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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냉정과 열정사이] 그녀들의 은밀하고 외로운 생
정이현(소설가) 2007-08-31

20대, 30대, 40대 여성이 느낄 외로움에 대해 말하는 <허스>

고등학생 때 야간자율학습을 마치고 나서 타던 통학버스는 Y역 언저리를 지났다. 버스가 그 앞 신호등에 멈춰 설 때면 홍등가의 불빛과 정면으로 눈이 마주치곤 했다. 칸칸이 나누어진 작은 공간들을 기억한다. 불그죽죽한 정육점식 조명등 아래, 백화점 폐점시간 이후의 마네킹처럼 피곤한 표정을 한 여자들이 서 있었다. 나중엔, 정말 내 눈으로 목격한 건지 아니면 혹시 1980년대 드라마에서 본 장면과 착각하는 건 아닌지 의심스러워질 만큼 전형적인 풍경이었다.

그 뒤로 문학이나 영화에서 수없이 변주되는 ‘그녀들’의 이야기를 보아왔다. 나는 언제나 조금쯤 심드렁한 자세였던 것 같다. 그녀들은 그녀들대로의 삶을 살고 있었을 뿐, 내 삶의 크고 작고 번잡하고 우울하고 기쁘고 괴로운 일상들과는 아무 상관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일 것이다.

영화 <허스>에는 세명의 ‘그녀들’이 나온다. 서로 같고 또 다른 세명의 그 여자들. 유사점이라면 직업이고, 다른 점이라면 나이다. 각각 20대, 30대, 40대의 ‘지나(들)’는 성(性)을 팔아 밥과 집과 술을 산다. 영화는 종종 습작생의 단편소설 같은 노골적인 감성을 노출한다. 20대의 지나가 어깨에 하트문신을 새기는 장면, 30대의 지나가 꽃병에 우유를 들이붓는 장면 등에서 드러나는 지나치게 직접적이고 친절한 묘사방식도 눈에 걸렸다. 매매춘 행위에 대한 어떤 가치판단도 유보함으로써 그 행위의 사회적 의미를 (부러) 외면하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의심이 들기도 했다.

그러나 여러 단점들에도 불구하고 <허스>는 묘하게 사람 마음의 가장 여린 부분을 건드린다. 순간적으로 찾아오는 저릿한 공감은, 내가 지나왔고 내가 지나갈 그 나이들에 대한 자의식에서 비롯되는 듯하다. 20대의 지나를 보면서는 화가 났다. 그 불안과 몽상의 시절들을 다시 겪지 않아도 되다니 얼마나 다행인가 싶었다. 40대의 지나를 보면서는 무서웠다. 인간이 어떤 바닥에 다다르면 저렇게 되는 걸까, 아직 닥쳐오지 않은 내일들이 부럽고도 공포스러웠다.

개인적으로는 무엇보다 30대 지나의 이야기에 대한 몰입도가 가장 높았다. 몸 뉠 곳 하나없는 20대 지나와는 사뭇 달라 보이는 30대 지나의 멀쩡한 아파트가 나를 아프게 했다. 나이가 든다는 건 지킬 게 많아진다는 뜻임이 또 한번 명확하게 다가왔으므로. 남루하고 고단한 현실과, 그럼에도 아직 신기루처럼 붙잡고 있는 꿈의 갈피 사이에서 옴짝달싹 못하는 30대 여성의 초상에 입맛이 썼다.

30대 지나는 새로운 사랑에 대한 기대와 환멸의 경계를 갈팡질팡 넘나든다. 로맨스가, 나를 지금의 내가 아니라 다른 차원의 존재로 만들어줄 마법의 기계가 아닐까 하는 콩알처럼 미미한 기대를 놓지 못한다. 알면서도 기대하고, 당연히 꺾이는 것. 그러고 보면 30대의 사랑은 참 어정쩡하다. 어떤 사랑도 왔다 가는 것이겠으나, 누구에게나 ‘간다’는 동사가 아니라 ‘온다’는 동사가 먼저 마음에 박히던 날이 있었을 것이다. 사랑이 올 때의 그 압도적인 설렘이, 사랑이 갈 때의 그 처연한 시간에 대한 예측을 가로막아 눈멀고 귀막히게 하는. 하지만 이제는 안다. 눈멀고 귀막힌 듯 막무가내로 시작된 감정도 언젠가는 서늘하게 등 돌리며 멀어져갈 수 있음을. 그리고 어느새 내가 ‘간다’라는 동사의, 그 어쩔 수 없는 체념의 어조를 담담히 수용하는 사람이 되었음을. 올 때의 선택이 나 자신의 것이었으니 도무지 무엇도 힐난할 수 없음을.

20대의 여자는 아이스크림을 허겁지겁 빨아먹고, 30대의 여자는 아이스크림이 줄줄 녹아내리는 줄도 모른 채 멍하니 앉아 있고, 40대의 여자는 아이스크림산에 기어이 홀로 기어오른다. 그녀는 오로라가 마침내 찾아와주었다고 감격하지만, 그 오로라는 타인의 눈에는 절대로 보이지 않을 것이다. 스트로베리 아이스크림처럼 달콤하고 차가운, 나만의 오로라는 온전히 나만의 생일 것이다. 혼자인 그녀는 여전히 불안하고 외롭지만, 그럼에도 완전해 보인다면 혼자이기 때문이리라.

‘외롭다는 것은 바닥에 누워 두눈의 음(音)을 듣는 일이다. 제 몸의 음악을 이해하는 데 걸리는 시간인 것이다. 그러므로 외로움이란 한 생을 이해하는 데 걸리는 사랑이다.’(김경주 <우주로 날아가는 방1>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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