로 대히트를 쳤다. “보통 사람들의 도전 정신, 상황을 어떻게 견디고 극복하느냐를 보자는 의미에서 <도전! 지구탐험대>를 만들었고, 대기업 총수들이 아닌 작은 영웅들의 신화를 조명해보자는 취지로 <신화창조의 비밀>을 기획했다. <다큐멘터리 3일>도 일상을 통해서 가치를 발견한다는 점에서 결국 예전 작업들과 하나의 연장선상에서 이어지는 것 같다. 결국 내 작업은 상황과 인간이라는 틀 속에서 계속 응용되고 파생된 것이 아니었나, 생각한다.”

“PD란 자기 브랜드를 가져야 한다”고 끊임없이 후배들에게 이야기한다는 김재연 PD는 신참 시절부터 지금까지 한번도 다른 사람의 프로그램을 ‘지망’해본 적이 없다. ‘하고 싶은 것을 만들면 된다’고 생각했고 그렇게 지침없이 새로운 프로그램을 탄생시켜온 그에게 PD란 끊임없이 도전하는 자이고, 고유한 시각으로 창조하는 자다. “운이 좋은 건지, 능력이 없는 건지(웃음), 이상하게 나는 지금까지 현장을 한번도 떠나본 적이 없다. 이제 정년이 4년 남았는데, 그만두는 날까지 한해에 한개씩 4개의 새로운 프로그램을 만드는 게 내 소망이다.” 그렇다면 4년이 지난 뒤에는? 그에게는 연극 연출이라는, 오랫동안 가슴속에 묻어둔 또 하나의 꿈이 존재한다. 30여년간 지침없이 브라운관을 유영하던 열정, 이제 머지않아 무대 위에서 더욱 뜨거워진 그의 도전과 마주하게 될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