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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력을 잃어버린 시간여행 <더 재킷>
최하나 2008-01-09

업무 과부하로 탄력을 잃어버린 시간여행

걸프전에서 머리에 총상을 입고 죽다 살아난 잭 스탁스(에이드리언 브로디)는 당시의 충격으로 기억상실증을 앓는다. 홀로 캐나다로 떠나는 길목에서 술 취한 여성과 어린 딸의 자동차를 고쳐준 뒤 한 남자의 차를 얻어탄 잭은 우연한 사고에 휘말리고, 실신한 뒤 기억을 잃는다. 깨어난 그는 경찰 살인 혐의를 뒤집어쓰고, 정신이상으로 판명돼 한 정신병원에 호송된다. 압박 재킷을 입힌 뒤 시체 보관함에 환자를 가두는 기이하고 폭력적인 치료법에 고통스러워하던 스탁스는 동료 환자 매켄지(대니얼 크레이그)를 통해 시체 보관함 속에서 시간여행이 가능함을 깨닫는다. 2007년으로 건너가 웨이트리스 재키(키라 나이틀리)와 사랑에 빠진 그는 그녀가 과거에 자신이 도와주었던 소녀라는 사실과 함께 자신의 죽음이 임박했음을 발견한다.

거미줄처럼 얽힌 <더 재킷>의 각본은 <일급살인>(1995)의 각본과 연출을 겸임했던 마크 로코가 10여년의 공백을 깨고 완성한 것으로, 스티븐 스필버그와 스티븐 소더버그가 직접 창립한 제작사 ‘섹션 에이트’를 통해 프로듀서로 나서면서 화제가 됐다. 연출은 화가 프란시스 베이컨의 생애를 조명한 <러브 이즈 더 데블>(1998)로 주목받았던 존 메이버리 감독에게로 돌아갔고, 그는 시간여행을 중심으로 한 <나비효과>풍의 기본 플롯에 전쟁의 상흔, 살인사건, 기억과 무의식의 문제 등 다양한 요소들을 중첩시켰다. 호화로운 라인업만큼이나 배우들의 연기에는 모자람이 없지만, 너무 많은 이야기를 전하고자 했던 과욕 탓인지 <더 재킷>은 중심을 잡지 못한 채 휘청댄다. 살인사건의 진실 밝히기에 초점을 맞추던 초반전은 어느새 정신병원의 비인간적 시술에 눈을 돌리고, 다시 죽음을 피하고자 하는 잭의 분투를 거쳤다가, 한 여성의 파괴된 삶을 구원하는 드라마로 방향을 옮긴다. 혼란스레 펼쳐지는 이야기 속에서 다수의 캐릭터들이 모호하게 스쳐 지나가고, 잭과 재키의 사랑은 납득할 틈을 주지 않은 채 기계적으로 펼쳐진다. 현란함과 음산함의 극단을 오가는 시각적 연출은 매끄러운 편이다. 환상, 현실, 기억을 뒤섞는 영상은 <해리 포터> 시리즈의 특수효과를 담당했던 개리 쿠퍼의 솜씨이고, 카메라가 돌아가지 않는 동안에도 실제 시체 보관함에 들어가 있었다는 에이드리언 브로디의 클로즈업은 그 자체만으로 섬뜩한 공포감을 전한다. 미국에서 개봉 첫주 272만달러의 저조한 수입을 기록하며 주말 박스오피스 10위에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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