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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 타이틀] 흑인의 일상을 담은 사려 깊은 걸작
ibuti 2008-02-01

<양 도살자: 특별판> Killer of Sheep: Special Edition

1970년대 초·중반의 흑인 선정영화는 미국의 흑인에 대한 이미지를 규정하는 결과를 낳았고, 이후 ‘갱, 마약, 매춘, 폭력’은 흑인 문화를 설명하기 위해 빼놓을 수 없는 단어가 되었다. 이에 줄리 대시, 빌리 우드베리 등 일군의 흑인 영화인들은 흑인의 현실을 무시한 주류영화에 반기를 든다. 평론가 클라이드 테일러가 ‘LA의 반란’이라 불렀던 이들 세력의 힘은 크지 않았지만, 그들이 1980년대 흑인영화의 부흥에 끼친 영향을 무시할 수는 없다. 찰스 버넷의 <양 도살자>는 이 시기의 대표작이다. <양 도살자>를 보면서 놀라게 되는 사실은, 캘리포니아의 가난한 흑인들의 삶이 너무나 평범해서 뭔가 눈을 번뜩일 거리가 필요한 사람을 무색하게 만든다는 점이다. 물론 <태양의 계절>이나 <나싱 벗 어 맨> 같은, 품위 있는 흑인영화는 있었다. 그러나 <양 도살자> 이전에는 흑인의 진짜 일상과 문제를 흑인 자신의 눈으로 정직하게 다룬 작품이 없었다. 양을 도살하는 남자는 무기력과 피곤에 빠져 있고, 그의 아내는 충족되지 못한 욕구로 불만에 차 있으며, 주변인들은 푼돈을 위해 그리고 휴식을 위해 일을 벌인다. 그들과 함께 거리에서 노는 아이들을 포착하는 카메라는 흑인을 타자의 편견에서 벗어난 일상의 존재 그 자체로 바라본다. 그렇다고 <양 도살자>가 무미건조한 다큐멘터리류의 작품은 아니다. 이제 막 임신한 산모의 배와 양이 도살되는 현장을 이어붙인 <양 도살자>의 마지막은 보호받지 못한 순수를 은유한다. 그 순간의 초현실적인 아름다움은 조르주 프랑지의 <야수의 피>에 버금간다. 그리고 <양 도살자>는 바로 지금 더 유의미한, 사려 깊은 걸작이다. 21세기의 영화에서도 흑인들은 여전히 왜곡된 이미지로 그려지고 있기 때문이다. <양 도살자>가 30년 만에 다시 빛을 본 데는 복원과 배급을 맡은 UCLA의 필름아카이브와 마일스톤사의 공이 컸다. 제한된 관객과 만나며 전설로 회자되던 작품이 드디어 대중과 마주할 기회를 찾은 것이다. <양 도살자>는 2007년 4월에 복원 상영된 뒤 DVD로 나오면서 버넷의 몇 작품을 더해 작은 작품집의 외양을 갖췄다. 1969년부터 2007년까지 버넷이 만든 단편 중 4편 <몇몇 친구들>(22분), <>(14분), <비가 올 때>(13분), <원조와 침묵>(5분)과 제대로 상영되지 못했던 또 한편의 걸작 <형제의 결혼>의 오리지널 버전(118분)과 감독판(80분)을 수록했다. 형편없는 상태로 있던 16mm 원본으로부터 빛나는 모습으로 복원된 <양 도살자>에는 링컨센터와 뉴욕필름페스티벌의 프로그램 디렉터인 리처드 페냐와 감독의 음성해설이 지원된다. 또한 복원 상영에 앞서 가진 배우들의 재회를 짧은 영상(6분)에 담았다. 작품과 만듦새에서 2007년에 출시된 가장 중요한 DVD 중 하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