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Skip to contents]
HOME > Movie > 무비가이드 > 씨네21 리뷰
리얼리즘 뮤지컬영화 <원스>
오정연 2007-09-19

꿈과 희망은 물론 어른스러운 현실감까지 함께 제공하는, 리얼리즘 뮤지컬영화

몇 시간에 걸친 수다보다 기억에 남는 것은, 심금을 울리는 음악에 5분 동안 함께 귀기울였던 순간이 아닐까. 모든 예술을 통틀어 음악을 가장 위대한 예술로 꼽는 때는 그만한 이유가 있을 것이다. 블록버스터의 땅 미국에서, 최강의 블록버스터 시즌을 나름의 방식으로 돌파한 인디영화 <원스>는 음악의 힘을 겸허히 인정하고, 이를 영화적으로 표현할 최선의 방법을 모색했다. 평단과 관객으로부터 고른 호응을 얻은 <원스>의 리뷰 중 상당수는 “이런 영화에 대한 첨언은 일종의 배신”이라며 영화 자체에 대한 말을 아낀다. 절대적으로 맞는 말이다. 사랑스러운 영화와 사랑스러운 음악을 있는 그대로 느끼고 싶다면 일단 극장으로 향할 것이요, <원스>가 지닌 매력의 배경이 궁금하다면 114쪽 기획기사를 참고할 일이다.

나이를 먹을 만큼 먹고도 꿈을 잊지 못해 날마다 더블린 번화가에서 거리의 악사를 자처하는 남자(글렌 한사드)는 자신을 버리고 런던으로 떠나간 옛 여자를 잊지 못한다. 체코에서 온 소녀(마르게타 이르글로바)는 늘 해사한 얼굴로 행인들에게 꽃이며 잡지를 권하지만, 어린 딸과 어머니를 부양하는 그녀에게도 아픔은 있다. 고향에서는 피아니스트였지만 현재는 맘좋은 피아노숍 주인의 허락으로 하루에 한 시간씩 연주하는 것에 만족해야 하는 소녀는 자학과 자조를 모른다. 무기력한 일상을 떨치지 못하던 남자는 소녀와 음악적 영감을 주고받으며 데모 음반을 녹음하기에 이른다. 일종의 뮤지컬영화인 <원스>는 음악을 매개로 한 단순한 이야기를 사이로, 관객을 무장해제시키는 솔직담백한 노래를 배치한다.

일상 속 반짝이는 교감을 포착한 영화 <원스>는 또한 소름끼치는 성장담이다. 늦자란 남자가 성숙한 여자를 통해 어려운 한 걸음을 내디디는, 이른바 <졸업>의 이야기. 물론 남자의 성마른 제안을 단호히 거절하고, 잘못된 욕망을 바로잡아주는 소녀는 <졸업>의 그녀들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총명하다. 카니 감독의 말처럼, “낯선 여자에게 연애 상담을 받고 제자리를 찾는 남자들의 환상”을 충족시키는 캐릭터랄까. 그러나 영화의 마지막, 있어야 할 곳으로 돌아가는 두 사람의 모습은 다소 위험한 판타지를 건강하게 현실에 안착시킨다. 자신이 더 많은 것을 받았음을 인정하고 이에 감사하는 남자가 그녀에게 전하는 진심어린 선물은 그가 진짜 성장을 이루었음을 증명한다. 런던과 더블린을 오가는 영화의 엔딩은 뮤지컬영화에서 쉽게 만날 수 없는 안정된 현실감과 충만한 환희를 동시에 안겨준다.

한편 <뉴욕 타임스> 리뷰는 <원스>를 “이주민, 문화의 교차이동”에 대한 이야기라고 썼다. 남자와 교감하는 것이 왜 하필 동유럽 이민자일까. 그러니까 이것은 라트비아와 보스니아에서 시작하여 체코와 폴란드까지 이어지는, 서유럽을 향한 현대 유럽의 이주의 역사에 대한 무의식적인 고찰인 셈이다. 더블린의 풍부한 다문화를 어릴 적부터 접했던 카니 감독은 이를 영화적으로 활용하는 능란함을 보인다. 영어는 물론 서유럽식의 쿨한 개인주의에 익숙지 못한 소녀는 종종 남자를 당황시키는 말과 행동을 서슴지 않고, 중요한 감정적 국면에서는 남자의 중요한 질문에 대한 소녀의 대답을 자막없는 체코어로 대신하여 영화의 결을 더하는 식이다. 언어를 뛰어넘는 이해를 가능케 하는 음악의 위대함을 부각시키는 데도 그만이다.

<원스>의 또 다른 관전 포인트는 대부분 비전문배우임이 분명한 단역 및 주변인의 모습이다. 둘의 첫 번째 합주를 향한 피아노숍 주인의 무심하되 미소 띤 표정, 음반 녹음을 위한 돈을 마련하고자 찾아간 은행 대출계 직원의 엉뚱한 반응, 스튜디오에 도착한 이들을 맞이하는 뚱한 태도의 프로듀서가 이들의 음악적 열정과 재능을 알아보고 점차 변해가는 과정이 기분좋은 웃음을 자아낸다. 음악에 이어 영화까지, 불안정한 꿈에 모든 걸 걸었고, 낯모르는 타인의 사소한 반응 하나하나에 희비가 교차했던 감독 자신의 경험이 곳곳에 스며든 결과일 것이다.

관련영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