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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으로 환생한 싱글들 <뜨거운 것이 좋아>
강병진 2008-01-16

<싱글즈>의 싱글들, 가족으로 환생하다

마흔, 스물일곱, 열여섯. 권칠인 감독의 전작인 <싱글즈>가 20대 후반의 과도기를 묘사한 것처럼 서로 다른 나이대의 그들 역시 과도기에 놓여 있다. 그들의 고민은 아마도 여성으로서의 일생동안 겪을 수 있는 모든 갈등일 것이다. 미영(이미숙)은 부를 축적한 세트디자이너인데다가 연하의 남자들과도 쿨한 연애를 즐기지만, 마흔이란 나이는 그녀에게 폐경을 선고한다. 스물일곱살의 시나리오작가 아미(김민희)는 “엔딩만 1년째 고치고 있는” 상황에서 능력없는 남자친구의 바람기에 상처받는다. 물론 좋은 조건에 진심까지 품은 승원(김성수)이 등장해 그녀를 위로하지만, 눈앞의 고속엘리베이터는 아미에게 현기증을 불러일으킨다. 그런가 하면 아미의 조카이자 미영의 딸인 강애(안소희)의 고민은 나이에 맞게 더욱 원초적이다. 3년이나 사귄 남자친구와의 야릇한 스킨십을 꿈꾸던 강애는 상담 역인 친구와의 충동적인 키스 때문에 성정체성의 혼란을 느낀다.

<뜨거운 것이 좋아>는 만화가 강모림의 <10, 20 그리고 30>을 원작으로 한 영화다. 하지만 <뜨거운 것이 좋아>에 짙은 존재감을 드러내는 작품은 원작이 아닌 <싱글즈>다. 캐릭터의 구성과 갈등이 해결되는 방식 등 영화는 <싱글즈>에서 크게 비껴가지 않는다. 뿐만 아니라 영화는 감독의 데뷔작인 <사랑하기 좋은 날>도 연상시킨다. 최민수가 연기했던 <사랑하기 좋은 날>의 형준이 겪던 증상처럼 아미 역시 ‘제멋대로’ 젓가락질을 한다. 하지만 형준이 젓가락질을 고치며 자신의 성장을 증명한 것과 달리 아미는 “젓가락질을 잘해야만 밥 잘 먹는 건 아니라는 것”을 깨닫는다. 감독은 “젓가락질을 고치는 것으로 할지, 안 고치는 것으로 할지” 고민했다고 하지만, 사실상 이 고민은 <싱글즈>에서 마무리되어 건너온 것이나 다름없을 것이다. “마흔살 때까지 변한 게 없으면 없는 대로 살면 된다”고 이야기한 <싱글즈>처럼 <뜨거운 것이 좋아> 또한 “그냥 원하는 대로 살면 된다”고 말한다. 하지만 5년이란 세월 때문인가. 누구나 알고 있는 것이라 공감할 수는 있어도, 이제는 정말 누구나 못하는 것인 터라 그들의 결론은 다소 딴 세상 이야기처럼 보인다. 오히려 <뜨거운 것이 좋아>의 장점은 에피소드의 배치, 현실감각과 판타지, 그리고 배우들의 연기에서 적절한 균형을 이룬다는 점일 것이다. 특히 “절대 엎어지지 않을 남자”에게 끌리면서도 이별에 슬퍼하는 전 애인의 울음을 다독이다 다시 잠자리에 들고 마는 아미는 김민희의 호연에 힘입어 또래의 희로애락을 공감하게 만든다. 제목만큼이나 화끈하지는 않지만, 그럼에도 <뜨거운 것이 좋아>는 상업영화로서의 적정온도를 유지하는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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