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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결 같은 스타일의 향연 <M>
주성철 2007-10-24

이명세 감독 표현주의의 극점, 낯설지만 꿈결 같은 스타일의 향연

<M>은 마치 이명세 감독이 그려내려는 dreaM과 Magic의 철자 M의 교집합이 만들어낸 것 같은 제목이다. 누구나 자신이 꾸었던 꿈을 정확하게 기억해내기란 힘든 법이고, 그 꿈이란 초현실적인 마술과도 같은 것이기에 그 둘은 마치 서로를 비추는 거울과도 같다. M이라는 철자가 보여주는 정확한 좌우대칭의 형태도 이와 묘하게 들어맞는다. 이명세 감독 스스로도 “영화를 보면서 커다란 혼돈에 빠지는 경험을 할 것”이라며 “그 혼돈에서 깨어났을 때 정말 좋은 꿈을 꿨다는 생각이 들었으면 좋겠다”고 말하는 것을 보면 <M>은 이명세 감독이 카메라로 써나간 ‘꿈의 해석’쯤 된다 할 것이다. 그것은 또한 최근 한국영화의 전반적인 흐름과 비평 담론 속에서 박광수, 이창동 감독으로 대표되는 사실주의 경향의 대세를 향한 당대 최고의 스타일리스트 이명세 감독의 고집스러운 반격이라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또 하나 주목할 것은 그리 비중이 크지 않은 적이 있었던(?) 김보연 정도를 제외하면 강동원은 안성기, 박중훈, 송영창, 김혜수에 이어 이명세 감독 영화에 두번 이상 주연으로 등장한 배우가 됐다. 아마도 지나간 세월을 거스르려는 감독 그 자신의 회춘의 페르소나가 젊은 배우의 표정에 있다고 하면 어떨까.

젊은 천재 베스트셀러 작가 한민우(강동원)는 꽤 오랫동안 단 한자도 써나가지 못하는 창작의 고통에 시달리고 있다. 부유하고 매력적인 약혼녀 은혜(공효진)와의 결혼을 앞두고 있어 언뜻 남부러울 것 없는 인생처럼 보이지만 그렇게 그는 늘 자기 자신과의 싸움을 거듭하고 있다. 더불어 그는 언제부턴가 혼자 있어도 누군가와 계속 함께 있는 것 같다는 느낌을 떨칠 수가 없다. 그러던 어느 날, 그는 마치 무언가에 홀린 듯 한 허름한 골목길에 있는 루팡 바의 문을 열게 된다. 그곳에서 그는 10여년 전 헤어진 첫사랑이자 그를 쫓던 시선의 주인공인 미미(이연희)를 만난다. 그런 민우의 최근 행동에 불안해하던 은혜는 혹시 그가 바람을 피우는 것은 아닐까 의심해 ‘미미가 누구냐?’고 묻지만 민우는 새로 시작한 소설이라고만 말한다. 그렇게 민우는 도무지 매듭을 풀 수 없는 소설의 실마리를 찾기 위해, 완전히 잊고 지내던 옛사랑의 흔적을 더듬기 위해 방황을 거듭한다.

민우가 겪는 혼돈은 서로 엇갈리는 기억을 토로하는 <라쇼몽>(1950)의 한 장면일 수도 있고, 똑같은 상황이 서로 다르게 묘사되는 <오! 수정>(2000)의 변주를 떠올리게도 한다. 그것은 또한 <롤라 런>(1998) 혹은 <리컨스트럭션>(2003)에서 목격했던 시간 되돌리기의 마술을 보는 것 같기도 하다. 더불어 <형사 Duelist>가 <인정사정 볼 것 없다>(1999)로부터 이어지는 운동 이미지에 대한 고찰이었다면, <M>은 데뷔작 <나의 사랑 나의 신부>(1990)나 <첫사랑>(1993)의 무드를 떠올리게 하는 시간여행 혹은 드문드문 코믹함이 묻어나는 한편의 순정만화를 보는 것 같다. <나의 사랑 나의 신부>의 영민(박중훈)도 언제나 성공한 작가를 꿈꾸는 남자였고, <M>에서 민우가 겪는 아련한 혼란은 마치 <첫사랑>의 담배연기처럼 피어오른다. 어쨌건 <M>은 그들 모두와 분명 다르다.

마치 이전에 없었던 영화를 만들겠다는 태도로 영화 본연의 ‘언어’를 탐색하는 이명세 감독의 실험은 <M>에서도 여전하다. 선풍기를 이용해 인물들의 음성을 흩뜨리고, 겉과 다른 자신의 속마음을 드러내는 장면도 편집하지 않고 한 테이크로 처리하는 장면은 꽤 신선하다. 그렇게 거의 모든 장면들이 꿈결처럼 온갖 몽환적인 테크닉으로 가득한 <M>은 <형사 Duelist>보다 오히려 그 스타일에 대한 실험과 수사가 더 강하다. 노천카페가 있는 거리까지 세트로 완성한 이명세 감독은 세밀한 빛 한 줄기까지 직접 관장하려는 태도로 민우의 꿈속에 들어간다. 여느 감독들이 말하는 ‘현장에서의 불확실성’이 영화에 반영되는 일이란 조금도 없을 것 같다. 그렇게 이명세 감독은 마치 영화에서 더이상 한줄도 써나가지 못하는 민우가 된 것처럼, 매 장면 고독한 자신과의 싸움을 벌이고 있는 것 같다. 그 과도한 치장이 종종 생경하게 다가오기도 하지만, 지금의 한국영화가 고민해봐야 할 지점임은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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