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Skip to contents]
HOME > Movie > 무비가이드 > 씨네21 리뷰
‘비행소년’들의 성장담 <라파예트>
강병진 2007-08-29

디지털 시대에 보는 아날로그 전투기들의 공중전

1차 세계대전 당시, 미국 소년들에게 대서양 너머는 모험의 땅이었다. 그곳에는 생사를 넘나드는 스릴은 물론이고, 영웅이 될 수 있는 기회가 넘쳐났다. 뿐만 아니라 하늘을 가로지르는 비행기도 가득했다. 동네 극장에서 조악한 피아노 연주곡을 배경으로 상영되던 흑백필름은 전쟁의 참혹함 대신 낭만을 일깨웠다. 미국 정부는 참전을 결정하지 않았지만, 수많은 미국 청년들이 연합군에 지원한 데에는 그러한 매혹이 있었을 것이다. 빚 때문에 가업으로 내려오던 목장을 잃고 주먹질을 일삼던 롤링스(제임스 프랭코)에게도 하늘을 나는 전투기의 모습은 매혹의 대상이다. 더 넓은 세상으로 나가겠다는 의지와 함께 현실을 도피하고 싶던 롤링스는 프랑스로 건너가 비행전투단에 들어가고 그곳에서 새로운 모험에 안달하고 있는 또 다른 7명의 미국 소년들을 만난다.

미국 최초의 전투 비행단의 실화를 다룬 <라파예트>는 이 ‘비행소년’들의 성장담이다. 영화는 이들이 한명의 어른이자 전쟁의 영웅으로 자라는 과정을 <탑건>과 <사관과 신사>에서 본 듯한 청춘드라마의 색깔로 묘사한다. 일촉즉발의 상황에서도 혈기왕성한 소년들이 모인 곳에는 치기어린 다툼과 화해가 비일비재하고, 첫눈에 반하는 사랑이 꽃피게 마련이다. 롤링스가 자신의 전투기에 사랑하는 여인을 태우고 하늘을 나는 장면은 영화이기 때문에 용인되는 소년들의 로망일 것이다. 그러나 한편으로 그들은 동료가 죽어가는 걸 지켜봐야 하고, 살아남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이 술을 마시고 노래를 부르며 그들의 얼굴을 잊어야 하는 아픔도 지니고 있다. 하지만 이들의 성장담은 삼엽기들이 펼치는 공중전에 비하면 매력이 덜한 편이다. <라파예트>가 보여주는 공중전은 오히려 육박전에 가깝다. 디지털 시뮬레이션이 아닌 나무로 짠 비행기 모형으로 훈련을 마친 이들은 하늘에서도 무전기가 아닌 함성으로 전술을 운용하고, 적의 눈을 바라보며 싸운다. 총알이 걸린 기관총은 망치로 때려가며 달래고, 비행 도중 연료가 부족하면 직접 날개에 매달려 기름을 붓는다. 아군과 적군이 얼굴을 맞대며 싸우는 가운데 생겨나는 교전예절도 흥미롭다. 총알이 떨어지거나 지상으로 불시착한 적을 공격하는 것은 비신사적인 행동으로 묘사되는 것은 아무런 감정없이 버튼 하나로 전쟁이 시작되는 현대전의 시점에서 보기에도 신선한 부분이다. 전쟁의 비인간성과 잔인함 대신 낭만성에 주목한 <라파예트>는 역사공부의 교재보다는 밀리터리 마니아의 머스트 해브 아이템으로 더욱 적합한 영화다.

관련영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