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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쾌한 예지원스러운 자세 <죽어도 해피엔딩>

호사다마 사태에 대처하는 예지원스러운 자세, 유쾌하다.

영화배우 예지원의 크리스마스 이브는 호사다마(好事多魔, 좋은 일에 탈도 많다)의 모범이다. 칸영화제 여우주연상 소식이 시내 전광판으로 울려퍼지는 가운데 서로 섞이기 어려운 네명의 사내가 청혼 반지를 품고 예지원 집으로 약속한 듯 들이닥친다. 넷 중 하나를 택하라는 사지선다의 요구 앞에 예지원은 답안 기입을 기피하는데, 아껴 먹으려는 그 봉들이 차례로, 말릴 틈 없이 요절난다. 예지원이 죽인 것일 수도 있고, 스스로 죽어나간 것일 수도 있다. 원작인 프랑스영화 <형사에겐 디저트가 없다>의 형사가 여주인공에게 “살인과 사고사의 차이가 뭘까요?”라고 묻는 것처럼, 쌓인 주검의 책임소재를 따지자면 알쏭달쏭이다. 스타 여배우의 집에서, 여배우의 소품들로 연쇄살인, 아니 연쇄죽음이 벌어졌으니 파란만장할 사단이 벌어진 건 분명하다.

예지원이 주검 하나를 수습하려들면 또 하나의 주검이 생겨난다. 계단으로 연결된 복층 주택이긴 하나 제한된 공간에서 다른 사내들 모르게 주검을 감추는 동시에 새로운 주검을 전시하는 건 영화 안에서 당하는 자나 밖에서 연출하는 자나 까다로운 일이다. 공간을 타는 리듬이 깨지면 사건의 이음새까지 억지춘향이 될 것이다. 원작보다 많은 에피소드(예컨대 한국적 화장실 유머)와 소품(흉측한 긴 식칼 대신 야구 배트처럼 단단한 동태를 이용하고 자석식 지구본이 무시무시한 흉기로 돌변하거나 감추고 싶은 섹스 보조용품의 기능을 폭로하는 등)를 끌어들여, 그만큼의 리듬을 배가하는 데 성공한 건 이 HD영화의 큰 묘미다.

거실, 부엌, 화장실 겸 욕실, 서재 등 네개의 공간을 부리나케 오가며 연극적 무대를 영화적 입체감으로 끓어오르게 하는 결정적 기여자는 예지원이다. 원작에서 재색 겸비한 소설가였던 여주인공의 표정과 말투는 그녀와 비교하면 단조로울 지경이다. 예지원의 캐릭터를 먼저 노출해주는 역할은 네 청혼자에게 있다. 새끈한 재미동포 데니스(리처드 김)와 양아치에 가까운 조폭 보스 최 사장(조희봉), 속물 지식인의 전형 유 교수(정경호)와 소심증 영화감독 박(박노식)의 캐릭터는 딱 자기들 직업을 닮았으니 이들이 사랑하는 여자도 마냥 우아할 것 같지는 않다. 팜므파탈적 속성은 영화를 넘어 사생활로도 이어질 것 같은, 여배우에 관한 오래된 이미지를 일단 닮았다. 네 사내보다 캐릭터가 살아 있는 인물은 형사(장현성)인데 그도 형사에 관한 오래된 이미지를 닮았다. 조명탄을 터뜨린 것 같은 밝은 빛의 담뱃불 이미지처럼 반드시 뭔가 알아낼 것 같은 ‘가오’를 뿜어낸다.

이미지는 이미지일 뿐이어서 형사는 사태의 실마리를 기습적으로 말해놓고도 그것이 증명하는 바를 절대로 알아채지 못하며, 팜므파탈 예지원은 불굴의 낙천성으로 기어이 ‘죽어도 해피엔딩’을 만들어놓고야 만다. 벼랑 끝에 선 위태로움을 과시하면서도 섹시함을 잃지 않고, 궁색한 거짓들을 늘어놓으면서도 천연덕스러운 예지원의 온몸 연기는 질릴 틈을 주지 않는다. 원작에 없는(정확히는 원작에서 여동생의 역할인) 제3의 인물 매니저(임원희)는 반전을 위한 배치이지만, 예지원스러운 이미지로 예지원을 돕는다. 실제와 배역의 경계를 보기 좋게 넘나드는 예지원 스타일과, 그 대구 같은 임원희 스타일이 서로 궁합이 맞는달까.

죽음에 색깔도, 책임도 덧입히지 않고 그저 깜짝스러운 사태로 대하는 아이디어는 원작에 빚진 것이나 그 빚을 갚고도 남길 게 있는 깜찍함이 즐겁다. 정색하고 본다면 이 깜찍함은 끔찍함일 수 있다. 청혼 경쟁자가 다른 경쟁자의 신체 일부를 우연히 먹는 원작의 카니발적 해프닝은 없지만, 죽음의 시작과 끝을 이어가는 소동을 훨씬 늘려놓은 터다. 숨이 끊어지는 상황을 유쾌하게 유희하는 게 어떻게 가능한지는 글이 아닌, 목격으로 이해될 성질이다. 달리 적어본다면, 코믹잔혹극 <조용한 가족>과 로맨틱스릴러 <달콤, 살벌한 연인>이 부담없이 연애해서 낳은 자식 같다고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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