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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통 튀는 로맨틱코미디 <기다리다 미쳐>
오정연 2007-12-26

‘그날’을 기다리다 미치는 방법도 결말도, 세대마다 사람마다 가지가지

지금도 누군가에게는 미치고 팔짝 뛸 노릇이겠지만, 돌이켜보면 뭐 그럴 게 있었나 싶다. 길어야 2년 남짓, 서너달에 한번씩은 만날 수 있고, 이 땅의 모든 젊음이 거치는 통과의례인데, 세상없는 이별처럼 서러워하고, 다시는 못 볼 듯 애달아했으니 말이다. 그런데도 막상 ‘닥치면’ 예외가 없다는 게 문제다. “세상에서 가장 꼬이기 쉬운 사람이 군대간 남자. 다음은 애인 군대 보낸 여자”라는 영화 속 대사는 식상하지만 무시못할 진리다. 군대를 사이에 두고 이별하고 어른이 되어가는, 이 땅의 피끓는 청춘이 한번쯤 겪었을 법한 남녀상열지사에 새삼스레 관심을 기울인 영화 <기다리다 미쳐>의 미덕은, 그처럼 한치의 오차도 허용치 않는 명명백백함을 차근차근 따져보는 성실함에 있다. 이를 위해 택한 방식은 정밀묘사가 아닌 점묘법이다. 유행을 반영하듯 연상연하 커플(손태영, 장근석)을 등장시켜 이들의 현실적인 오해를 살펴보고 홍대 앞 인디밴드의 군생활을 짝사랑 커플(장희진, 데니안)을 통해 제시하며, 한결 ‘쿨’해진 캠퍼스 커플(유인영, 김산호)은 어쨌거나 성장하며, 막 나가는 부산 커플(한여름, 우승민)의 못 말리는 에피소드는 얼마간의 살벌한 현실을 암시한다. 군대를 사이에 둔 대응방식도, 새로운 사랑을 대하는 태도도, 이별을 예감하는 마음도 제각각이지만 공통점은 있다. 시대가 변한 만큼 예외는 없어도 의미심장한 변화가 있을 거라는 기대, 그리고 한없이 늘어지는 멜로드라마보다는 통통 튀는 로맨틱코미디로 21세기 관객을 만나겠다는 제작진의 포석이다.

심야 라디오 프로그램 속 애청자들의 연애담이 언제 들어도 흥미진진하다면, ‘그 시절’을 앞두었거나 지나온 이들 모두가 각자의 아련함으로 즐길 수 있는 <기다리다 미쳐>는 나쁘지 않은 선택이다. 해결책도 없는 뻔한 감정 싸움을 유치하게 느끼는 당신이라면, 군대를 둘러싼 세대별 상수와 변수를 찾아보는 쪽을 권한다. 훈련소와 건빵과 면회와 휴가와 외박은 여전하고, 애교만점의 선물상자나 분식집에서 급조한 도시락, 남자친구 군대보낸 이들이 서로의 애환을 달래는 이른바 ‘곰신까페’, 음침한 여관방에서 분위기를 깨면서까지 콘돔을 챙기는 면모는 변화의 조짐이다. 무엇보다도 대부분의 남녀에게 안 좋은 기억으로 남아 있는 상황을 기를 쓰고 발랄하게 묘사하기 위해 온갖 음담패설과 찌질한 에피소드를 동원하는 무리수를 두지 않는다. 한국형 로맨틱코미디 대부분에 명시되어야 할 경고문이 필요치 않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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