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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릴러에 수혈된 청춘영화적 에너지 <디스터비아>

‘차세대의 톰 행크스’ 샤이어 라버프의 매력이 잘 살아 있는 스릴러

<디스터비아>를 성공적인 대중영화로 만든 것은 스릴러적 완성도가 아니다. 그 흔한 반전 하나없이 직선주로를 달리는 플롯은 스릴러로서 큰 매력이 없다. 보는 자와 보이는 자를 엮어가며 서스펜스를 직조하는 솜씨도 그리 훌륭하다고 볼 수 없다. 범인과 일전을 벌이는 장면은 구성상 클라이맥스에 해당하는데도 긴장감이 떨어진다. 마지막 1대1 대결은 주인공 못지않게 악당의 동선을 적절히 스케치해야 장르적 재미가 생기는데, 이 영화는 이를 제대로 수행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10여년 전, 만듦새가 결코 좋지 않았는데도 크게 히트하며 숱한 아류작을 낳았던 공포영화 <나는 네가 지난 여름에 한 일을 알고 있다>가 성공했던 이유. <디스터비아>를 흥미롭게 만드는 것은 스릴러에 수혈된 청춘영화적 에너지다.

교통사고로 아버지를 잃고 충격을 받은 고교생 케일(샤이어 라버프)은 교사를 폭행해 90일간 가택 연금된다. 전자 발찌가 채워져 30m 밖으론 나갈 수 없게 된 신세. 케일은 망원경을 들고 이웃들을 훔쳐보는 재미로 소일한다. 절친한 친구 로니(아론 유)와 함께 케일이 즐겨 엿보는 것은 이웃 소녀 애슐리(사라 로머)가 수영하는 장면. 곧 애슐리와 친해지게 된 케일은 엿보기 도중 이웃의 살인사건을 목격하게 된다.

D. J. 카루소 감독은 <디스터비아>에서 로맨스를 스릴러의 양념 정도로만 활용하진 않는다. 방 안에서의 데이트를 끝낸 뒤, 30m를 표시하기 위해 마당에 둘러쳐놓은 간이 경계선 앞까지의 짧은 거리를 케일이 바래다주는 장면은 짙푸른 바닷가에서 그려지는 풍경이 아님에도 충분히 낭만적이다. 애슐리에게 빠져든 케일이 얼마나 주도면밀하게 그녀를 보아왔는지 고백하는 부분은 고급 레스토랑에서 특별한 이벤트를 동반해 펼쳐지는 광경이 아님에도 더없이 애틋하다. 장난기가 절반인 케일과 로니의 우정도 고교생 특유의 건강함으로 생생하다.

<디스터비아>는 십대들의 생활 자체를 영화 속으로 깊숙하게 끌어들인다. 아이포드와 휴대폰, 캠코더와 인터넷을 흡사 비중 높은 조연배우처럼 활용하는 이 영화는 냉혹한 범인에 맞서는 십대들의 무기가 몸의 일부처럼 자유로운 테크놀로지임을 실감나게 보여준다. 애슐리의 휴대폰 벨소리가 베토벤의 교향곡 5번 <운명>임에 비해, 로니가 전화를 걸어올 때마다 울리는 케일의 휴대폰 벨소리는 노골적 가사를 지닌 투 라이브 크루의 노래인 데서 짐작할 수 있듯, 취향과 인물을 매치시키는 방식들도 유쾌하다.

그리고 샤이어 라버프. 그는 <디스터비아>가 지닌 매력의 절반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에게 쏟아지는 ‘차세대의 톰 행크스’라는 찬사가 너무 성급하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정말 그럴지도 모르겠다는 느낌을 동시에 갖게 할 정도로 라버프는 뛰어난 재능을 보여준다. 이 영화와 <트랜스포머> 출연료를 합쳐도 100만달러가 되지 않았던 그는 향후 급격히 상승할 개런티보다 <인디아나 존스4>를 비롯한 차기작들에서의 성장이 훨씬 더 궁금한 배우다.

상당한 비중을 지닌 캐릭터를 인상적으로 연기한 한국계 배우 아론 유의 모습을 지켜보는 것은 한국 관객에게 작은 보너스 같은 재미.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인종적인 맥락이 최대한 제거된 채 인물 자체의 색깔과 성격만으로 등장하는 한국계 캐릭터를 주류 할리우드영화에서 발견하는 것은 반가운 일이다.

히치콕의 대표작 <이창>의 설정을 느슨하게 끌어다 쓴 이 영화에서 주인공이 엿보는 방식은 맨해튼의 고층 아파트에서 벌어지는 <이창>보다는 교외의 주택단지에서 펼쳐지는 <왓 라이즈 비니스>에 더 가깝다. <이창>처럼 갖가지 시점숏을 통해 영화라는 매체의 속성을 탐구하거나, <욕망>(Blow Up)처럼 자신이 찍은 영상에 담긴 내용을 살펴보는 과정에서 인식에 대한 형이상학적 주제를 파고드는 깊은 맛은 없지만, 적어도 <디스터비아>가 훔쳐보기라는 모티브를 영화적으로 낭비한 작품이 아니라는 것만큼은 분명하다. 엿보이는 자가 시선의 방향을 거스르고 공간적 거리를 뛰어넘어 엿보는 자를 찾아오는 순간의 원초적인 섬뜩함은 이 영화에도 살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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