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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와 자식간의 혈육지정 <무방비도시>
이영진 2008-01-09

‘리얼 혈육지정신파액션’

일본으로 소매치기 원정을 떠났다가 다시 국내로 들어온 백장미(손예진)는 삼성파를 조직하고 세를 규합한다. 뒷골목에서 실력을 인정받은 기계, 바람, 안테나를 모두 손에 넣은 백장미는 동대문과 명동 일대의 소매치기 세력들을 단숨에 제압하며 야심을 키운다. 서울을 모두 장악하려는 백장미는 출소한 지 얼마 안 된 전설적인 소매치기 강만옥(김해숙)까지 끌어들이려고 시도하지만, 강만옥은 새 삶을 살겠다며 백장미의 제안을 거부한다. 한편 광역수사대에서 조직범죄를 전담하고 있는 형사 조대영(김명민)은 상대파에 목숨을 위협받던 백장미를 구하게 되고, 얼마 뒤 연쇄 소매치기 사건 용의자를 추적하면서 백장미에게 빠져든다.

<무방비도시>는 “숨소리마저 거짓말”이라는 소매치기범들과 이들을 뒤쫓는 형사들의 대결 구도를 골조로 삼은 영화다. 조직폭력을 다룬 형사물은 지금까지 많이 쏟아져 나왔으나 소매치기를 다룬 영화는 없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각종 은어들과 3차례의 액션으로 버무린 전반부는 꽤 빠르고 또 볼 만하다. 도시 한가운데서 “사람들의 지갑이나 돈을 직접 터는 기술자”인 기계와 “다른 이들의 시선을 잡아끌어 기계를 돕는” 바람과 “망을 보다 들통날 위험에 처하면 칼 등을 이용해 상해를 입히는” 안테나가 한조를 이뤄 무방비 상태의 시민들을 유린하는 장면들은 두렵고 또 동시에 궁금증을 불러일으킨다.

눈요기에 걸맞은 영리한 트릭과 촘촘한 계산까지 곁들여졌다면 어땠을까. 전반부에 영화는 플래시백을 통해 조대영과 강만옥, 강만옥과 백장미가 얽혀든 과거사를 모조리 토해놓는다. 반면 조대영이 백장미의 유혹에 빠져드는, 실제 영화에서 가장 중요한 장면은 설명하지 않는다. 소매치기 엄마를 뒀다는 이유로 온갖 험한 수사를 마다지 않았고, 심지어 형사 일까지 그만두려고 했던 자존심 강한 조대영은 왜 백장미 앞에서 순순히 무장해제당하는가. 대결 구도의 한축을 포기하는 순간 영화는 기우뚱한다.

‘리얼소매치기범죄액션’이라는 카피는 그런 점에서 적절한 수식은 아니다. <무방비도시>가 애초 증명하고 싶었던 건 훔칠 수 없고, 끊을 수 없는 부모와 자식간의 혈육지정이다. <무방비도시>의 용서받고 싶은 부모와 결국엔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자식은 <해바라기>의 용서하는 부모와 결국엔 뉘우치고 흐느껴 우는 자식과 다르지 않다. 두 영화 모두 같은 제작사가 만든 영화인 탓도 있겠지만, <해바라기>의 다른 버전처럼 보인다. 쌍둥이파 보스로 나오는 1인2역의 김병옥을 비롯해 <해바라기>에 출연했던 배우들이 대거 출연한 것도 착시를 돕는다. <리베라 메> <바람의 파이터> 조감독을 거친 이상기 감독의 데뷔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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