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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 캐릭터들의 왜곡 <색즉시공 시즌2>
박혜명 2007-12-12

‘착한’ 남자가 상처입은 퀸카를 차지한다

은식(임창정)의 하루는 여전하다. 법대 고시생이라는 이름 아래 불철주야 파고드는 건 법전이 아니라 성욕의 해결법. 차력동아리 회장 성국(최성국)과 그의 후배들이 다 같은 무리다. 이들은 성욕에 과도하게 집착하고 그것을 지저분하게 왜곡해서 표현한다. 모두가 이들에게 눈살을 찌푸리고, 그중에서도 제일 순진한 은식은 종종 놀림감이 되지만 그의 곁엔 대학 내 최고 퀸카 경아(송지효)가 있다. 수영선수인 경아는 미모에 실력, 성격, 집안 조건까지 모두 갖춘 부족할 것 없는 아가씨. 병원에서 우연히 만나 3년째 진지한 연애에 돌입한 두 사람 사이에 성국의 후배 기주(이상윤)가 끼어든다. 법대 졸업 뒤 현직 검사가 된 기주는 경아 엄마(김청)의 환심을 사고, 경아-은식의 관계는 위태로워진다.

<색즉시공 시즌2>는 5년 전 전국관객 400만여명을 끌어모은 <색즉시공>(2002)의 속편이다. 이미 다 짜인 동판에 고유명사 몇개만 바꿔 그대로 인쇄한 책처럼 이 영화는 이야기 전개법과 이른바 ‘섹스코미디’를 지향하는 방식, 조연 캐릭터들의 기능과 순정적 사랑으로 결론을 맺는 스타일까지 전편과 거의 모든 면에서 일치한다. 모자란 남자 은식이 퀸카를 여자친구로 삼을 수 있는 이유조차 변하지 않았다. 은식의 퀸카 여자친구‘들’은 이기적이고 개념없는 남자들에게 성적 피해를 입은 여성들이다. 사회가 ‘수치’로 몰아가는 그녀들의 상처를 감싸준, ‘알고 보니 정말 착한’ 남자라서 가능했던 것이다.

타인의 상처를 감싸는 태도 자체는 아름답지만 그 상처를 어떻게 다룰 것이냐에 있어 이 영화는 용서받기 힘든 경솔함을 전편으로부터 답습한다. 낙태나 강간으로 피칠갑된 여성의 이미지를 한 남자의 순정을 위해 끌어오는 태도가 그것이다. 애인 성국을 수영부 조교 영채(이화선)로부터 지키려는 유미(유채영)의 과장된 무식함, 근사한 남자 옆에서 설레발치는 경주(신이)도 모두 같은 태도로 만들어진 불쾌의 요소다. 마네킹을 상대로 하던 자위가 동상을 데리고 하는 것으로 바뀐 건 남자들끼리의 농담으로 그냥 흘려버릴 수 있다. <색즉시공> 시리즈가 이런 식으로 이어지지 않길 바라는 이유는 과장된 성 농담과 화장실 유머에 질려서가 아니라 그런 걸 젊은 테스토스테론의 권리로 알고 즐기는 남자들 세계에 포함된 여성 캐릭터들의 왜곡을 인내할 수 없는 점이 더 크다. ‘심각하게 따지지 말고 그냥 웃고 즐기자’는 가벼운 의도로 시작했다면 그 의도대로 웃고 즐길 이야기만 있으면 된다. 동참한 제3자들의 마음 역시 가벼워지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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