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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가 영화의 익숙한 클리셰 <리버틴>

예술과 관능과 파멸이라는 예술가 영화의 익숙한 클리셰들, 그러나 화면은 매혹적

과학, 종교, 예술 분야에서 새로움과 화려함이 난만했던 17세기를 뿌연 안개와 질척대는 진흙탕 속에 놓인 혼돈으로 보여주는 영화 <리버틴>은, 자유롭고 방탕했던 시인이자 극작가인 백작 존 윌모트(조니 뎁)의 영락을 따라간다. 도처에 존재하는 타락과 방탕을 둘러싼 먼지 같은 뿌연 기운들은, 결국 파멸에 이를 주인공들의 인생에 대한 암시가 된다. 존(재미있게도 그의 애칭은 배역을 맡은 배우의 이름과 같은 ‘조니’인데)은 셰익스피어가 될 수 있는 영광의 길을 등지고 가차없이 자유로운 난봉꾼(libertine)의 삶을 택한다. 예술가적인 마에스터가 재능있는 여제자를 가르치는 플롯, 그 여제자가 다시금 뮤즈가 되어 예술가의 상상력을 폭주시키는 플롯, 결국에는 여자가 권력 앞에서 사랑과 예술을 배신하는 플롯 등 익숙한 이야기 선들은 다소 식상하지만, 17세기 궁정과 런던의 뒷골목을 앤티크 스웨이드, 제이드그린빛의 희뿌연 푸름으로 연출한 영상 연출은 쉽게 잊혀지지 않을 질감의 인상적인 이미지들을 제공한다. 연주창을 치료했던 기적의 왕 찰스 2세(존 말코비치)를 우스꽝스럽게 모방하며 민중의 삶 속에 뛰어들어 기꺼이 광대가 되었던 존 윌모트의 모습에서는 짙은 페이소스가 느껴지며, 미신과 과학과 관능이 얽힌 17세기를 몸소 체현한 배우 조니 뎁을 본다는 것은 영화보기의 기꺼운 쾌락을 제공한다. <리버틴>이 결국 보여주는 것은, “나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욕망했다”이며, 파국을 예감하면서도 멈출 수 없는 욕망의 목소리에 충실한 자유로운 삶의 원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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