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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리하고 간단한 즉석요리 <사랑의 레시피>
최하나 2007-08-29

미각을 만족시키기보다는 적당히 배를 채우기에 적합한 레시피

뉴욕 번화가 레스토랑의 잘나가는 주방장 케이트(캐서린 제타 존스)에게 일은 목적어가 아닌 주어다. 빈틈없이 일과 삶을 포개고 살아가는 그녀는 병사를 지휘하듯 주방을 휘두르며, 실낱의 과실도 용납하지 않는 완벽주의로 맹위를 떨친다. 그러던 그녀에게 일상을 뒤엎는 두 가지 사건이 터지는데, 하나는 언니의 사고사로 조카 조이(애비게일 브레슬린)를 도맡게 된 것이요, 다른 하나는 자유분방한 낭만주의자 닉(아론 에크하트)이 신임 요리사로 부임하게 된 것이다. 이제 그녀는 마음을 꽁꽁 닫아버린 조카와 서투른 관계를 맺어가는 동시에 주방의 질서를 위협하는 닉과도 신경전을 펼쳐야 한다.

<사랑의 레시피>는 함부르크를 배경으로 한 2001년작 독일영화 <모스틀리 마사>를 리메이크한 작품으로, <샤인>으로 주목받은 스콧 힉스 감독이 <하트 인 아틀란티스> 이후 6년 만에 내놓은 작품이다. 원작에서 “요리를 통해 상실과 치유, 세계관의 충돌 등 삶의 다양한 문제들을 이야기할 수 있는 가능성을 발견했다”는 감독의 변처럼 <사랑의 레시피>는 음식으로 인생을 은유하고자 한다. 케이트의 과도한 완벽주의는 아침 식탁에 놓인 위압적인 생선 구이로, 닉의 헐렁한 낙천성은 투박하지만 정감어린 파스타와 피자를 통해 간접적으로 표현된다. 조이의 마음을 여는 것이 우려 섞인 다독임이 아닌 위장을 자극하는 스파게티라는 설정 역시, 그와 같은 맥락이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사랑의 레시피>는 이야기와 음식의 흥미로운 화학작용을 보여주는 대신, 음식을 소도구 정도로 사용한 전형적인 로맨틱코미디에 머무른다. 툭탁거리던 케이트와 닉은 정답란을 채우듯 사랑에 빠지고, 조이는 두 ‘어른’들의 사랑을 이어주는 익숙한 가교 역할을 한다. 하얀 주방장 옷을 입은 캐서린 제타 존스는 아름답지만, 겉도는 캐릭터는 감정이입을 끌어내기에 역부족이고, 안경을 벗은 <미스 리틀 선샤인>의 히로인 애비게일 브레슬린의 탁월한 연기도 상투성에 가려 제 몫을 다하지 못한다. 가장 큰 아쉬움은 주방을 활동 무대로 삼은 카메라가 그 세계의 매혹을 충분히 음미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60여개의 레스토랑을 참조해 주방을 제작하고, 일류 요리사를 자문으로 초빙했다는 프로덕션 노트가 무색하게 느껴질 만큼, 영화는 음식의 풍미를 시각화하거나 요리의 과정을 보여주는 데 인색하다. 영화를 특별하게 조리하는 레시피는 수차례 반복되어온 공식들을 무난하게 조합하는 것 이상일 텐데, <사랑의 레시피>의 레시피는 편리하고 간단한 즉석요리 이상의 맛을 내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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