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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남은 건 ‘사랑뿐’ <올 어바웃 러브>

기업 이기주의가 만든 빙하시대에 유일한 희망은 숭고한 사랑뿐

한여름에도 온 지구가 눈으로 덮여서 착륙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여객기 승객은 그 안에서 ‘늙어 죽어야’ 한다. 또 아프리카 우간다는 ‘무중력병’으로 사람들이 천사처럼 하늘로 날아가버리는 ‘재해’를 겪고 있다. 토마스 빈터베르그가 각본을 쓰고 감독한 <올 어바웃 러브>는 이렇게 초현실주의적인 위트를 섞어서 문명을 비판한다. 그리고 그 맞은편에는 로미오와 줄리엣을 연상시키는 어느 부부의 애틋하고 숭고한 사랑 이야기가 균형추 역할을 한다(여주인공 클레어 데인즈는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와 출연했던 <로미오와 줄리엣>에서 실제로 줄리엣 역을 맡았었다).

멀지 않은 미래 2021년. 세계는 이상 기후와 종말론적 징후들로 가득 차 있다. 폴란드에서 학자로 살고 있는 존(와킨 피닉스)은 뉴욕에서 세계적인 스케이팅 스타로 활약하는 아내 엘레나(클레어 데인즈)와 별거 중이다. 두 사람의 마음은 멀어지고 존은 이혼서류에 서명을 받기 위해 뉴욕공항에 도착한다. 환승시간에 잠시 서류를 처리하려던 당초 계획과는 달리 자의 반 타의 반 뉴욕에 더 머물게 되면서 존은 엘레나가 속한 회사의 기업주로부터 이상한 느낌을 받는다. 게다가 엘레나는 또 다른 자아의 환영을 보는 듯, 정신상태가 불안정하다. 그녀는 어느 날 신변의 위협을 느끼자 존에게 도움을 구하고 그녀를 돕는 사이에 식었던 사랑은 다시 불타오른다. 회사쪽의 점점 조여드는 음모와 위협 앞에서 둘의 운명은 시간이 갈수록 위태로워지고 그들을 돕고 있는 마이클 또한 의심스럽다.

영화 전반에 걸쳐 삽입된 SF, 판타지, 특히 스릴러 요소는 러닝타임 내내 관객이 스크린에서 눈을 못 떼게 만든다. 후반부에 이르면 관객은 호기심이나 놀라움보다는 물질적 세계가 허물어져가는 상실감과 이에 비례하여 묘하게 영혼이 맑아지는 기분을 느낄 것 같다. 남녀 이야기는 다소 신파적인 멜로로 보이기도 하지만 소설 <1984>의 커플이 그랬던 것처럼, 기계적인 세계 안에서 유일하게 남은 유연한 틈바구니를 강조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줄거리와 관객 사이의 지적 거리를 유지하기 위해 이 영화가 구사하는 독창적인 어법이 흥미롭다. 가령, 문명의 종말을 서사시로 읊는 존의 형(숀 팬)이 비행기를 타고 구름 위를 (사실은 줄거리 밖을) 선회한다는 설정이 그 예가 될 수 있다. 감독은 몸의 승천을 통해서 삶의 추락을 보여주고, 얼어붙어가는 신체를 통해 형이상학적 에너지를 분출시킨다. 기발한 풍자로 끝날 뻔한 비판 정신은 이렇게 자기 성찰적인 비극적 정서로 연착륙하고 있다.

<글라디에이터>의 와킨 피닉스, <터미네이터3>의 클레어 데인즈, <아이 엠 샘>의 숀 펜 등 매력적인 세명의 스타들은 잘 알려진 이름에 걸맞게 관객을 몰입시킨다. 1천만달러에 달하는 제작비를 조달하기 위해 유럽의 여러 영화사가 연합했으며 (독일의 시네이터필름과 영국의 필름4, 이탈리아의 키필름, 덴마크 님부스필름) 코펜하겐, 뉴욕, 케냐, 파리, 베니스를 횡단하며 촬영이 이루어졌다. 이 점은 빈터베르그 감독이 라스 폰 트리에 감독과 더불어 ‘도그마 95’선언의 주요 멤버라는 사실을 기억하면 다소 의외라 할 수 있다. 선언의 핵심은 테크놀로지에 갈수록 의존하는 영화 제작 흐름에 항의하며 영화의 순수성을 되찾자는 것이었고 그 정신은 빈터베르크의 첫 단독 연출작품인 <셀러브레이션>(Festen, 1998)에서 유감없이 발휘됐었다. 핸드헬드 카메라로 거칠게 찍는 영화 형식의 파격과 부패한 가족주의에 대한 급진적 고발이 <셀러브레이션>의 특징이었다면 <올 어바웃 러브>는 전작의 내용은 계승하되 형식에서는 대중의 취향으로 돌아선 셈이다.

그럼에도 스릴러나 멜로라는 측면에서 이 영화를 웰 메이드라고 부르기는 힘들어 보인다. 인과관계의 밀도가 떨어지고 주인공들 내면의 묘사가 부족하기 때문이다. 전체적인 무게중심은 장르의 규칙보다는 작가(감독)의 해석적이고 정신적인 이미지에 놓여 있다. 그 강조점은 제목이 잘 요약하고 있듯이 “망가진 세상에 남은 것은 ‘사랑뿐’이며 따라서 남은 게 ‘사랑뿐’일 정도로 세상은 망가져가고 있다”는 명제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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