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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교양 PD 3인] 짧고, 굵고, 독하게 묻는다
최하나 사진 오계옥 2007-08-03

가식 걷어낸 직설화법과 간결한 구성 돋보이는 <단박인터뷰> 홍경수 KBS PD

<단박 인터뷰> KBS1/화∼목요일 밤 10시45분/15분

“내복도 빨간색 입습니다.”(홍준표) “하나님에게 등 떠밀려 나온 거지요.”(김홍업) “우리 대통령님은 참 매력있는 분이에요.”(유시민) ‘말말말’류의 코너에 한자리 차지할 법한 말들이 톡톡 튀어나온다. “질문 하나만 더 할게요.” 항변하는 밀고 당김의 긴장, 알싸한 질문의 공격에 드러나는 맨 얼굴의 신선과 충격이 이곳에 있다. 15분, 이슈의 최전선에 서 있는 인물들에게 달려가 거침없이 질문을 던지는 <단박 인터뷰>는 그 이름 그대로 단박에, 격식을 걷어낸 정공법을 구사한다. 하지만 날을 세우는 뾰족함만이 장기는 아니다. 인터뷰에 마침표를 찍는 것은 출연자들의 애창곡 한 가락. 팽팽하게 당겨진 공기는 어느새 훗훗한 미소로 풀어진다. 프로그램의 얼굴이자, 직접 “들이대는” 역할을 맡은 것은 인터뷰어인 김영선 PD이지만, 카메라 뒤에서 인터뷰의 날실과 씨실을 직조하는 손길은 바로 <낭독의 발견>을 기획, 연출했던 홍경수 PD의 것이다. “시청자들의 라이프 사이클, 템포가 많이 짧아지지 않았나. 그것에 맞춰서 짧은 인터뷰 프로그램을 한번 만들어보자는 것이 처음 아이디어였다. 그동안 본격적인 시사 인터뷰가 많이 있었지만 다 실패하기도 했었고. 성공한 인터뷰 프로그램을 만들어보자는 생각에서 시작됐다.”

화, 수, 목, 일주일에 세번. 화제성있는 인물들을 즉각 섭외한다는 것이 처음에는 아무래도 큰 난관이었다. “괜찮은 출연자라도 시기가 맞지 않으면 못하는 거잖나. 가만히 있다가 화, 수, 목 3일에 출연자가 지나가야 하고 그걸 잘 맞춰야 한다는 점이 무척 어려웠다.” 달리는 차 안, KTX, 엘리베이터, 공항 등 종종 우아함과는 거리가 먼 <단박 인터뷰>의 발걸음은 ‘단박’이라는 단어가 함축하고 있는 프로그램의 지향점과도 상통한다. 순 한글인 ‘단박’의 5가지 의미는 즉시, 직접적으로, 솔직하게, 현장에서, 그리고 지체없이. 그래서 <단박 인터뷰>는 기존의 인터뷰 프로그램들이 관성처럼 두르고 있던 “덕담”의 휘장을 걷어냈다. “이명박 후보가 인터뷰할 때 교수들, 오케스트라 연주자는 노조가 필요없다는 발언을 했다. 편집을 하고 있는데 계속 보좌관한테 전화가 오더라. 그 부분을 빼달라고. 하지만 시청자들이 이 사람이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아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다 넣었다.”

홍경수 PD는 본래 신문기자로 언론계에 입문했다. 이른바 ‘언론고시’라는 전장을 뚫고 합격증을 거머쥐었건만, 수습 기간을 마치자마자 사표를 냈다. “그래서 백수 생활을 오래 했다. (웃음) 나올 때 내가 언론사에 다시 못 들어갈 수도 있겠구나, 하는 생각은 했었다. 하지만 기자가 내 적성에는 맞지 않더라. 주어진 것을 가공하는 것보다는 새로운 것을 만들고 싶다는 강한 열망이 있었기에 PD가 되고 싶었다.” <열린 음악회>를 시작으로 <가요무대> <이소라의 프로포즈> 등 예능국에서 주로 음악 프로그램 조연출로 활동하던 그에게 전환점이 되어준 것이 바로 <낭독의 발견>이었다. 2002년 일본 여행길에서 산 <소리내어 읽고 싶은 일본어>라는 책에서 착상해 기획하게 된 <낭독의 발견>은 그가 직접 아이디어를 구상하고 연출을 맡은 최초의 프로그램이자, “하고 싶은 것을 다 해보았던” 꿈의 실험장이기도 했다. 그중에서도 인순이 편. <거위의 꿈>의 가사를 때로는 낭독하듯, 때로는 노래하듯 읊조리며 종내 눈물을 흘렸던 그녀의 모습은 진한 파문을 전했고, 홍경수 PD는 “죽어도 여한이 없을” 가슴 벅참을 맛보았다. “<이소라의 프로포즈> 때 선배가 그런 말을 했었다. 야, 너무 좋지 않냐, 지금 죽어도 좋다. 그때는 그 말을 100% 이해 못했는데 인순이 편을 만들면서 같은 기분을 느꼈다. 아, 이거구나, 나는 이제 정말 연출을 그만둬도 한이 없구나.”

그는 방송을 ‘기’(氣)로 표현한다. 사람과 사람이, 사람과 프로그램이, 제작진과 시청자가 소통하는 기. 아직 그에게 <단박 인터뷰>의 기는 날카로움이 부족하다. “정말 독하다는 소문이 나야 한다. 그래서 출연자들이 걸리는 걸 두려워하고, 정말 배짱 좋은 출연자가 나오겠다고 하는, 그런 프로그램이 되었으면 좋겠다. 음식에 비유하자면, 홍어처럼 톡 쏘는 맛과 발효의 깊이를 동시에 가져야 한다고 할까.” 입사 12년차. 일주일에 3일 방영이라는 살인적인 일정 탓에 몸이 앓고 있지만, 아직도 새로운 프로그램 이야기를 들으면 어느새 귀가 솔깃한다는 그는 천생 PD다. “좋은 PD가 되는 게 꿈이다. 그리고 좋은 PD는 결국 좋은 사람과 다르지 않다고 생각한다. 자기 능력이 대단하다기보다는 다른 사람의 도움을 많이 받을 수 있는 사람. 그렇게 된다면 정말 많은 것을 할 수 있을 것 같다.” “좋은 PD”의 기(氣)가 흐르는 프로그램? 단박, 달려간다는 말은 그럴 때 가장 적합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