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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토피아 디스토피아] 재미없는 진보
고경태 2008-01-11

어이없지만 즐거웠다. 그리하여 빅 히트를 쳤다. “아빠, 허경영 아이큐가 430이래.” “대통령에 당선되면 박근혜랑 결혼할 거래.” 우리 집 초등학생 꼬마들은 허경영을 지지했다. 집에 배달된 그의 선거 공보물을 꼬깃꼬깃 접어 학교에 들고 갔다. 친구들과 치열한 토론까지 했단다. 아마도 허경영은 대통령 선거사상 처음으로 초딩들의 정치적 관심을 촉발한 후보가 아닌가 싶다.

선거 뒤에도 ‘허경영 신드롬’은 계속됐다. “다음에도 출마할 것”이라는 발언이 신문에 소개됐고, 경제공화당 홍보 책임자의 사연이 잡지에 실리기도 했다. 화제는 꼬리에 꼬리를 물며 지면과 화면을 장식했다. 물론 진지한 접근은 아니다. 나름 재치있는 공약에 사람들은 폭소를 터뜨렸지만, 이상과 망상의 경계는 지을 줄 알았다. 극단적으로 실없는 공약을 농담처럼 즐겼을 뿐이다. 이건 허경영의 맹점이지만 최대 장점이다. 이기지 못했지만, 웃기기라도 했다. 이명박을 제외한 나머지 후보들은? 이기지도, 웃기지도 못했다.

허경영이 이번 대선에서 9만6756명(0.4%)의 경이적인(!) 표를 받은 것은 어쩌면 뜻밖의 일이 아니다. 그만큼 다른 후보들은 하품이 나올 만큼 따분하고 지루했다. 권영길 후보도 예외가 아니다.

선거 직전 민주노동당 지지자들은 “한국의 민주주의와 노동계급의 미래를 위해 기호 3번을 찍어달라”고 호소했다. 머리로는 동의했지만, 마음은 동하지 않았다. 민주노동당과 권영길 후보는 이번 대선 과정을 통해 유권자의 가슴을 울린 게 무엇인가. 헤아려보니, 별 기억이 없었다. 2002년 대선에서 사랑받은 “살림살이 좀 나아지셨습니까?” 같은 유행어조차 없었다. 촌철살인의 카피도, 인상적인 에피소드도 떠오르지 않는다. 유권자들에게 “장기 투자가치가 있는 투표를 선택해달라”고 읍소하려면, 적어도 먼저 투자가치를 보여줘야 하는 것 아닐까. 마음과 몸이 늙고 피곤해 보이는 진보, 기획력의 한계를 드러낸 진보처럼 보이기 딱 좋았다. 결국 “지겨운 카세트테이프를 10년 넘게 반복해서 틀어댄다”는 비판을 들어야 했다. 매력이 없었다.

경선 때부터 그랬다. 민주노동당 집회의 단골 사회자였던 한 방송인은 지난 가을, 당내 경선 동영상을 본 뒤 안타까움을 토로한 적이 있다. “지켜보는 사람들이 다 조는 것 같았다. 다들 얌전했고 정치적으로 올바른 말만 했다. 정책경선도 좋지만 심심하기 짝이 없었다. 후보들마다 섹스 스캔들이나 비리 의혹을 억지로 지어내 서로 흉보게 하고 싶을 정도였다. 도대체 재미가 없었다.”

옛날 옛적 제리 루빈이라는 사람이 있었다. 1960년대 후반, 버클리대에서 미국의 68운동을 주도했던 미국 SDS(민주사회학생연맹) 지도자였다. 그에 따르면, 혁명은 재미있어야 한다. 그는 “웃음은 우리의 정치적 깃발”이라는 멋있는 말도 남겼다. 당시 청년들은 베트남전과 인종차별, 권위주의와 기성 제도와 맞서며 거리에서 싸웠지만, 동시에 새로운 삶의 모습을 일상에서 실험하는 다양한 형태의 문화적 저항을 함께했다. 머리에 꽃을 인 히피들이 반전 시위대의 물결과 만났고, 성 혁명과 약물·록 음악이 생활에서 어울렸다. 그 내용은 “상상력이 권력을 인수한다”는 68운동의 구호에 잘 녹아 있다.

미국과 유럽을 흔든 68운동은 21세기 국제 진보운동사에 큰 획을 그은 사건이다. 비록 좌절의 아픔을 겪었지만, 각국의 청년들은 이 세계사적 경험을 통해 정신적인 키를 키웠다고 한다. 올해 2008년은 그 68운동이 40돌을 맞는 의미있는 해다. 국제 진보운동 바닥에서 국가대표를 자처하는 민주노동당에 68운동 40돌은 어떤 느낌으로 다가오는지 묻고 싶다. 68운동은 권력과 제도를 바꾸기 위한 정치투쟁이면서, 동시에 거대한 문화 기획이었다. 정치·경제적 싸움꾼의 이미지가 강렬한 민주노동당에도 그러한 문화기획자의 풍모가 아쉽다. 생활문화 부문에서 새로운 트렌드를 주도하며 삶의 양식을 바꾸게 하는 민주노동당을 보기는 힘든 것일까.

엄숙하고 진부한 진보는 싫다. 같은 말 자꾸 반복하면서 가르치고 주입하려는 진보도 싫다. 계급적 이해관계를 위한 핏대는 세우되, 각종 문화적 장치들과 유머감각으로 마음을 녹여주는 진보가 그립다. 아이디어 풍부하고 재기발랄한, 재미있는 진보를 만나고 싶다. 진보도, 못 살겠다 갈아보자! 안 그러면 다음엔 허경영에게 추월당하리라(이 글의 일부는 <68운동>(잉그리트 길혀-홀타이 지음/ 정대성 옮김/ 들녘코기토 펴냄)에서 인용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