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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냉정과 열정 사이] 그대는 참으로 부지런한 미스신

용의주도할 필요 없어 보이는 한예슬의 고군분투가 비현실적인 <용의주도 미스신>

<용의주도 미스신>의 한예슬은 더없이 예쁘고 사랑스럽다. 익히 알려진 대로 조막만한 얼굴에 오묘하게 자리한 이목구비들이 너무 인형처럼 예쁜 나머지 지금까지 어딘가 목에 생선가시처럼 꺼림칙하게 걸리는 느낌이 아주 약간의 약점이었다면 <환상의 커플>의 나상실이라는 자신에게 꼭 맞는 옷을 통해 그것까지도 말끔하게 없애버린 그녀는 그야말로 보는 사람을 사뿐히 무장해제시킨다. 아름다운 얼굴과 우열을 가릴 수 없는 미끈한 몸매와 사랑스러운 애교까지, 누가 그녀를 사랑하지 않을 수 있단 말인가. 그러나 한예슬이 사랑스러우면 사랑스러울수록, 신미수의 고뇌는 관객이 이해할 수 없는 저 멀리로 날아간다.

이것은 너무 예쁜 사람이 보통 여자의 고통을 연기하려고 할 때 아주 흔히 부딪히게 되는 거부감이다. 그래서 이러한 종류의 영화는, 될 수 있는 한 여주인공을 천상에서 지상으로 끌어내려 인간의 냄새를 입히기 위해 몇 가지의 클리세를 사용한다. 뿔테안경에 캐주얼 의상을 입혀놓은 다음 평범하고 못생겼다고 억지로 거짓말하며 깎아내리기, 맨 얼굴처럼 예쁘게 보이는 투명 메이크업을 해놓은 다음 트레이닝복을 입히고 양푼을 하나 들려준 다음 그릇째 퍼먹게 하기, 깜찍한 눈을 떴다 감았다 당황해하며 구토를 참다 결국 뱃속의 것을 쏟아내게 하기 등이 그것들이다. 적어도 <용의주도 미스신>은 <엽기적인 그녀>에서 전지현이 했던 방식과 매우 흡사한 구토 클리셰는 이용할지언정 한예슬이라는 절세미인에게 뿔테를 씌운 다음 못났다고 거짓말을 하거나 양푼비빔밥을 와구와구 먹게 한 다음 친근감을 느끼게 하려는 식의 얄팍한 짓은 하지 않는다. 즉 요정처럼 아름다운 여주인공을 평범한 여성이라고 주장하는 정도로 촌스럽게 굴지는 않고, 일단 이 여성이 평균보다 무척 아름답고 매력적이라는 것을 인정하고 전면에 내세우는 정도의 양식은 있지만 딱, 그만큼이다. 바로 다음 순간 역시 영화는 현실감을 획득하지 못한다. 이렇게 아름답고 사랑스럽고 능력있는 여성이 원하는 남성을 획득하기 위해서 로맨틱코미디의 ‘코미디’ 부분을 감당하는 온갖 해프닝을 벌인다는 자체가 와닿지 않기 때문이다.

과연 그녀가 그렇게 ‘용의주도’할 필요가 있을까? 그녀는 그다지 용의주도하지 못한 여성이다. 일단 신미수가 주장하는 대로 여러 명의 남성 중에서 ‘골라 먹는’ 재미를 누리기 위해서는 자신의 주거지를 그들 중 누구에게도 정확하게 알리지 않는 것이 기본 중의 기본이다. 그래야 2인 이상의 남성이 자택 앞에서 마주치거나 극중 손호영이 그러했듯 동네방네 고성을 울리며 난처한 꼴을 보이는 등의 부작용을 방지할 수 있다. 게다가 그녀는 용의주도할 필요도 없는 여성이다. 극중에서 그녀가 말하는 대로 어머니에게 검사 사위를 보게 해주고 싶다면, 휴일마다 고기와 버너를 지고 암자에 있는 산에 올라가 언제 합격할지도 모르는 고시생 윤철을 위해 고기를 굽고 삼천배를 할 필요까지도 없다. 그 미모라면 결혼정보업체에 전화를 한통 돌리기만 하면 최소한 변호사 사위 정도는 곧장 어머니에게 보여드릴 수 있을 텐데, 왜 그녀는 하지 않아야 할 용의주도를 자처해서 고생을 하는 걸까. 그렇게 큰 회사에서 젊은 나이에 책임있는 역할을 맡을 만큼 올라가려면 보통 바쁘지 않고는 안 될 일인데 친구 웨딩 촬영 따라가랴, 산에 가서 고시생 뒷바라지하랴, 클럽에서 연하남이랑 놀랴, 재벌 후계자에게 잘 보이기 위해 성당에서 애들과 놀고 봉제인형 빨래하랴, 몸이 열이라도 부족할 만한 생활을 하고 있는 그녀를 보면 다정만 병인 게 아니라 부지런도 병이라서 너무 부지런한 나머지 그런 걸까, 분주한 게 취미고 고생이 낙이라서 그랬던 걸까?

그도 그럴 것이 신미수처럼 한예슬급의 얼굴과 몸매와 애교와 패션 센스를 가지런히 지니고 있는 20대 중·후반의 여성이, 그것도 외모만 사랑스러운 것이 아니라 젊은 나이에 실력을 인정받아 팀장직을 해내고 있는 여성이 그토록 간절하게 재력과 능력을 지닌 남성과의 결혼을 원하는데도 아직까지 해내지 못할 이유는 아무리 생각해도 알 수 없다. 물론 그녀는 아버지 없이 어머니와 단둘이 18평 정도의 주공아파트에서 살고 있기는 하지만 다이아몬드가 생선 싸는 검정 비닐로 포장한다고 해서 그 빛이 바래지 않듯 주공아파트에 담아놓아도 한예슬은 한예슬이다. 아름답고 사랑스러운 그녀 때문에 스크린을 바라보며 미소를 지으면 지을수록, 그런 그녀가 원하는 남자를 차지하지 못해 좌충우돌한다는 설정은 점점 공상과학영화처럼 보인다.

정작 원하는 남성을 차지하기 위해 용의주도해야 할 여성은 그녀보다 한참 못한, 도토리 키재기를 하면서 서글픈 돌림노래처럼 각광받지 못하는 소개팅 속을 미궁처럼 헤매는 아무렇지도 않고 예쁠 것도 없는 그런 여성들이 아닐까? 한없이 예쁜 사람들이 뿔테를 끼고 가냘픈 몸에 추리닝을 걸치고 가느다란 손목으로 짐짓 우악스럽게 양푼에 담긴 밥을 열렬하게 퍼올릴 동안, 그저 그런 여성들은 그냥 조용히 탄식하게 된다. 너네가 남자 굶고 있다는 걸 지금 우리보고 믿으라 이건데, 뭘 어쩌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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