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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토피아 디스토피아] 스타 리그 예찬

김연아 선수 때문에 피겨를 배우는 소녀들이 늘어났다고 하지만 세계 최고가 될 수 있는 사람은 한명뿐이고, 나머지 선수들에게 우리는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다. 박태환, 김연아 그리고 비보이들을 기성세대가 아무리 찬양해도 그것은 엄연한 현실이다. 게다가 비보이들은 그다지 높은 소득을 올리지도 못한다는 사실이 보도되기도 했다. 최근 흥행하는 영화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을 통해서도 알 수 있듯이, 우리 사회는 한정된 자원을 투자하고는 선수들에게 ‘세계 최고’가 되라는 무리한 요구를 하지만, 그 요구를 충실히 따랐을 때라 하더라도 반드시 그에 합당한 대우를 해주는 것은 아니다.

게임 방송을 보면서 스타크래프트 리그(이하 스타 리그)의 팬이 되었을 때, 내가 처음 느꼈던 것은 이 새로 생긴 취미가 주는 즐거움이 다른 것들과 사뭇 다르다는 것이다. 간단히 요약하자면 이 취미에는 ‘강대국 따라잡기’의 열망이 없다. 가장 대중적인 스포츠인 축구나 야구에서조차 우리의 욕망은 항상 우리 자신의 즐거움이 아닌 ‘따라잡기’의 욕망이다. 2002년 월드컵 3-4위전에서 붉은악마는 저 유명한 CU@K리그라는 구호를 내걸었다. 그것은 좀더 강한 국가대표 축구팀을 만들기 위해선 우리가 평소에도 클럽 축구를 즐겨야 한다는, 물구나무선 당위 명제를 웅변하고 있었다.

하지만 스타 리그는 온게임넷 엄재경 해설위원의 말을 빌리자면 그 자체로 축제다. 스타크래프트라는 게임을 즐기는 유저들의 맥락과 프로게이머들의 맥락, 그리고 그 맥락에 기대어 창작되는 수많은 팬들의 텍스트와 이미지를 즐기고 있노라면 우울함은 증발하고 하루는 짧다. 지금은 군복무 중인 ‘노동8호’라는 아이디를 쓰는 누리꾼의 짤방(‘짤림 방지용’의 준말로, 디시인사이드의 각종 갤러리에 올라가는 이미지를 가리킨다)들은 한동안 스타 리그를 안 보다가도 그의 예술작품을 온전히 이해하기 위해 다시 보게 할 만큼 매력적이다. 이 작은 영역에선 바로 우리가 서 있는 곳이 메이저리그. 그러다 보니 이런 문화 전체를 같이 향유하려는 외국인들도 있다. 종종 영어권 스타 리그 팬들의 반응을 번역한 글들이 인터넷에 올라온다. 그러나 그런 번역글 밑에는 대개 “한류 사이트엔 퍼 나르지 말 것”이라는 단서 조항이 붙어 있다. 그걸 번역한 이들이 특별히 덜 국가주의적이기 때문은 아닐 것이다. 오히려 스타 리그를 같이 즐기는 외국인들의 반응을 확인했을 때의 기쁨은 한류의 영향력을 확인하는 기쁨과는 조금 다른 종류의 것이기 때문일 것이다.

여기서 나는 취미라는 것이 본래 어떤 기능을 가져야 하는지를 깨닫게 되고, “관심이 없다면 약해지는 것을 감수해야겠지”라고 중얼거리게 된다.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은 감동적이지만, 나는 이 감동을 “그러므로 핸드볼 실업팀에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따위의 결론에 귀속시키는 것에 찬동하지 않는다. 관심은 당위로 생겨나는 것이 아니다. 문제의 본질은 우리가 국가에 더 많은 메달을 안기기 위해 관심도 없는 스포츠에서 세계적인 선수를 키우는 비극을 양산했다는 거다. 스타 리그는 자연스러운 관심이 어떻게 시장을 만드는지에 대한 적절한 예시를 제공한다.

산업적 시각에선 흔히 ‘e스포츠’란 이름으로 스타 리그에 접근한다. 그러나 그것은 스타 리그의 특수성을 놓치고 있는 것 같다. 외국에도 프로게이머는 있지만 그들은 사라지고 생겨나는 여러 종류의 게임에 대한 프로게이머다. 외국의 유명 프로게이머는 몇몇 종류의 게임 대회에서 우승한 이들이다. 그런 식의 ‘e스포츠’와 스타 리그는 조금 다르다. 한국에서처럼 하나의 게임에 대한 리그에 관심이 집중되면, 게임 회사는 재미없다. 스타크래프트2를 발매하는 블리자드의 고민도 이에 있을 것 같고, 그 발매에 즈음해서 스타 리그의 장래를 불안해하는 일부 팬들의 시각도 그래서 일리 있다. 그런 의미에서 스타 리그는 보통의 e스포츠에 비해 좀더 게임 산업에 독립적인 어떤 상징성을 구현한다. 게임 산업과 관련한 경제적 분석을 넘어선 별도의 문화적인 비평을 요구하는 것이다.

내용을 들여다보면 스타 리그는 한국 사회에서 ‘소년 로망’을 말할 수 있는 유일한 공간이다. 이 소년들은 누군가의 우상이지만, 적어도 홀로 세계대회에 출전하는 고독한 천재가 아니라 자기들끼리 웃고 떠들고 도발하는 그런 귀여운 친구들이다. <H2>나 <슬램덩크> 등 일본 소년만화들이 제공하던 그 로망을 나는 이제 그들에게서 느낀다. 자본에서 약간 벗어난 곳에 건설된, 지극히 자본주의적인 ‘공평한 경쟁’의 로망을. 20대 중반이면 전성기가 끝나는 불안정한 직업인 프로게이머에게 10대 소년들이 몰리는 이유는, 다른 곳에서는 이 ‘공평한 경쟁’의 공간을 찾기가 어렵기 때문이 아닐까? 소년들이 승리하고 응원하던 부모님들이 눈물을 흘릴 때면, 나도 눈물이 난다.